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이라는 포장지, 그 속의 폭력
괴물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상미,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 사카모토 유지의 각본이 예술적으로 공명한 걸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순수함을 보고 눈물을 흘렸던 것이 참 오래전 일처럼 느껴졌는데, 이 영화는 아름다운 순수함과 그 안에 녹아든 폭력과 억압이 대비되어, 가슴이 먹먹해지는 경험을 선사해 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3rciMDEh7o ( 괴물 사운드트랙을 들으며 제 리뷰글을 읽으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
인간관계를 가장 현명하게 맺는 법이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한 수많은 글에는 공통적으로 내포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줄 것. 상대가 듣기 싫어할 말은 하지 않을 것.’ 이러한 말은 차갑게 계산된 인간관계 스킬 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감히 타인의 세상을 이해하거나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는 존중을 바탕으로 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깊고 애정 어린 관계에서는 이 인간관계의 대원칙이 자주 깨집니다. 상대를 위한 ‘조언’이 허락되는 것이죠. 듣기 싫은 말이더라도, ‘너를 위해서야’ 라는 말 한마디면 면죄부가 되곤 합니다. 특히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혹은 형제자매 사이처럼 가까운 관계일수록 그러한 경향이 강한데, 축적된 삶의 경험에서 나온 그들 만의 ‘정의’를 사랑하는 이에게도 전수해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행복해지는데 조건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저 역시 그렇게 믿었습니다. 가족, 사랑, 돈, 명예… 그런 것들이 제게는 행복의 필요조건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영화에서도 아이의 어머니와 선생님은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아이에게 행복의 조건을 가르칩니다. 강요하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간다. 그 평균의 기준 안에 들어가야 한다’, ‘어떤 행동을 해야 남자다운 것이다” 와 같은 말들을 통해 억압당하죠. 좋은 것의 규칙을 정해두고 선을 벗어나는 사람을 괴물로, 행복하지 못한 존재로 지정합니다.
하지만 ‘행복의 조건’이란 말은 어쩌면, 누군가 임의로 그려놓은 투명한 경계선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만 안전하고 옳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믿게 되죠. 그러나 그 선은 아무런 방어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 너머에도 분명 누군가의 행복이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자신의 행복은 그 경계를 넘어선 곳에 있는데, 사랑하는 이가 그 선 안쪽만을 ‘올바른 길’이라 말한다면, 그 마음은 점점 좁아지고, 결국 자유는 사라지게 됩니다.
'소수만 가질 수 있는 건 행복이라고 부르지 않아. 행복은 누구나 가질 수 있을 때 의미 있는 것이지. '
행복이라고는 도무지 가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영화 속 가장 불행해 보이는 인물이 자기만큼의 쓸쓸함을 안고 있는 이에게 건낸 위로라는게 참 아이러니합니다.
“카이부츠 다-레다 (괴물은 누구일까) ”
영화에서 두 아이가 자주 하는 놀이입니다. 자신의 정체를 맞히면 괴물이 아닌 것으로 인정받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만, 정체를 모르면 괴물이 되는 게임이죠. 아이들은 아직 자기 마음속에서 싹튼 감정의 정체를 알지 못합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순수하고 투명한 존재들입니다. 자신의 정체조차 모르는 아이들이 괴물인지, 그런 아이들에게 ‘정상’이라는 기준을 강요해 스스로 괴물로 인식하게 만드는 어른들이 괴물인지, 영화속 인간성을 잃어버린 인물들이 괴물인지, 괴물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인물을 의심하는 영화를 보는 관객인 내가 괴물인지, 영화는 끊임 없이 의심하게 만듭니다.
농도 짙은 인간관계 이어 나가는 것이 퍽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이 담기면 소위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여러 마음들이 담깁니다. 기대감, 그에 수반되는 서운함, 그리고 욕심, 헌신, 그리고 이름 붙이기 힘든 수많은 감정들이 뒤엉켜 알맹이를 특정할 수 없는 모양새가 되어버리죠.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애정이 뾰족한 날이 되어 상처를 주는 순간은 생각보다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관심이란 명목 하에 폭력을 휘둘렀던 것 같습니다. 마음과 다르게 왜 아끼는 이들에게만 상처를 주는 걸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는데, 이 영화를 통해 그동안 그 사람에겐 제가 괴물이었을 것임을 돌아보게 되는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