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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Jun 20. 2024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

병원 여행기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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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컥컥"

 

 수술방에 나온 이후로 계속 목이 아팠다.


 자면 안 돼요

 하지만 마취 때문인지 내 의지와 달리 눈앞에 뿌연 안개가 낀 듯했고, 눈이 자꾸 감겼다. 어제저녁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못해 힘도 없었다.

 수술을 위해 전신 마취를 할 때는 단순히 의식만 재우는 게 아니고, 신경근 차단제를 써서 완전히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 심지어 호흡근도 마비되어 오로지 기계 호흡만 가능하다. 수술이 끝나가면, 마취과 의사가 호흡마취제의 농도를 줄이는 동시에 신경근 차단제의 효과를 없애는 일명 리버스(길항제)를 투여하여 환자의 의식을 깨운다. (짧은 시간이 걸리는 내시경의 경우에는 길항제를 투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폐의 기능이 100%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마취에서 깨면 최대한 깊은숨을 쉬면서 폐를 최대한 펴줘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폐가 찌그러지는 무기폐(atelectasis)가 잘생긴다. 실제로 무기폐는 수술 후 발열의 가장 흔한 원인이다. 머리로는 알면서도 피곤하고, 졸려서, 쉽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점심을 먹고 난 후, 졸리면 교실 뒤에 서서 수업을 받을 때가 생각났다. 침대 옆에 서서 침대 난간과 수액 폴대를 잡고 계속 숨을 들이마셨다. 거기다 은근 힘도 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풍선을 부는 느낌이었다. 서서히 정신도 폐도 펴졌다.  

 

 폐가 안 펴지는 무기폐(無氣肺)뿐 아니라, 삼키는 것이 원활하지 않아 물이나 음식을 먹다가 식도가 아니라 기도를 통해 폐로 들어가는 흡인성 폐렴을 예방하기 위해 6시간 금식을 해야 했다. 병실에 온 것은 3시 30분경이었고, 간호사 선생님은 6시간 동안 금식을 하라고 했다.


 평소 자주 물을 마시는 나는 어제부터 자다가 아무 생각 없이 물을 마실까 봐 아예 병실에서 물병을 치웠다. 입안은 말랐지만, 목이 마르진 않았다. 수액 때문인 듯했다.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수액 걸이가 불편했다. 줄이 꼬이기 일쑤였고, 갈 때마다 발에 걸렸다. 수액이 가슴 높이와 비슷해지면 피가 역류하여 투명한 줄에 빨간 피가 비쳤다. 별 거 아니지만 신경 쓰였다.

 수술 시간이 짧아서 다행히 소변줄을 차지는 않았다. 수술 시간이 길 경우, 소변이 저절로 흘러나올 수가 있을뿐더러 수술 후에도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는 경우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출혈량이 많은 수술의 경우, 전신의 혈액량이 줄면 소변량이 주는데 소변량을 측정함으로 환자의 체액 상태와 신장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남자의 경우 요도의 길이가 대략 20cm(여자는 5cm) 정도로 빨대 크기의 소변줄을 끼울 때는 물론이고 뺄 때도 어마어마하게 아프다. 또한 요로 감염도 생길 수 있다.


 코 안에는 패킹을 했지만, 피와 함께 체액이 계속 흘러나와 거즈를 적셨다. 거즈를 몇 시간마다 계속 갈아줘야 했다. 입으로 숨을 쉬다보니 불편한 것보다 입안이 바짝 말라 입술이 갈라졌다. 가습기를 들고 오거나, 아니면 마스크를 쓸 걸이라는 생각을 나중에서나 할 수 있었다. 쩝.


 저녁 9시 30분이 되어서, 24시간 만에 뭔가를 먹을 수 있었다. 별 다를 거 없는 병원 밥이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이었다. 밥을 다 먹고,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한 숟갈 한 숟갈, 혀가 아니라 온몸으로 단맛이 느껴졌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식사는
금식 후 먹는 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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