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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Jan 28. 2024

[미식일기] 소나무식당, 동해

덜 익은 것을 먹어도 환상적인 양념, 마성의 오리주물럭

덕취원에서 각자의 복부가 남산만 해졌다가 북평오일장과 묵호항의 등대마을을 부지런히 걸어 다니며 홀쭉해지는 기적의 경험을 한 뒤로 우리는 배가 고프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했다. 사실 동해라는 도시가 '북평읍'과 '묵호읍'이라는 덩치가 커다란 읍 2개를 합쳐져서 동해시가 된 것이니 우리가 택시를 타고 동해시를 돌아다녔다고 한들 상당히 많은 거리를 오갔다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묵호항의 등대마을은 등대가 작은 산 위에 우뚝 솟아있는 바닷가 앞 언덕배기의 높은 동네라서 '산책'이라고 쓰고 거의 등산이라고 읽어야 하는, 파도가 철썩이고 갈매기가 끼룩거리고 사람은 헐떡이는 조용하면서도 부산한 항구마을이었으니까.


"저녁에 먹기로 한 식당이 이름이 뭐였더라."


"소나무식당, 닭이랑 오리를 잘한다고 하더라고."


"어디 있는 건데?"


"천곡동? 천곡동굴이 있는 그 동네의 중심가에 있더라고."


이쁜 그녀가 양양 출신이지만 지금은 인천에 거주하고 있는 친한 지인에게서 귀띔을 얻은 동해시의 시민들에게는 인기만점이라는 한식집 '소나무식당'은 리뷰를 쭉 보아하니 평일에도 자리가 있는지 확인하고 가야 하며 가능하면 예약을 하고서 방문하는 것이 좋다는 평이 이어지는 곳이었다. 영업시간도 오후 4시 반부터 시작하는 저녁장사만을 하는 곳, 하지만 거의 매일 저녁 손님이 끊기지 않는다고 동해시민으로 보이는 방문자들은 말하고 있었다.


"흠... 사람이 많아서 예약하는 것이 좋다는데? 전화부터 좀 해보자."


"그래그래..."


이쁜 그녀는 나의 걱정 어린 재촉에 못 이기듯 소나무식당에 전화를 걸어 우리가 방문할 17시 즈음에 예약을 안 해도 되는지 물어본다.


".. 아... 네네... 알겠습니다... 네."


"전화받으신 분이 뭐라고 하셔?"


"우리가 갈 시간은 이른 시간이니까 예약 같은 것 안 하고 그냥 와도 된다고 하시는데?"


"좋아, 좋아. 조금 있다가 슬슬 걸어가면 되겠다."


묵호항에서 좁은 골목을 누비며 등산과 하산을 마친 나와 이쁜 그녀는 동해의 큰 길이 잘 보이는 초록색의 바탕과 흰색의 반인반어 바다괴수가 커피를 파는 유명한 다방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동해에서 알고 있는 괜찮은 카페도 없으니 제일 무난한 곳에서 커피나 한잔 하자는 취지였다. 우리 둘 다 커피를 파는 반인반어 바다요괴의 마법에 홀렸는지 시간도 빠르게 지나가, 우리는 그 카페에서 도보로 10분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천곡동의 중심가로 향했다. 커다란 아파트와 빌딩들, 점포들 사이로 총총거리며 걸어가니 저 멀리 어느 건물 2층에 '소나무식당'이라는 오래되어 보이는 간판이 보인다.


"와, 2층에 있는 식당이었네?"


"2층에 있는 식당이 장사가 잘 되는 것이 쉽지 않은데, 맛이 진짜 좋은가보다."


낡은 건물에 낡은 문, 흰 바탕에 작은 자갈이 깔린 듯한 옛날 바닥 인테리어에 나무 난간에 철제로 미끄럼방지 마감이 된 계단, 콘크리트와 철근 냄새가 날 것 같은 계단을 올라서 들어가니 입구에 들어간 방향을 기준으로 왼쪽 안에는 긴 부엌과, 맞은편에는 단체손님들을 위한 기다란 방, 우측에는 2~4인 손님들을 위한 작은 식탁들, 주방과 계산대, 홀 직원의 동선을 제외하고는 최대한 많은 수의 식탁과 의자들을 놓겠다는 의지가 돋보이는 가구들의 배치에 평소에 이 식당에 얼마나 많은 손님들이 오기에 그런 것인지 호기심이 생겼다.


"2분이에요? 저기 올라가서 앉으셔요."


홀에 계신 직원분에게 안내를 받아서 자리에 앉아서 둘러보니 모든 직원분들이 다 '이모' 혹은 '고모'라고 불러드릴 만한 나이의 여사님들이셨다. 앞치마와 머리에는 두건을 두른 모습으로 손님들을 반갑고 친절하게 맞이하신다. 가게 내부에는 형광등과 커다란 식물 화분들과 메뉴판 외에는 이렇다고 할만한 장식이나 신문, 방송 등에 출연한 것을 자랑하는 증거물들도 보이지는 않았다. 그야말로 정말 '동네'분들을 위한 맛있는 식당, 아마도 예측하건대 방송사 등에서 출연 제의가 왔었음에도 가볍게 거절하셨을 것이 분명하다. 이미 지금 오는 동해시의 손님들만으로도 식당은 충분히 바쁠 테니까.


