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나리의사 Jun 29. 2024

아는 게 병이다.  

병원 여행기 마지막회  

이전 글 

https://brunch.co.kr/@sssfriend/856


 "끄으으윽."

 송곳으로 코를 후벼 파는 느낌이었다. 수술 당일 저녁, 교수님께서 코 안에 들어가 있던 출혈 방지용 패드를 제거할 때였다. 이을 꽉 깨물고 눈을 꽉 감고 참았지만, 눈물과 함께 콧물 그리고 피가 조금 흘렀다.

 "하아, 하아." 

 간신히 입으로 숨을 쉬었다. 

 "내일 퇴원하실래요?"

 "넵."

 퇴원이라는 말에 아픔도 잊었다. 역시 집이 최고다. 


  코에 통증이 있었지만 나는 수술 후 아픈 건 당연하다며 견디고 있었는데, 끙끙 대는 내 모습을 본 아내가 참지 말고 약을 달라고 했다. 간호사가 다녀간 지 얼마안가 통증이 사라졌다. 괜히 혼자 미련하게 참고 있었다.  


 병실이 조용하여, 모든 소리가 들렸다.  5인실이지만, 환자는 2명뿐이었다. 말고 다른 환자는 남자 고등학생이었는데, 속된 말로 알(고환)이 터져서 응급으로 수술받았다. 수술은 끝났지만, 확실한 나중에 초음파를 해야 알이 회복되었는지 되었는지 있다고 했다. 끙. 


 하얀 병실에 검은 밤이 찾아왔다. 수술 전날보다, 수술 잠을 잤다. 아프거나 걱정되어서는 아니었다. 코가 아니라 입으로 숨을 쉬려고 하니, 자다가 자꾸 잠에서 깼다.  


 퇴원 수속은 간단했다. 수술 일주일 후, 외래가 있었다. 


 퇴원 후에도 코로 피가 섞인 체액이 쉬지 않고 계속 흘러나와 불편했다. 닦고 닦고 또 닦았다. 거기다 안이 막힌 데다 혹시나 해서 코로 숨을 쉬기가 조심스러웠다. 그러다 간신히 잠에 들었다. 


 "컥."


 자다가 뭔가가 목에 걸렸다. 잠결에 나도 모르게 코로 숨을 쉬다가 코를 막고 있던 딱지가 목 뒤로 넘어간 모양이었다. 그 후로는 코가 뻥 뚫리며 숨쉬기가 한결 편해졌다. 


 환자에서 의사로 돌아온 일상은 바빴다. 일할 때는 잊고 있다가, 잠시 쉬면 다시 코가 신경 쓰였다. 코를 잊기 위해, 일을 했다. 일주일은 곧 지나갔다. 


 "여보, 조직 검사 결과 꼭 잊지 말고 물어봐."


 외래가 있는 날, 아침 아내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우리 몸의 혹이 단순 혹(benign tunor, 양성 종양)인지 암(malignant tumor, 악성 종양)인지는 조직을 채취해서 현미경으로 보는 조직 검사가 가장 확실하다. 그럴 리 없겠지만, 만약 코에서 나온 혹이 암으로 나온다면, 내 인생은 완전히 바뀔 것이다.  설마, 설마.


 교수님, 혹시 조직 검사 결과 나왔나요?

 수술이 잘 끝났고, 수술 부위도 정상이고, 앞으로 할 일은 코 세척뿐이라고 덤덤하게 교수님이 말씀하자, 나는 곧바로 기다렸던 질문을 던졌다. 


 조직 검사 안 했는데요.
너무나 전형적인 mucocele(점액낭종)이라 할 필요가 없었어요.

 모르는게 약이고, 아는 게 병이었다. 그것도 어설프게 알아서, 괜한 걱정이었다. 그동안 걱정으로 불안했던 시간이 아까웠다. 다시 환자에서 의사로 돌아갈 시간이다.  



후기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글이 가볍고 유쾌할 수 있었던 이유는 mucocele(점액낭종) 자체가 대수롭지 않은 병이라서 그렇습니다. 만약 제가 심각한 외상이었거나, 등이었다면 이렇게 글을 쓰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보였습니다.


1. 키오스크 시스템

 환자 대부분이 고령이라, 적응이 매우 어렵습니다. 보호자가 같이 와야하는데 비효율적입니다. 결국 인건비 문제인데, 이대로 불편함을 감수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2. 병원 안내뿐 아니라, 진행 과정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듯 합니다.  


예를 들면 제가 수술 받은 점액 낭종 같으면 


 1. 전날 입원 

 2. 수술 

 3. 패킹 제거

 4. 패킹 제거 후 이상 없으면 다음날 퇴원.

 

폐렴 같으면  


1. 3일 후, 혈액 검사와 chest PA 확인 

2. 5~7일 후, 혈액 검사와 chest PA 확인 후 퇴원 여부 결정  

*상태가 나쁘면, 혈액 검사와 chest PA 등의 검사를 더 자주 하게 되며, 항생제 변경, 중환자실 및 기관 삽관 등의 조치가 취해질 수 있음.


 등의 설명이 아쉬웠습니다. 


 사람, 특히 환자의 경우 워낙 변수가 많지만 기본적인 틀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예측 가능한 것에 안심하고, 불확실에 불안해 하기 때문입니다. 환자의 불안은 조금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할 듯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