나의 아이는 평범하지 않다.
나의 아이는 평범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평범한 아이들의 엄마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끝나지 않는 육아를 그저 숙명이고 즐거움이며 인생의 다양한 모습 중 한 부분이라 생각하며 매일을 살아낸다.
아이가 없을 때 나의 모습을 돌이켜보면, 뭔가 간절하다 생각하는 것 없이, 혹은 짧은 간절함으로 살아왔던 거 같다. 세상을 바꾸는 건 히어로나 정치인, 혹은 재벌들, 시민단체들, 노조들 등 대표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하며 그저 순응하며 살았던 것 같다. 내가 부유하지 않았지만, 불평등을 느끼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차별도 당하고 기성세대의 '까라면 까라'라는 방식에 지친 삶을 살긴 했지만 그저 남들도 겪는 일들이며, 내가 뭔가 바꿀 수 있을거라 생각은 하지 않고 지냈던 것 같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약간의 변화는 있다. 나의 아이를 위해 의견을 낼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최대한 정중하고 정확하게 나의 의견을 전달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클레임이 아니라, 어떤 점이 개선되면 좋을지에 대해 의견을 전달한다. 나의 의견이 감정적인 클레임으로 전달되면 그건 개선되지 않을 확률이 훨씬 크기에 언어를 고르고 감정을 다듬어 글을 쓰거나 말을 전한다.
이번에 주민참여예산제도 그 한 부분이다. 주민참여예산제는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시행하고 이로써 지역 공동체의 발전을 도모하는 방식이다. 학교 앞 건널목의 옐로카펫 설치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여러 교육에 관련된 많은 부분 중 나는 나의 아이와 관련된 의견을 제시했다. 바로 특수교육에 관련된 부분이다. 특수교육의 특성상 인력 지원이 많이 되어야 하며, 아이의 특성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교육자가 절실히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 하다. 대부분 예산 부족이라는 이름으로 특수 실무사가 배치되지 않는 곳이 많으며 실무사 선생님이 없는 학교는 자원봉사자 선생님으로 대체하여 아이들 수업을 돕는다. 자원봉사자 선생님은 보통 학교의 한정된 예산으로 채용하가 때문에 한 선생님이 여러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경우가 많으며, 근무 시간 역시 예산에 맞게 제한적이다. 또한, 한 학교에 1교실 정도 밖에 없는 특수교실 선생님도 기간제인 경우도 허다하다. 학교 특수 방과후 과정은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우(학교로 각종 치료 선생님들이 오시는 경우)보다 인력 부족으로 학교 외 센터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 경우 학생들은 센터까지 이동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나는 이 부분들을 교육청에서 해결해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무턱대고 짧고도 깊은 글을 썼다. '모든 아이들은 모두의 아이'라는 모토에 평범하지 않은 내 아이도 모두의 아이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나의 제안이 욕심이고, 이기적일 수 있다. 하지만 내 아이도 '돌봄'이 아닌 '적절한 교육'을 '적절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받을 권리가 있고 '미래'를 위해 충분히 '개선'이 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기에 나는 주민으로서, 엄마로서 역할을 다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