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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 안 Jul 02. 2023

그물을 던지는 것이다

다섯 번째 이어짐


매일 밤, 조그마한 나무 조각배를 타고 그 호수의 한가운데로 나아가 그물을 던지는 어부가 있다. 호수는 잔잔하고, 밤은 고요하며, 별들은 빛난다.


호수가 얼마나 잔잔한가 하면, 그곳의 수면엔 물의 「흐름」이라던가 「결」이랄게 거의 없어서 마치 밤하늘을 비추는 거울 같다. 그것을 가로지르는 조각배는 흡사 고운 비단을 가르는 날카로운 가위처럼 거침이 없다. 어부가 노를 저으면 젓는 만큼,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 그의 배는 그저 나아간다. 그리고 호수는 아무런 저항 없이 어부를 자신의 한가운데로 맞이한다.


밤이 얼마나 고요한가 하면, 꼭 하룻밤에 한두 번씩은 웬 이름 모를 새가 어디선가 까랑까랑 우는 소리, 이따금씩 물고기들이 호수의 수면 위로 첨벙 하는 소리와, 그리 멀지 않은 어둠에 가린 숲에서 잠 못 이루는 동물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를 밟아 딱- 하고 부러지는 소리, 그 작은 소리들 하나하나가 호수를 가로질러 울려 퍼질 정도로 고요하다.


별들은 또 얼마나 빛나는가 하면, 마치 자신의 불이 잠시라도 꺼지면 이 세상 모두가 자기를 잊을까 강박이라도 있는 것처럼, 눈 한 번을 깜빡 않고 반짝이고 있다. 하지만 별들이 그렇게나 많은데도 그중 단 하나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 기이하다면 정말 기이한 일이다. 하나같이 아무런 말도, 밤새도록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다들 가만히 침묵을 지키며 어부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밤의 표면에 떠 있는 별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고스란히 호수의 수면 위에도 똑같이 뜬다. 저 밤하늘을 우주라 부른다면 이 호수도 우주라 표현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것이고, 그러니 어부는 매일 밤 두 개의 우주 사이에 얇은 나무 판때기 한 조각에 발을 디디고 서있다. 그는 세상이 정해준 우주와 자신이 정한 우주 사이에 있다.


어부의 얼굴은 차분하고, 입은 무거우며, 그의 눈은 반짝인다.

그 잔잔한 고요함 속에서 어부는 일렁이는 빛나는 것들을 반짝이는 눈으로 차분하게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향해 그물을 던진다. 안에 무엇이 걸려들었는지, 걸려들지 않았는지, 아무튼 둘 중 하나가 결정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어느 쪽이 되었든 그물을 다시 천천히 조각배 위로 끌어올린다. 그 모든 것이 진행되는 동안 무겁게 닫힌 입은 단 한 번도 열리지 않는다.


그물은 「던지는 것」인 것만큼이나 「끌어올리는 것」이기도 하다. 무엇을 잡았든 잡지 않았든, 결과와 상관없이 그물은 언제나 걷어올려야 할지니. 무언가를 포획했다면 그것을 회수해야 하니 다시 끌어올려야 할 것이고, 그 무엇도 잡지 못하였다면 그물을 또 던져야 하니 다시 끌어올려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자칫하면 기계적이고 무의미해질 수 있는 그물질인데, 어부는 매번 그물을 끌어올릴 때마다 그렇게 신중하고, 그렇게 유심히 그 결과를 상관한다.


어부는 그것을 매일 밤, 밤새도록 반복한다. 이따금씩 어둠 속 어딘가에서 이름 모를 새가 어부에게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 묻지만, 어부는 그저 묵묵히 그물질을 밤새 반복할 뿐이다. 그렇게 하루, 꼬박 달이 지는지도 모르게 그물과 씨름을 하고 있다 보면, 어느새 어둠이 걷히고 별들은 맑은 호수 아래로 물감처럼 녹아 사라진다. 그러면 어부는 그제야 송골송골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친 뒤 거친 두 손으로 그물을 걷고 뭍으로 노를 저으며 또 한 번의 내일 밤을 기약한다.


이름 모를 새가 어부에게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라고 물어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왜냐하면 어부는 도통 물고기를 잡는 것엔 관심이 있어 보이지 않으니까. 본인이 어부이고 어부가 호숫가에 있는데 잡는 것이 고기가 아니라면 그는 도대체 거기서 그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합당한 질문일 터. 하기사, 어부가 자기 스스로를 어부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조그마한 나무 조각배라도 그것을 타고 있다면, 아무리 한밤중의 호수라도 그 한가운데로 나아갔다면, 아무리 잡히는 게 변변치 않더라도 그물을 던지는 이라면, 그를 어부가 아닌 달리 무엇이라고 부르겠는가.


