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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성동 Nov 22. 2024

강물에 들어 바다로 사라지다.

유년의 동화

강물에 들어 바다로 사라지다.


  ( 강물이 끝없이 흐르는 마을에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이는 강물 속에서 놀고, 강물이 주는 물과 음식을 먹으며, 강물로 만든 옷을 입고 자랐습니다. 모든 일상과 삶의 기쁨이 강물 안에서 이루어졌지요.

아이의 하루는 늘 강물과 함께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아이는 강물 속에서 떠오른 궁금증을 품게 되었습니다. “강물은 어디서 시작되는 걸까?”


 그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었던 아이는 마침내 긴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아이는 준비물을 챙기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여행을 시작했어요. 그러나 여행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험한 길을 지나고,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과 숲을 헤치며, 아이는 점점 지쳐갔습니다. 수많은 고비와 어려움 속에서 아이는 한 걸음 한 걸음 더 나아갔지만, 몸과 마음은 점점 쇠약해졌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절망의 끝에 다다랐습니다. 모든 힘을 다 써버린 채, 마지막 남은 기운을 다해 도달한 곳은 험준한 산속에 숨겨진 작은 호수였습니다. 그 호수는 강물의 시작이었으며, 그곳에서 아이는 마침내 자신이 찾아 헤매던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작고 소박한 물결 하나였습니다. 

 

아이는 호수 곁에 머물며 건강을 회복해 갔습니다. 그리고 길고 지루한 여행 끝에 태어난 강가 마을로 다시 돌아옵니다. 하지만 돌아온 마을은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있었고, 아이의 부모님도, 친구들도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강물의 끝을 찾아 떠난 많은 이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또 많은 시간이 흐르고 아이는 강물에서 만난 인연과 결혼하고 아이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또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아이는 강물의 끝을 알기 위한 여행을 준비합니다. 

 

 훌쩍 자란 아이들과 가족을 뒤로한 채, 아이는 노쇠한 몸을 이끌고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젊었을 적, 강물의 시작을 찾기 위한 여행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어려움이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험한 절벽과 폭풍, 목숨을 위협하는 짐승과 도적들, 그리고 추위와 배고픔까지 아이를 괴롭혔습니다. 몇 번이고 지쳐 쓰러지기를 반복한 끝에, 아이가 마주한 것은 바다였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거대한 파도,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차가운 침묵 속에서 몸서리치게 고요한 물결, 낮의 태양과 밤의 달… 어떤 수사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하고 신비로운 바다 앞에서 아이는 몇 날 며칠을 꼼짝없이 숨죽이며, 마치 망부석처럼 굳어갔습니다. 아이의 몸은 이미 늙고 병들어 한 걸음도 떼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그 어떤 인연과 그리움도, 아이를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결국 아이는, 마치 강물이 흘러들 듯, 바닷속으로 사라졌습니다. )


  

   어린 시절부터 내 마음속에 간직해 온 동화가 하나 있습니다. 유치하지만, 그 동화를 재소환해 봤습니다. 그것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선명한 기억은 없지만, 철이 들기 전부터 무심코 읊조렸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민 간 친구에게 그 동화를 편지에 담아 보낸 적도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답장에서 “마치 파랑새 이야기처럼 느껴진다.”라고 했습니다. 그처럼 특별하거나 뛰어난 글은 아니지만, 내게 그것은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아련한 기억의 조각으로 남아 있습니다. 제목인즉 ‘강물에 들어 바다로 사라지다!’ 명퇴 직전 담임한 고3 아이들 반 급훈으로도 급조해 사용했었습니다. (요즘엔 교실에 급훈. 태극기 따위를 붙이지 않는다. ) 예전에 공들여 길고도 상세하게 써놓은 것이 있었습니다만 찾아보니 없어졌기에 상세한 묘사는 제외하고 대략의 큰 줄기만 다시 써 보았습니다.     

  

  써놓고 보니 요즘 아이들 졸업식 노래로 불리는 윤도현의 ‘흰수염고래’가 겹치기도 합니다. ❬작은 연못에서 시작된 길, 바다로, 바다로 갈 수 있음 좋겠네, 어쩌면 그 험한 길에 지칠지 몰라, 걸어도 걸어도 더딘 발걸음에, 너 가는 길이 너무 지치고 힘들 때, 말을 해줘 숨기지 마! 넌 혼자가 아니야, 우리도 언젠가 흰수염고래처럼 헤엄쳐, 두려움 없이 이 넓은 세상 살아갈 수 있길, 그런 사람이길 ❭

초등 6년에 중고등 6년을 더하고 대학, 대학원에 이른 후 직장으로 선택, 평생을 학교라는 울타리에 갇혀 허우적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22년 2월 28일 난 학교에서 탈출했습니다. 남들보다 졸업이 매우 늦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내 꿈은 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그 꿈을 온전히 펼칠 수 있게 되어, 그 어느 때보다 큰 행복을 느낍니다. 밥벌이로의 직장생활로 올인하지 못했던 작업을 이제 와 충실히 하려고 합니다.

‘어린 시절 동화 속 아이처럼 저는 아직 바다를 향하고 있습니다.’     


  고전소설 ‘돈키호테’에 이런 구절이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여정 자체가 도착지보다 좋을지도 모르지!”

돈키호테가 쫓던 이상이 결코 허무맹랑한 결과는 아니었을 겁니다. 

자신이 믿는 가치와 꿈을 좇던 그의 여정이 충분히 귀중했기에 그의 삶은 아름답습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사랑의 보상이 사랑하는 순간이듯”

 사랑하는 순간, 그 감정과 경험이 바로 가장 큰 기쁨이자 보상이라는 톨스토이의

 사랑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줍니다.

지나온 시절의 허무맹랑함과 텅 빈 이상, 이루지 못한 사랑은 이제 나에게 없습니다. 

그만큼 내 학교 수업은 길었기에….

강물이 바다로 흐르듯, 나의 사랑과 이상도 어느 한 지점에서 마침내 완전해지거나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계속해서 존재하며 흘러갈 것입니다.

내 유년의 동화는 오늘도 계속됩니다.

“강물에 들어 바다로 사라지다.”                

                                           2024. 11. 18.



   ● 위 동화를 읽은 주변 분이 아이, 어른을 위한‘그림동화’로 만들어 보라고 말씀하시네요. 

        몇분의 격려와 칭찬이 내 안의 소년과 고래를 춤추게 하네요! ㅎ

      새로운 도전으로 “강물에 들어 바다로 사라지다!” 그림 동화책을 미리 그려봅니다.


좌측부터  1980년 집 100호 작업 중./1978년 고2 미전 강당 내작품 앞에서./내 작업실 책상 위-대학시절 실크스크린 -조부.조모.



art is not optional/ 2023개인전/ 작업실 책상-인간기둥2006 포스터



위 동화에 대한 소감을 지인분께서 고맙게도 필기체 붓글로 써주셨다./ 2003 개인전/ 작업실 책상위 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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