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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Dec 30. 2023

[미식일기] 종로청국장, 강릉

우리 동네 숨은 청국장 한식, 청국장과 고등어가 맛 좋은.

한반도의 태백산맥을 기준으로 동, 서로 구분했을 때 수도권,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를 포함한 거의 모든 서쪽이 폭설왕국으로 변하던 그런 추운 때였다. 필자가 거주하는 강릉은 눈구름이 대관령을 넘어오지 못하여 눈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북쪽에서 추운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고 있어서 집이나 바깥이나, 어디를 가도 추운 그런 겨울날이었다. 평소에는 맛있는 집들을 찾으러 여기저기 페달을 밟거나 걸어 다니며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본인이지만 이런 날에 그렇게 한다면 감기에 걸리기 딱 좋은 것이다.

'근처에 맛있는 집이 하나 있다고 구 바리스타님이 그러셨었는데, 거기나 한 번 가볼까.'


'근처에 맛있는 집'이란, 구 바리스타님이 필자의 거주지 근처에서 아직 '구커피'라는 카페를 하고 계셨을 때 추천을 해주셨던 동네의 청국장 집이다. 평범한 청국장과 한식 메뉴를 갖춘 동네의 한식집이라고 하는데, 점심시간만 되면 근처에 있는 사무직, 건설직을 포함한 수많은 노동자들의 식사장소가 된다고 하셨던 곳이다. 강릉에 있기는 하지만 상호는 재밌게도 '종로청국장'. 하기사, '뉴욕부대찌개'나 '시카고해장국'이라는 상호도 있을 텐데 강릉에 있는 '종로청국장'이 대수일까.


'종로청국장은 가능하면 토요일 낮에 가셔요. 평일 낮에는 사람이 많아서 바쁘니까 복잡하거든요. 자리가 없을 수도 있고요.'


사실 동네에 종로청국장이라는 식당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집에서 멀리 있지 않기 때문에 내가 가기에 어려운 곳은 아니었지만 '한식'이라는 요리방식이 제일 선호하는 요리 종류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까지 여기저기 수많은 식당들을 다녔지만 정작 집에서 제일 가까운 식당 중에 하나는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이다.


"그래, 오늘 마음먹은 김에 가봐야겠다. 오래간만에 청국장 한 뚝배기 먹어볼까."


종로청국장의 영업시간을 확인해 보니 오전 열 시부터 식당을 연다고 되어있었다. 어느 직장이나 점심시간이 빠른 곳은 대략 오전 열한 시 반부터 시작을 할 테니, 나는 오전 열한 시 정도에 이른 점심을 먹으러 가야겠다. 오전에 집안일들과 개인적인 일들을 부지런히 다 마무리 지은 후에 나는 동네 마실 가는 가벼운 차림으로 따뜻이 입고 강릉버스터미널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릉은 '강'과 '언덕'이라는 뜻처럼 필자의 동네에서 터미널로 넘어가는 동안에도 울퉁불퉁 솟아있는 작고 큰 언덕들을 넘어서 편의점과 어린이집 등을 지나서 평지에 놓인 대로 근처 골목으로 넘어가면, 종로청국장이라는 세월의 때가 건물 외벽과 창문에 균일하게 묻어있는 한식집이 나온다. 겉에서 보기에는 영업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근처에 가면 식당 내부의 형광등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서 입구로 들어갔다.


끼이이익 


두 명의 여성 사장님은 내가 들어갔을 때 곧 들이닥칠 손님들을 대비해서 반짝거리는 스테인리스 밥공기에 밥들을 퍼담으시느라 정신이 없으신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식사돼요?"


이른 시간대에 점심을 먹으러 오는 손님들이 많지는 않으신지 휘둥그레한 눈을 뜨시고 나를 보시며,


"네, 들어와요, 이제 막 바닥에 불을 넣었으니까 저기 안 쪽에 따뜻하게 앉아요."


벽에는 색이 바래서 허름해진 시트지로 된 메뉴판과 누르스름한 벽, 주방 근처의 벽에는 여느 집 거실에 있을만한 크기의 텔레비전에서 종합뉴스채널이 흘러나오고 있고 사장님들은 뉴스프로그램을 보시면서 점심 장사를 준비하고 계셨다. 그중에 한 분은 나에게 방석을 친절하게 갖다 주시며,


"손님이 이렇게 빨리 들어올 거라고 생각을 못해서, 아직 바닥이 조금 차가워요, 앉아있으면 따뜻해져요."


"괜찮아요, 저도 점심을 일찍 먹으러 온 거라."


식당의 가운데에는 작은 사무실이나 옛날 학교의 교무실에 있을 만한 가스난로가 열기를 내뿜고 그 위에서 커다란 은색 주전자가 물을 보글보글 끓이고 있으니,


"여기 찬물이고, 뜨거운 물은 저기 난로에서 따라 드셔요."


"네네"


빈 속에 찬물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잽싸게 컵을 들고 난로에서 뜨거운 물을 반 붓고 찬물을 부어 미지근한 물을 호로록 마신다. 자리에 앉아서 메뉴판을 보니 삼겹살로 볶아낸 제육볶음도 먹고 싶지만 2인분 이상이라 과식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청국장에 고등어를 구워주는 청국장 고등어구이를 주문했다. 이 식당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다들 하는 말이 청국장은 취향에 따라서 좋아하지 않을 수 있지만 고등어구이는 꼭 한 사람당 한 마리를 먹는 것이 서로 싸우지 않는 길이라고 했으니.



