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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성동 Nov 08. 2024

만화를 다시 그리다.

교단일기. 슈퍼네모상자맨. 꼴찌삼총사.

만화를 다시 그리다.


방탕한 생활로 빚더미만 안은 채

신정동 작업실을 처분하고

집으로 들어온 지 이제 두 달쯤 지난 것 같다.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중학교 3년 내내 그린

만화책을 발견하곤…

“아! 그때의 나는 정말 만화에 미쳤었지….”하며 

무슨 보물단지라도 찾은 듯

낡은, 내 유년의 꿈을 뒤적거렸었다.     


그때 이후 고등학교 3년은 순수미술을 한다고

또 미쳐서 돌아다닌 것 같다.

경복궁, 덕수궁, 한강 등지를

내 집 드나들 듯 야외 스케치를 다녔으니….     


아쉽게도 나의 미친 꿈들은 그런 식으로 늘

토막토막 나 있었음에 다름 아니다.

지역신문에 만평을 그리고

학교의 만화 반 지도교사를 하면서

다시 만화를 끄적거리고 있으나….

나의 만화는 중학 시절인 70년대의 그때에서

성장이 멈춰 버린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림체며 정서. 감각…. 모든 게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말한다.

“절대 멈추지 말아라!”     

                    ( 월간 ‘오즈’ 1999년 3월호 작가 후기에서….)     

  


   중학교 이후 만화를 거의 잊고 지내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만화를 다시 그리게 되었다. 97년도에 지금은 없어진 ‘애경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하고 있었는데 ‘구로, 금천 내일신문’에서 취재를 나왔었다. 신문을 보니 만화가 없어서…. “ 왜 신문에 만화가 없어요?” 하고 물은 것이 계기가 되어 G고등학교에 근무하던 4년간을 꼬박 일주일에 한 번씩 만평을 그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이후로 학습지 ‘케이스’에 한 일 년, 월간지 ‘오즈’에 몇 번을 그렸고…. 그 사이 학교 선생님들의 축구 모임 회지에도 캐리커처와 만화를 꾸준히 그렸다. 이후로 몇몇 이름 없는 신문, 잡지 등과 전교조 신문 ‘교육 희망’에 한 2년 격주로 만평을 그렸었다. 

  

  교육 희망 연재가 계기가 되어 ‘노동 만화 네트워크’, ‘들꽃’에 참여하게 된 것은 개인적으론 행운이었고 보람이었다. 80년대 민중 문화운동의 일환으로 탄생한 ‘노동 만화’의 계보를 잇는, '노동문화정책정보센터' 산하의 단체였다. 프로와 아마추어가 뒤섞여 격의 없이 어울렸고 2000년부터 10여 년간, 매년 전시회를 열고 동인지를 발행하였다. 평택 대추리 평화 벽화작업, 용산참사 현장 걸개그림 등 거리에서의 작업에도 학교가 쉬는 날 이면 참석해 함께했다. 대학생 때 거의 샌님처럼 조용히 도서관과 실기실만 오간 나로서는 뒤늦게 사회와 정치 현안에 대해 눈을 뜨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노동의 관점에서, 생활 과정에서 소박한 아름다움을 통해 실천적인 삶을 알아가는 배움의 시간이었다. 물론 이러한 배움은 내가 꿈꾸고 좋아하는 ‘만화’라는 매개체가 소통의 중심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지난 후 ‘문예진흥기금’ 지원이 끊기면서 활발한 대내외 활동은 멈추게 되었다. 들꽃 동인들도 생업으로의 만화 그리기나 본업으로의 밥벌이에 충실하며 또 10여 년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각자 자리에서 몇몇은, 알만한 개인 만화책을 발행하기도 하였다. 그간 어정쩡한 아마추어로 발 담그고 있던 나에게도 책 한 권은 넘기고도 남을 원고가 남게 되었다. 밥벌이로의 교사직을 놓은 지 이제 3년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J형이나 H, K 등처럼 나도 내 만화책을 발간하는 것이다. 


  “내 만화의 내용이라야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만화를 업으로 하시는 찐 만화가분들에겐 매우 우스울 수도 있고 송구하지만 나름대로 만화를 그리는 원칙은 “학교의 이야기를 하자”는 데 있었다. 그저 학교에 몸담은 선생이라는 위치에서 바라본, 있는 그대로의 학교 이야기를 가감 없이 해 보고 싶었다.

 만화 작화 시점이 2000년대 이전이 많고 당대의 경향이나 정서, 감각 등과는 거리가 크고 재미도 없다. 고심 끝에 만화를 보완하는 색다른 구성으로 2024년 현재의 자리에서 쓴 개인적 감상 글을 덧붙이는 방향을 생각하고 있다. 노력의 하나로 집 인근 시립 도서관 수필 강좌에 참여하여 글짓기, 쓰기 등 새로운 ‘배움’에 애쓰고 있다. 학창 시절 국어 시간 이외에 따로 글쓰기 공부는 처음이다.


  환갑이 훨씬 지나 늦은 출발이지만 서두르지 않고 과정을 즐기고 싶다.

섬세하게 오래 붙들고 여러 번 되새겨 시행착오를 줄이고 싶다.

 책 읽기 좋아하는 큰아이가 지금의 내 나이가 되어 보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책. 

하루 종일 쏘다니며 놀기에 빠져있고 만화책의 소년 주인공으로 딱 맞춤 캐릭터인 작은 아이가 

아빠를 멋지게 추억할 수 있는 그런 책을 만들고 싶다.

                                                                                                                        2024. 11. 4.


2011 고척고 만화전 포스터.                                                                           교단일기 캐릭터


2004. 2001 노동만화전 포스터 및 카다로그.                                                                     전시장


들꽃 만화 모음집.                                                               청소년 문화포럼. 노동문화 합동 전시 책자형 도록


평택 대추리 벽화.                                                                     만화책.  만화'땅의 사람들'
만화잡지 OZ 창간호.                                                                        12월호 . 만화 교단일기연재
국민일보 인터뷰 기사.                                                                         독립출판 '교단일기' 비매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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