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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Dec 23. 2023

[미식일기] 중국미도(中国味道), 강릉

중국인의, 중국인에 의한, 중국인과 한국인을 위한

대한민국에 중국집은 많다, 으레 '중국집'이라는 단어는 그 외에 은어나 비속어를 포함하면 다양한 단어로 사용되지만 표준어를 사용해서 이야기하자면 대한민국에 '중화요릿집'은 많다는 것이다. '중화'라는 말에서 의미하듯이 중국의 음식은 아니지만 중국의 요리가 한반도로 넘어와서 한국인의 입맛과 취향대로 변화된 '중국적인' 한국의 요리를 판매하는 곳이 중화요릿집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이전에 중국의 남부 지방에서 몇 년을 살았던 적이 있어서 본토의 요리를 직접 경험했었기에, 중화요리는 물론 중국요리를 좋아한다. 여기서 필자가 굳이 중화요리와 중국요리를 구분해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중화'요리와 '중국' 본토의 요리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국의 중국집에서 전형적으로 먹을 수 있는 짜장면, 짬뽕, 탕수육은 '중화'요리이지 중국요리는 아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유행이 계속되고 있는 마라탕, 마라샹궈, 궈빠로우, 탕후루는 중국요리가 맞다, 다만 이마저도 한국적으로 상당히 많이 변했기에 '중화'요리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나에게 중화요리와 중국요리 중에 어느 것을 더 선호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중국요리를 더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아주 반갑게도 그런 요리를 하는 식당을 방문했다.


내가 사랑하는 단골 피자집인 '샌마르'의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가면 4층건물 정도의 여러 병원 건물들이 즐비하게 서있고, 그 뒤편은 병원들의 주차장 그리고 그 근처의 노동자들을 위한 식당들이 어깨동무를 한 장정들처럼 널찍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그곳에는 강릉에서 시작된 체인점 중 하나인 '시오야끼' 식당의 본점도 있는데, 그 옆에는 '중국미도(中国味道)라는 큰 간판을 걸치고 있는 식당이 있다. 목재로 된 얇고 작은 넓이의 테라스를 지나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쪽의 계산대와 길쭉하고 작은 부엌에 웍과 화구들이 있고 정면에는 중국 본토의 식당들이 수많은 메뉴들을 자랑하듯이 붙여놓는 음식사진들과 가격들처럼 중국미도의 음식사진들과 가격들이 사진전처럼 배열되어 있었다. 우측을 둘러보면 짙은 회색 페인트칠이 된 높은 벽들에 처음 보는 중국의 간체자들이 '양꼬치와 맥주를 먹는다' '양꼬치' '맥주' 등의 커다란 단어로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중국의 간체자와 음식메뉴사진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한국의 식당들과 차이점이 없기에 독특해 보여서 식당에 못 들어오는 일은 없어 보였다. 이쁜 여자와 내가 중국미도를 처음 방문했던 때에도 우리보다 먼저 2팀 정도가 도착해서 맥주에 양꼬치, 중국식 물만두 등을 즐기고 있었으니까.


"중국에서 살던 생각이 나네, 중국 물만두도 피가 두꺼우면서 쫄깃한 게 참 맛있는데."


"우리는 부추구이, 풍미가지에 마라샹궈 먹을 거지?"


"응응, 그거 먹기로 했잖아."


마라탕보다는 마라샹궈 먹는 것을 더 즐기는 이쁜 여자에게 마라샹궈를 쥐어주고 그 외에는 내가 고른 메뉴들로 중국미도의 음식들을 즐기기로 했다.


"그런데 사장님이 한국분이신지, 중국분이신지 아직은 모르겠네."


"아까 들어오면서 인사할 때 한국말하셨잖아."


"내가 듣기로는 발음이 살짝 어눌하기도 하셨던 것 같아서."


나는 사장님께 소리쳐 식사하기로 했던 세 가지 메뉴들을 주문한 후에 벽에  걸린 사진메뉴판을 쭉 훑어보았다. 1자로 기다랗게 꼬치에 꽂혀서 구워진 새우꼬치나 두꺼운 피의 물만두, 부추구이, 풍미가지 등의 메뉴는 분명 중국 본토 사람들이 요리할만한 음식이기에, 사장님이 한국사람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에도 홀은 물론 배달로도 주문이 끊임없이 들어왔지만 주방에서의 요리속도가 더 빨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사천지방의 매콤하고 얼얼한 마라 향신료에 볶아진 넓은 당면, 두부, 고기와 채소들을 담은 마라샹궈가 제일 먼저 우리의 식탁에 도착했고 부추구이가 잇따랐다.


마라샹궈는 국물이 없고, 마라맛에 볶아진 것이 특징이다


"재료가 다양해서 좋네, 연근이 많아서 더 좋아."