어부는 그것을 매일 밤 되풀이한다. 밤은 길다. 반복되는 밤은 더 길게 느껴지고, 고요하게 반복되는 밤이라면 더더욱이나 길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평온하게 찰랑이고 있는 호수라지만, 컴컴한 밤 속에, 깊이를 전혀 가늠할 수 없는 새까만 물 위에서, 그 긴 밤새 가냘픈 조각배 하나 의지하려면, 어부가 어지간히 우직한 마음의 소유자라도 문득문득 겁이 날만도 하다. 하지만 어부는 아무렇지도, 밤의 어둠은 아무런 상관도, 호수의 깊이에는 그 어떤 관심도 없다. 사실 어부는 호수의 깊이뿐만이 아니라, 이곳에 어떤 어종이 사는지, 바다에서 흘러들어오는 것인지, 담수인지, 「호수 자체의 그 어떤 무엇에도」 아무런 궁금증을 두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어부는 모두가 잠든 깊은 밤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 컴컴한 호수의 가운데에 서서 물고기는 잡지 않고 당최 무슨 볼 일이 있는 것일까. 그 막막하고 먹먹한 심연과 깊고 광활한 우주의 어둠을 매일 밤 마주 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확실히, 어부는 호수의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호수의 표면 위에 비치는 별들을 보고 있었다. 어부는 매일 밤 별 낚시를 하고 있다. 그에게 호수는 고즈넉한 우주였다. 어부와 별 사이에는 고작 조각배의 얇은 나무 바닥 한 겹만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주의 깊이를 재는 일 따위 그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니 어부는 별들이 온전히 비치는 밤이기만 하다면, 씩씩하게 나무 조각선을 타고 별들을 향해 매일 밤 우주로 출항한다. 그가 노를 저으면 우주가 출렁이고 별들의 고운 춤사위가 한 판 펼쳐진다.


그리고 다들 그것의 낭만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한다.

그래, 그것은 확실히 낭만적이지만, 어부는 결코 낭만에 젖어있지 않다.

그는 누구보다도 차가운 현실의 새벽 공기의 현실에 맨 얼굴로 깨어있다.


그물에 걸려 올라오는 것은 거의 매번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러고 있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그것에선 어떠한 종류의 고결함이, 일종의 숭고함이 느껴진다. 어쩌면 그것은 그의 행동의 반복성에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치 그가 수련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인가. 어쩌면 그것은 호수의 고요함 때문일 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부가 혼자여서일지도. 혹은 그가 쫒는 것이 워낙에 터무니없는 것이라서 그런 것일까. 그것이 덧없어 보이기 때문에, 덧없는 것에 그렇게나 열중하는 모습이 우리를 숙연하게 만드는 것일까. 꿈은 덧없는 만큼 꿈인 거겠지. 하지만 어부는 덧없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의미에도 관심이 없고, 꿈의 크기에도, 그것의 숭고함에도 관심이 없다. 그는 순수히 별을 원하고 있다. 정말로 그것뿐이다.


유유히 하늘 위를 지나가는 여기저기 떠다니기에 딱 적합해 보이는 조그만 덩어리의 구름의 눈에는 어부의 별 낚시를 하는 모습은 일종의 수행, 또는 수련처럼 보였다. 하지만 적어도 어부 본인에게는 그것이 결코 수행이 아니었으며, 그에게 호수에 떠있는 별은 정말로 순수하고 완벽한 의미의 열망이었다. 별을 바라보는 어부의 눈빛은 숨을 고르며 총구로 사슴을 겨누는 사냥꾼의 그것과 같았다. 호수에 그물을 던지는 어부의 마음은 비가 그치길 간절하게 바라며 곡물을 어서 수확할 수 있기를 기다리는 농부의 그것과 같았다. 그는 진심으로 별을 원하고 있었다. 그것이 어찌 진심일 수 있을까. 어부는 적어도 미친 사람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치지 않고서야 그것이 어찌 진심일 수 있을까. 이 사람은 어떻게 제정신으로 한 밤 중에 조각배 위에 서서 그물을 던지고 걷어올리며 호수에 비친 별을 낚으려는 걸까. 하기사, 이것이야말로 진심이 아니라면 요컨대 다른 무엇이 더 순수한 진심일 수 있겠는가.