잠시 주방에서 무언가를 끓이고 지지는 소리가 나더니 살짝 탁한 은색 스테인리스 둥근 쟁반 위에 밥, 청국장, 고등어구이에 반찬들이 함께 올려져 나온다. 여느 한식집에서 볼 수 있는 정겹고 익숙한 구성, 반갑다.


"청국장은 정말로 오랜만에 먹어보는데, 맛이 좀 어떠려나."


작은 뚝배기에서 용암처럼 부글거리는 뚝배기를 한입에 먹기에는 아직 조금 무섭다, 흥분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잠시 후후 불어 식힌 후에 흡입한다.


후루루룩


"오오....! 진하네."



짭짤한 듯 하지만 짜지 않은 된장의 맛이다, 숙성되지 않은 된장의 거칠고 텁텁한 질감도 있지만 콩으로 만든 장맛이 진하고 진한, 땅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는 듯한 콩의 구수한 맛. 냄새나는 청국장의 쿰쿰하고 꿉꿉한 냄새는 없다, 발효된 콩에서 맛볼 수 있는 입안 가득히 퍼져나가는 구수하고 진득한 장맛이 치아 사이에서 부드럽게 부서지는 콩 조각조각마다 진동한다.


"아, 청국장 맛이 입안에 진득하게 눌어붙는 맛인데."


한입 크기로 썰려 하얀 젤리처럼 보이는 정사각형의 두부와 청국장의 밀도 높은 부분을 듬뿍 숟가락으로 떠서 잠시 식히고 입안에 밀어 넣는다.


'으으으, 거의 청국장으로 된 갯벌에 잠기는 기분이군.'



입안에 끈적하고 구수한 청국장 갯벌, 그 위로 잘근잘근 씹히는 콩조각들이 작은 게들처럼 굴러다니고 짭짤한 된장 국물이 밀려들어오는 맛이다. 군대에서 맛있게 먹었던 돼지고기와 신김치로 구성된 청국장과는 또 다른 기분 좋은 맛에 잠시 감동에 젖는다.


하지만 그저 청국장에 빠져있을 수만은 없다, 바삭바삭하고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고등어구이에 젓가락을 가져가본다.


파사사삭



기름에 먹음직스럽고 탱글탱글하게 구워진 껍질 사이를 기다란 쇠막대기로 헤엄쳐가며 먹지 못하는 뼈들을 발라내고 속살 사이의 두꺼운 가시도 꺼낸다. 우선 바깥에서 바짝, 연한 갈색으로 튀겨지듯 구워진 지느러미살부터 먹어본다.


쫄깃


'야아, 이쁜 여자가 오면 사랑할 맛인데'


바삭하게 씹히는 치아 사이로 쫄깃한 고등어의 속살이 씹히면서 육질 사이에 숨어있던 염분과 생선 특유의 맛이 혀 위로 솟구치며 올라온다. 고등어라는 생선이 자체적으로 갖고 있는 약간의 비린맛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는 이 압도적인 고등어의 감칠맛과 식감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겉 부분이 맛있으니까 속 부분도 나름 맛이 괜찮겠군.'


커다란 가시도 다 발라낸 통통한 고등어의 속살과 뱃살을 젓가락으로 잘근잘근 뜯어내어서 밥과 함께 먹어본다, 단단하게 구워진 모습에 저절로 군침이 돈다.



"역시나 맛있네, 부드럽고 탱글 거려"


음식 사진을 여러 번 찍어가면서 혼자 중얼거리는 남자 손님은 고등어의 속살에서 뿜어져 나오는 탱글거리는 살결과 짭짤함에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인다, 사장님들은 이제 막 점심 장사 준비가 마무리되어 가는지 여유를 좀 갖고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을 잠시 집중해서 시청하신다.



청국장과 고등어구이라는 주메뉴의 확인이 끝났으니 다른 밥반찬들도 확인에 들어간다. 붉고 투명하게 버무려진 콩나물무침은 시원한 콩나물의 맛과 아삭함에 들깻가루의 고소한 여운이 입안에 남고, 배추김치에서도 상쾌하고 시원한 감칠맛이 식사 시간의 즐거움을 더한다.


그러다가 다시 청국장의 간질거리는 콩의 식감과 구수한 맛, 짭짤한 맛은 아니고 그저 청국장의 콩맛이 압도적으로 진한 맛이다. 그래서 나는 뚝배기에 담긴 청국장을, 공깃밥이 다 떨어졌지만, 바닥까지 싹싹 비워먹을 수밖에 없었고 고등어구이도 뼈만 남기는 선행을 저질렀다.


"이렇게 맛있는 청국장 집을 집 근처에 두고서는, 내가 너무 늦게 왔구먼."


종로청국장이라는 집의 청국장이 이렇게 훌륭한 줄 알았으면 더 일찍 올걸 그랬나 보다, 이쁜 여자도 같이 데려와서 고등어구이에 삼겹살 제육볶음도 같이 먹고. 나 혼자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 가장 아쉽다.


다음번에 올 때는 꼭, 이쁜 여자와 함께 손 잡고 와서 고등어구이와 청국장, 제육볶음을 다 함께 먹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나는 이른 점심 식사를 배불리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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