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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Nov 16. 2023

의사가 불친절한 이유

<김밥 천국과 호텔 레스토랑>


<식탁에 가을이 올라왔다>

 출판사가 열심히 해주셔서 책이 2쇄를 찍자 감사도 표할 겸, 내 인생에서 가장 비싼 고급 레스토랑에서 밥을 샀다. (여보 미안. 당신과는 가본 적이 없는 비싼 곳에 갔어.) 코스가 나올 때마다 직원이 웃는 얼굴로 열심히 설명을 해주셨지만, 음식에 대해 문외한인 나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호기심에 이것저것 물어봐도, 직원은 친절하게 대답해 주셨다. 감동이었다. 투명한 유리컵에 물이 비변, 내가 말하기도 전에 오셔서 목이 긴 물병으로 물을 따라주었다.


 내가 자주 가는 김밥 천국은 서비스가 완전히 다르다. 주문도 셀프고, 음식이 나오면 가져가는 것도 셀프다. 물? 당연히 셀프다. 김밥 천국에서 종업원과 손님과의 대화는 “주문하신 참치 김밥 나왔습니다.”가 끝이다. 김밥 천국에서 손님이 “이 김밥에 들어간 참치는 자연산인가요? 어디서 잡혔나요?” “이 김은 파래와 김의 비율이 어떻게 되나요?”라고 물으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다.


 김밥 천국은 왜 이렇게 불친절하고, 호텔 레스토랑은 왜 이렇게 친절할까? 김밥 천국 직원의 인성이 나쁘고, 호텔 직원의 인성이 좋은 것인가? 김밥 천국 사장이 나쁜 사람이고, 호텔 사장이 착한 사람이라서 그럴까? 아니다. 둘의 모든 차이, 공간부터 인테리어와 조명, 음식의 질이나 호텔 직원의 친절도까지 모두 <가격>에서 나온다.


 가격은 단순히 식당 음식의 질이나, 서비스를 달라지게 할 뿐만 아니라, 손님의 태도마저 변하게 만든다. 나는 레스토랑에 갔을 때 세미 정장에 평소에는 운동화를 신는다고 잘 안신는 구두까지 특별히 신고 갔다. 종업원이 존댓말로 나를 대하고, 손끝과 발끝에서 공손함이 묻어있는 것처럼 나 또한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종업원을 대했다. 하지만 이런 내가 김밥 천국에 갈 때는 자다 일어난 채로 씻기는커녕 얼굴에 눈꼽도 때지 않고, 아무 옷이나 대충 걸친 채 슬리퍼를 끌고 간다. 거기다 말투 또한 짧고 퉁명스럽다. 직원과 손님이 서로 닮아간다. 


 한국의 의사가 불친절한 이유는 그 어느 나라보다 낮은 진찰비에서 유래한다. 낮은 진찰비 때문에 의사가 3분 진료를 한다. 하지만 병원에 온 사람들은 호텔 레스토랑과 같이 여유로운 공간과 따스한 웃음, 나오는 음식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원한다. 지속 가능할 리가 없다. 호텔 레스토랑과 같이 운영하면서, 가격을 김밥 천국 수준으로 받으면 그 병원은 무조건 망한다. 거기다 식당은 가격을 스스로 정할 수는 있지만, 병원은 그럴 수 없다. 의사와 병원은 김밥 천국식 박리다매 전략을 취한다. 의료에서 파인 레스토랑처럼 사전 예약을 하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에서 친절한 상담을 하는 곳은 피부미용뿐이다. 그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비싸기 때문이다.  


 국민은 싸기 때문에 OECD 평균보다 3배 이상 외래 진료를 본다. 거기다 안 시켜도 될 음식을 마구 시키며(의료쇼핑), 응급실에는 항상 경증 환자가 넘친다. 여기에 실손보험까지 더해져, 의료 쇼핑을 더욱 추부겼다. 거기다 병원에는 진상이 넘친다. 병원에는 진상이 넘친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행패를 부리는 사람, 진상은 적지만, 김밥 천국에서는 많은 것과 같은 이유다. 특히 1세 미만인 경우, 환자가 내는 돈이 초진일 때 900원, 재진일 경우 600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소아과에 진상이 많은 이유를 쉽게 추측할 수 있다. 


 환자는 불친절한 의사와 병원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당연히 소비자 입장에서는 싼 게 좋으니까, 질을 높이라는 이야기는 하지만 가격을 올리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의사 또만족스럽지 못한 건 마찬가지다. 거기다 억울하기까지 하다. 질을 높이기 위해 가격을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진찰료는 물론이고, 침대 사이 간격마저 일방적으로 정한다.


 이런 현실에서 많은 이들이 한국 의사가 불친절한 이유를 '가격'이 아니라 ‘인성’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개인의 문제마저, ‘사회 구조 시스템’의 문제로 보는 진보마저 의사가 불친절한 것을 ‘개인 인성’ 문제로 치부한다. 하지만 의사가 불친절한 건 인성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 문제이기에 사람들이 아무리 의사를 비난해도 의사들은 바뀌지 않는다. 아니, 바뀔 수 없다. 


 모든 집단은 표준정규 분포를 보인다. 양극단의 극소수, 그러니까 어떠한 환경에서도 친절할 사람과 불친절할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신이 속한 사회 시스템의 영향을 주고 받는다. 왜 호텔 레스토랑 직원이 친절하고, 김밥 천국 직원은 불친절할까? 대한 답이 바이탈과 의사와 병원은 불친절하고, 피부미용 의사와 병원은 친절한 이유다. 환자가 친절한 의사를 원하는만큼, 의사도 친절하고 싶다. 그러지 못할 뿐이다.


 이런 사회 시스템 속에서 내 꿈은 하나다. 환자 1명당 30분씩 진료를 하는 것이다. 그럴러면 돈이 많아야 한다. 슬프다.




 덧붙이는 말: <마약하는마음, 마약파는 사회>를 위해 나보다 더 애써주신, 김선형 편집장님을 비롯한 동아시아 출판사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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