잡으려고 던지는 게 아닌 어부의 그물에도 기어이 잡혀서 끌려들어 오는 멍청한 물고기들이 가끔씩 있기도 했다. 당연히 그 양이 많지는 않았고, 맛도 변변치 않은 물고기들이었으나, 어쨌든 그것을 어부는 자신이 굽거나 튀기거나 해서 먹어버리거나, 아니면 낮에 장터로 나가서 팔거나, 혹은 자신이 필요한 것과 거의 구걸하다시피 교환해 가면서 근근이 생활했다. 그러니 부엉이인지 올빼미인지 밤에 우는 새가 꾀죄죄한 꼴을 하고선 하염없이 그물을 던지는 어부에게 “도대체 매일 밤 혼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라고 물어볼만하다. 물고기는 안 잡고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냔 말이다. 무엇이냐면, 말했다시피, 어부는 물안개가 없는 밤, 조각배를 타고 나아가 호수 위에 비친 별들을 보고, 그중에서 가장 반짝이는 것을 골라 그물을 던진다. 이따금씩 밤에 우는 새가 묻는 것을 묵묵히 듣기만 하면서. 남들이 보기에 그가 미쳤든 아니든, 진심이든 아니든, 어쨌든, 어부는 그것을 하염없이 하고 있다. 때때로 나직이 노래를 부르며.



성두야 성두야

하늘에서 빛나든 산에서 빛나든

어디에서 빛나든 모두 다 별이네

그래서 나는 산으로 가네


성두야 성두야

바다에서 빛나든 강에서 빛나든

어디에서 빛나든 모두 다 별이네

그래서 나는 강으로 가네


성두야 성두야

오늘 밤 별이 어디에 떴나 묻거든

어디에서 빛나든 모두 다 별이네

그래서 나는 어디나 가네



어부는 매일 밤, 물안개만 뿌옇지 않다면, 비만 오지 않는다면, 달이 차나 기우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별 낚시에 열중했다. 굳이 고르자면, 어부는 달이 기운 쪽을 더 선호했다. 호수의 표면이, 그 우주가, 조금이라도 더 어두운 편이 별을 보기엔 더 좋았기 때문에, 꽉 찬 달은 너무 밝아 그의 낚시에 방해가 되었다. 그러니 어부라는 사람이 굳이 한밤중에, 굳이 조금이라도 더 달이 기운 때에, 호수 한가운데에서 시꺼먼 호수의 심연 어딘가를 보고 덧없이 그물을 던지는 것을 보면서 동네 사람들이 수군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다들 먹고살기 바쁠 뿐이고, 무릇 그물을 던지는 이라면 고기를 한 마리라도 더 잡으려고 하는 게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치」에 맞기 때문이다.


다만 어부는 하늘에 뜬 별을 멀리 올려다보기보다, 호수에 뜬 별을 가까이 내려다보는 것이 더 좋았을 뿐이었다. 「그의 이치」에는 그것이 맞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히려 다른 이들은 왜 그러지 않는지, 외려 이해가 안 가는 쪽은 어부 자기 자신이었다. 하지만 어부는 잠들어있는 이들의 꿈에는 관심이 없었고, 자신은 자신의 꿈을 이루면 될 뿐이었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것은 남들이 원하는 것과는 조금 다를 뿐이라서 그렇다. 그것을 타인에게 관철시킬 필요도, 이해받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휘익- 크게 팔을 휘두르며 별을 향해 초연하게 그물을 던졌다. 첨벙, 잔잔한 호수에 물결이 번지고, 고요한 밤에 빛나는 별은 일렁이며 다시 한번 어부의 그물망을 빠져나갔다.


어부는 미친 사람은 아니었다. 어디가 좀 모자란 사람도 아니었다. 세간의 자신에 대한 평가가 어떤지도 잘 알고 있었다. 어부는 그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았지만, 그저 다만, 이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세상의 모든 이들이 이루려는 모든 일들이, 이것과 무엇이 크게 다른가. 그저 다만, 그에게는 이루고 싶은 꿈이 있고, 그 꿈이 클 뿐이며, 그에게 주어진 것은 조각배와 그물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 조각배를 타고 나아가 그물을 던지는 것이다. 그것뿐이다.


어떤 이는 그럴 것이다. 그가 결국 별을 따지 못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가 매일 밤 호수의 한가운데로 나아갔다는 데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또 어떤 이는 그럴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물을 던졌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어부 본인은 그저 「의미」를 두는 데에는 결코 의미를 두지 않았다. 만약 먼 훗날 그가 끝끝내 별을 따지 못하게 된다면, 그가 자기 스스로의 노력이 헛되었다고 생각하게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진심이었던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또 한 밤, 달이 지는지도 모르게 그물질을 하고 있다 보니, 어느새 오늘 밤의 야음도 걷히고 별들은 투명한 호수 아래로 염료처럼 녹아 사라진다. 어부는 다시 한번 그물을 걷고 뭍으로 노를 저으며 또 한 번 내일 밤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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