마라샹궈의 아삭아삭한 연근을 집어먹으며 이쁜 여자가 말한다, 다른 곳에서 마라샹궈를 먹을 때 보다 더 많은 수의 연근조각을 올려주는 것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나도 어디 맛을 좀 볼까."


아사삭 사각사각


처음 혀에 닿을 때부터 산초 열매의 얼얼하고 시큼한 향이 확 튀어 오르며 매콤한 사천 고추의 맛이 혀를 찌른다. 그러면서 코로 펑 터지며 올라오는 얼큰한 연기. 아, 내가 좋아하는 마라의 향, 이게 정말 마라향이지.


"콜록, 콜록... 사천의 풍미가 훌륭하네. 화끈한데."


"매콤하고 얼얼해. 그런데 채소들의 식감이 생생하게 씹혀서 좋다."


'마라'의 풍미가 들어간 음식의 특징은 처음에는 그냥 매콤하고 얼얼하다고 느끼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이 매콤함과 산초의 얼얼한 맛이 점점 입안과 혀에 쌓여간다는 것이다. 중국 본토에서 먹는 것처럼 요리를 하는 집일수록 마라의 풍미가 점진적으로 입안을 점령해 가는 속도가 빠르다. 청경채와 당면, 쇠고기, 양고기, 건두부, 푸주, 숙주나물, 버섯 등 각자의 맛과 식감을 가진 다양한 재료가 '마라'라는 하나의 깃발 아래 나와 이쁜 여자의 입안을 점령해 갈수록 우리의 얼굴은 붉어지고 '쓰읍'하며 침을 삼키는 순간이 많아졌다.


"입안이 많이 얼얼한데, 맛있어서 계속 먹게 되네."


"나도 조금은 감각이 둔해질 정도야."



마라샹궈를 먹던 우리는 중간중간 뒤이어 나온 부추구이로 도망쳤다.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썰린 부추들이 오와 열을 정확하게 맞춘 그 위로 쯔란 가루가 굵은 모래처럼 곱게 뿌려져 있었다. 푸릇한 잔디밭에 황토가 뿌려진 듯한 음식, 나는 젓가락을 들어 부추를 살짝 접어 입안으로 돌진시켰다.


아작아작


쯔란의 중국 향신료 풍미와 짭짤함, 매콤함 그리고 거기에 부추향이 섞인 향기, 부추가 머금은 수분과 줄기의 쫄깃한 식감이 매력적이다. 씹을 때마다 입안에 흘러나오는 부추의 향과 수분에 계속 씹고 싶은 사각거리지만 쫄깃한 식감. 구워진 부추에서 나오는 수분이 쯔란의 짭짤함과 함께 입에서 섞이며 제법 균형이 맞는다. 그런데 짠맛이 강하다, 두껍고 기다란 중국식 젓가락으로 흰밥을 둥글게 집어먹는다.



"아, 이 부추구이 거의 밥강도네. 짭짤 매콤한데 식감까지 좋아서 내가 밥을 다 찾네."


"조금 짠 것 같기는 한데 맛있다"


"이거는 거의 밥반찬이라기보다는 맥주랑 잘 어울리겠는데."


"응, 맥주랑 먹으면 맛있겠다. 그런데 여기 뜨거운 물은 없나?"


그렇게 마라샹궈와 부추구이가 반이상 사라질 무렵에 모락모락, 뜨끈뜨끈한 튀김의 뜨거움과 새콤달콤한 향기를 장착한 풍미가지가 등장한다. 그리고 사장님이 오신 김에 중국분인지 알아보려, 뜨거운 물도 좀 요청하려, 나는 중국어로


"라오반 (사장님)"이라고 하자마자 바로 돌아보시는 사장님, 중국분 맞으시구나.


"라오반, 닌 요우 러 차 마?(사장님, 뜨거운 차 있나요?)"


"워먼 메이요우, 뛔이부치(없어요, 미안해요)"


"즈 러 쉐이 예 커이(그냥 뜨거운 물도 괜찮아요)"


"러쉐이? 하오하오, 칭 덩이 샤(뜨거운 물요? 좋아요, 기다려주세요)"


"쎼쎼닌 (감사합니다)"


사장님과 내가 간단한 중국어로 대화를 하자 이쁜 여자는 무슨 말을 했냐고 물어본다. 나는 차가 있냐고 물어봤다고 했고 없으면 뜨거운 물도 괜찮다고 말씀드리니 가져다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방금 중국말한 거구나."


"응응, 원래 중국 본토의 식당은 기본적으로 차를 주는데 여기는 한국이니까 한국인들이 찬물을 찾으니 찬물을 주신거라서, 차는 없는데 뜨거운 물 갖다 주시겠데."


