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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Feb 14. 2022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94)

간호원 도움 없이 혼자 돌보다

10월 1일 (2006년)


오늘부터는 내가 처음으로 간호원들의 도움이 없이 시아버지를 씻기고 돌보기로 했다. 

2리터의 소변이 모아지는 소변 봉지에 찬 소변을 화장실에 우선 갔다 버린다. 소변이 하루 종일 모아진 것을 큰 플라스틱 그릇에 내려야 하는데 양이 많고 소변 냄새는 굉장히 진하지만 습관이 되고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별로 역겹지 않다.

수염 깎는데 삼분에서 오분, 머리 감 기는데 오분, 옷 벗겨서 온몸을 닦고 크림 바르고 아랫도리와 엉덩이에 연고 바르는데 십오 분, 팔과 다리를 주물러 드리는데 오분에서 십분 정도 걸린다. 그리고 침대 시트도 가끔 갈아야 하고 바닥도 청소해야 하고 빨랫감도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손톱과 발톱도 가끔 깎아야 하고 코와 귓속에 나는 털과 점점 길어져 직각으로 서는 눈썹도 깎아야 한다. 

간호원들이 오면 내가 할 일이 적어지지만 그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신경 쓰이고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소홀히 하면 화가 나기 마련이다. 내가 시아버지를 돌보면 내가 원하는 시간에 시간을 두고 천천히 정성껏 할 수 있어 좋고 누구한텐가 변명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도 있어 좋다. 그동안 지겹도록 간호원들이 우리 집에 드나들어 이제 나 혼자 해도 된다는 점이 개운해서 좋다. 세 달에 한 번씩 우리가 원하는 간호원 회사에 사장이(대개는 여자 간호원임) 오게 하면 그 간호원이 시아버지의 상태를 검사하고 건강보험회사에 보고서를 올리기는 하지만 일주일에 몇 번씩 우리 집을 들락날락하는 것과는 달라 어쨌든 마음이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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