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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사원철학자 Oct 22. 2024

버크의 프랑스혁명 비판

기사도 정신

말을 탄 기사는 전장의 선봉에 섭니다. 기사는 맞은편에 있는 적군을 바라보며 곧 있을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생각합니다. 그의 뒤에는 수천 명의 병사들이 정렬해 기사의 말과 행동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때가 되면, 기사는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고 가장 앞에서 적군을 향해 돌진합니다.


봉건 시대의 기사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에게 주어진 전투에 임했습니다. 물론 그중에는 자신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비겁자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기사” 하면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이 때문에 기사도 정신은 숭고한 정신으로 인정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왕과 기사들은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에서 가장 앞서 병사들을 이끌어야 할 기사들이 어느 순간 가장 뒤에 서서 병사들의 희생으로 자신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숭고한 정신이 사라진 기사들의 모습에 사람들은 더 이상 존경과 애정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합리적이었던 계급 질서는 그 정신이 약해짐에 따라 부패를 양산하는 사회 시스템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자연적 계시”를 받은 진정한 기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사회를 개혁해 나가기 시작했죠.


그러나 사회 발전의 자연스러운 역사 속에서 프랑스혁명은 섣부른 판단이 불러온 정치적 참사였습니다. 과거의 모든 기존 제도를 신중한 고려 없이 부정하는 태도는 오히려 더 큰 악을 초래했습니다. 프랑스혁명은 결국 수많은 사람들의 학살과 독재정치로 끝이 났습니다.


인간 사회라면 어느 사회도 예외 없이 숭고했던 정신과 사회 시스템이 타락하게 됩니다. 문제는 숭고했던 정신과 시스템 자체가 아니라 타락한 현상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까지 사회를 발전시키고 지탱해 온 정신과 시스템을 돌아보고, 그것을 개혁해 나가야 합니다. 이상적이고 새로운 정신과 시스템을 무리하게 도입하는 것은 많은 희생을 초래할 뿐입니다.


버크는 도버 해협 너머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일을 면밀히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방문했던 프랑스 사회를 회상하며 현재 벌어지는 혁명의 사건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혁명 세력이 추구하는 대의를 이해하면서도 그들이 내린 정치적 판단에 대해 “신중하지 못한 결정”이라며 비난했습니다. 한편, 혁명 세력 중 한 명이 버크에게 자신들의 대의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버크는 그 청년에게 답장을 씁니다.


“당신들은 기사도 정신과 종교의 정신을 버렸습니다.”


*프랑스혁명을 지지한 청년은 버크가 미국 독립 혁명을 지지했기에 프랑스혁명 또한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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