"그래, 뜨거운 물도 좋지."


그리고 얼마 후 사장님은 커다란 맥주 500ml 유리잔에 재스민잎과 뜨거운 물을 가득 담아서 갖다주셨다, 친절한 한국말로


"찻잔이랑 주전자는 따로 없어서, 여기 담아왔어요. 천천히 우려서 드세요."


"앗, 감사합니다. 뜨거운 물 주셔도 되는데, 정말 감사해요."


그냥 뜨거운 물이 나올 줄 알았는데 거기에 찻잎까지 넣어서 차고 넘치게 주시다니, 이런 사소한 친절에 기분이 좋다. 중국 식당에서 흔히 마시는 재스민차를 우려서 마시니 정말로 중국의 중식당에서 밥 먹는 기분이다. 이제 기대하던 풍미가지를 먹어볼까.



"중국 본토에서도 풍미가지는 먹어본 적이 없거든, 어떤 맛이려나."


바사사삭 바사삭


이쁜 여자와 함께 노릇노릇하게 튀겨진 풍미가지를 한 조각씩 집어든다, 옅은 갈색의 투명한 소스가 가지를 덮고 있는 것을, 씹는다. 엄청나게 뜨겁지만 달콤한 맛이 먼저 혀에 닿으면서 동시에 코에는 식초의 산미가 후각세포들을 뚫고 들어온다. 그리고 바삭한 식감과 그 안에는 부드럽고 촉촉한 가지의 속살, 으아 중국 튀김요리의 무지막지한 습격이다, 항복이다 항복. 맛있게 끝까지 잘 먹겠습니다.


"이거 간장, 식초, 거기에 설탕맛이네. 단순한 조합인데 중독적이다."


"바삭바삭한데 새콤달콤하고 짭짤해, 정말 맛있다. 중국요릿집에 들어가서 풍미가지라는 메뉴가 있으면 꼭 시켜 먹으라고 해서 시킨 건데, 진리구나."


한반도의 가지 요리들은 말린 가지를 불려서 볶아 나물이나 무침을 만들어 먹는 것이라 많은 사람들이 그 식감을 좋아하지 않는 식재료 중에 하나이지만, 중국의 가지는 인기가 좋은 음식이다. 튀겨서 맛있는 소스를 뿌리는 풍미가지와 같은 요리들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도 이전에는 가지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가지튀김과 같은 단순한 튀긴 가지요리들을 만난 이후로 '친가지파'로 돌아섰다. 그래서 얘기하고 싶다, 당신이 가지요리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아직 맛있는 가지요리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어느 중국요릿집에 가셨을 때, 풍미가지라는 메뉴가 있다면 꼭 주문해보시길.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풍미가지 한 조각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부추구이를 먹고 풍미가지를 먹으면서 시원한 칭다오 지역의 특산 맥주 한 모금이 절실하지만 먹을만한 상황이 아니니 꾹 참고, 다시 한번 한 조각을 먹는다. 군침의 홍수가 일어날 정도로 새콤달콤한 맛이지만 바삭하고 짭짤한 식감과 맛이 풍미가지의 균형을 잡는다, 바삭한 식감에 이어 다시 부드러운 가지의 속살이 치아 사이에서 고소하게 녹아내린다. 부서진 튀김옷과 그 사이에 새콤 달콤 짭짤한 풍미가지의 소스가 섞이니 젓가락이 계속 재방문 의사를 보이는 궁극의 술안주, 술안주 중의 술안주, 밥강도 중의 밥강도의 자리에 이 반찬이 한자리를 차지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식사를 거의 다 마쳐가면서 다음번 방문에는 꿔바로우, 양꼬치 그리고 중국식 물만두를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중국 본토의 맛을 표현하는 꿔바로우를 못 먹어봤는데, 이곳이라면 사장님과 대화해서 그러한 맛으로 내 추억의 맛을 재현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다.


"닌 쓰 쭝궈런 마?(중국분이세요?) 워 부쓰 (전 아니에요)"


"쓰, 워 쓰 중궈런. 닌 쓰 쨩릉런마? (네, 중국사람이에요. 강릉분이세요?)"


"부쓰, 워 쓰 쉐이위엔런 (아뇨, 저는 수원 사람입니다.)"


간단한 대화를 하면서 내가 어떻게 중국어를 조금 할 수 있는지, 음식이 참 맛있었다는 얘기를 드리면서 가끔 오면 중국어 연습상대가 되어달라는, 간접적으로 단골이 되겠다는 말씀을 드렸다. 정말로 자주 오고 싶은 동네의 가게이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중국 본토 요리의 추억을 먹을 수 있는 맛의 길을 걷는 가게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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