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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Jan 27. 2022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85)

세상에 둘도 없는 환자

10월 25일


시아버지가 예쁘다고 한 멜라니는 인상도 좋고 날씬하고 똑똑하고 언제나 성의껏 일을 해 흠잡을 데가 없다. 경험에 의하면 한 간호원이 오랫동안 같은 환자를 돌보다 보면 성의 없이 환자를 볼보고 대강 일을 해치우고 가기가 일쑤인데 멜라니는 언제나 한결같이 성의 있게 일을 해 내가 없을 때 멜라니가 왔다 가고 나면 장부를 보지 않아도 나는 금방 안다.  오늘은 간호원 멜라니가 왔을 때 내가 옆에서 거들었다. 시아버지는 멜라니가 면도를 할 때 얼굴을 끊임없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더니 옷을 벗기고 물수건으로 몸을 닦을 때도 몸을 비비 꼬듯이 움직여서 멜라니가 시아버지에게 , 극성맞은 필립, 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시아버지 이름은 후릿츠이지만 일반적으로 대단히 극성맞은 사람한테 붙여주는 별명이다. 

나: "이렇게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환자가 흔한가요?"
멜라니: "아뇨! 내가 환자를 많이 봤지만 이런 환자는 정말 세상에 둘도 없을 거예요. 굉장히 와일드하세요"

끝도 없이 창대를 오른손으로 붙잡았다 놨다 하고 시아버지의 장난감인 삼각형을 붙잡았다 놨다 해 손에만 굳은살이 배긴 게 아니고 배 근육이 단단해져 돌과 같이 되었다. 소변을 빼내는 관이 툭하면 헐렁거려 기저귀가 젖어 비뇨기과 의사가 자주 우리 집으로 왕진을 와서 의사가 한 번은 짜증을 내며 다른 환자한테는 육 주마다 한 번씩 가서 갈아 주는데 당신 시아버지는 삼주마다 와야 한다면서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서 내가 연구한 결과 시아버지가 운동을 너무 많이 하니까 관이 너무 많이 움직여 헐거워지는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 관이 뱃살에 꽉 고정되어 있어야 하는데 헐거워지고 속에 들은 풍선 같은 것도 너무 많이 부딪치니까 작아져 소변을 제대로 빼내지 못해 기저귀가 젖는 거였다. 

시아버지가 너무 많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우선 머리맡에 있는 철새를 작고 길은 상자에 천을 입혀 끼워 놓자 철 대가 손에 잘 안 잡혀 재미가 없으니 철대를 잡았다 놨다 하는 일이 줄어들었고 호수가 밑으로 너무 처지지 않도록 시아버지 허리에 가는 고무줄을 묶고 그 고무줄에 호수가 걸리게 받쳐 주었다. 어쨌든 그 이후로는 의사가 오주나 육 주 만에 와서 갈아줘도 되었다. 독일 속담에 , 신뢰도 좋지만 감독하는 게 더 낫다, 라는 말이 있다. 한국에 속담에 아는 길도 물어간다는 말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간호원이 왔다 가면 시아버지가 잘 앉아 있는지 호수가 꺾이지 않았는지 다리는 잘 놓였는지 살펴본다. 뭔가 잘못되면 우리 일이 더 많아 지니까 미리미리 조사 , 감독하면서 가래로 막기 전에 호미로 막기 위해서다. 경험을 통해서 속담들이 진리임을 피부로 느끼며 산다.

나중에 비뇨기과 의사가 와서 보고 나더러 머리를 잘 썼다고  칭찬해줬다. 

삶의 지혜란 편한 환경에서 편하게 살 때 생기는 것이 아니고 어렵고 문젯거리가 있을 때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고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간호원 회사 사장 모예 레씨가 나더러 간호원 교육을 받고 자기 회사에서 일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농담 삼아 제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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