우리는 이미 먹기로 한 오리주물럭을 시키기로 했지만 배가 꽤 고픈 상태라서 2인분을 주문할지 3인분을 주문할지 고민이었다. 마침 홀 직원분이 오셔서 주문을 받으려고 하시기에 김고로는 물었다,


"선생님, 배가 좀 고픈 상태인데 주물럭을 2인분을 주문하는 게 나을까요, 3인분을 주문하는 게 나을까요?"


"음, 고기를 많이 드실 것이면 3인분이고요 볶음밥도 볶아 드실 거면 2인분으로 충분해요."


"그러면 2인분이요, 양념 고기를 먹고서 철판에 볶는 볶음밥은 못 참지."


"그럼요, 주물럭 2인분으로 딱 됩니다."


동네 이웃집의 친근한 여사님의 분위기를 풍기는 홀 직원분께서는,


"여기 홀에 주물럭 둘!" 외치시고는 다시 계산대에 전화가 울려 퍼지자 응대하러 달려가신다.


"네? 아직 자리 있어요, 몇 명? 6명? 네네, 뭐로 준비해 드릴까?"


이제 막 17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우리가 들어오고 나서 단체룸에 상당한 인원이 들어왔고, 근처의 자리에도 3팀이 넘게 들어오면서 빠르게 자리들이 채워지고 있었으며 앉을 수 있는 자리와 음식을 전화로 미리 주문하는 연락들이 계속 소나무식당으로 날아오고 있었으니 우리가 떠날 때쯤이면 동해시 중심가의 낡은 건물 2층에 있는 한식당의 식탁이 모두 다 채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의 직원분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들어와 소나무식당의 또 다른 인기음식인 닭볶음탕에 소주와 맥주를 주문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는 장정들, 친목모임을 하는 어느 운동 모임의 회원들, 등산복을 입고 등장한 등산회의 사람들, 동네에서 친숙하게 볼 수 있는 우리네 사람들이 손님으로 입장하고 있었다. 평일 월요일의 이른 저녁이었다.


"아직 저녁 6시도 안 되었는데 손님이 엄청 몰리네."


"이 동네에서는 여기가 인기가 좋은가보다."


"위치가 이런 곳에 있어도 이 정도면 여기서 산전수전 다 겪으시면서 오래 장사하셨겠다."


우리가 싫어하는 식재료인 오이가 들어있는 반찬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반찬도 손맛이 좋았고 김치맛도 시원하다. 그리고 두꺼운 철판구이팬에 신선한 채소와 붉은 양념이 묻은 오리고기를 올린 주물럭이 등장한다. 가스버너 위에 올린 음식을 번쩍 들어 가져오신 홀직원분은 옻칠이 된 나무 주걱으로 슬슬 고기들을 뒤집고 볶으면서 얘기하신다.


갓 나온 오리주물럭, 아직 익지 않았다


"이따금씩 뒤집고 볶으면서 익혀주세요, 이렇게 계속 익히시다가 다 익었을 때 드시면 되어요."


"네~"


시장했던 우리는 도토리묵, 도라지무침, 김치 등 반찬들을 주섬주섬 집어서 먹다가 오리주물럭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수증기에 섞인 고추장의 달달하고 매콤한 냄새에 군침이 싹 입안에서 도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특히 나는, 고기가 얼른 먹어보고 싶었다. 양파와 채소들이 투명해지고 버섯도 익은 것처럼 보이니 나는 고기가 다 익었는지 시식을 해보기로 했다, 제발 빨리 먹고 싶으니까.


으적으적 우물우물


은근하게 달콤하며 입안에 착 감기는 고추장의 찰지고 매콤한 단맛과 쫄깃한 오리주물럭의 육질, 끝맛에서 혀를 쿡 찌르며 넘어가는 매운맛과 짭짤함이 기막히다. 와, 강릉의 '감나무집추어탕'에서 먹은 오리불고기의 맛이 생각나는 맛. 깊은 고추장의 맛은 아니지만 묵직하고 감칠맛 터지는 이 맛이 바로 손님들을 이끄는 양념의 맛인가. 그렇게 우리가 오리주물럭은 이제 다 익었다며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어 들어 씹고 있으니 마침 홀직원분이 오셔서 쌈채소들을 갖다 주시고는 고기를 다시 볶으신다.


"엥? 벌써 드시면 어떡해요, 이거 아직 다 안 익었어요."


"네? 먹었는데 쫄깃하고 맛있어서 다 익은 줄 알았어요, 양념 맛이 환상적인데요?"


홀직원분은 입가에 미소를 슬쩍 머금고는 웃음을 참으시며 얘기하신다,


"아니, 그건 양념이 맛있으니까 양념맛으로 드신 거지. 이것보다 더 익어서 고기에 양념이 더 진하게 배면 더 맛있어요. 그러니까 조금 더 있다가 드셔요."


"아이고, 맛있어서 다 된 줄 알았는데 아쉽네."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의외로 식당직원분들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손님들이라 홀직원분께서 당부하신 시간을 조금 더 기다려서 눈으로도 오리고기에 양념들이 잘 배여서 영글 거릴 정도로 빛이 나게 되자 먹고 싶었지만 홀직원분이 오셔서,


"이제 드셔도 돼요~"라고 하실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우리는 착한 손님들이니까.


"네~! 먹자!"


다 익은 오리주물럭, 큼직한 양파로 자연스러운 단맛을 더한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젓가락을 들고 철판 안에 담긴 오리고기를 한점 낚아챈다. 얇지도 않고 두툼하고 씹기 좋은 두께로 썰려진 오리고기는 그냥 보면 불그스름한 제육볶음과도 같지만 지방의 모양과 고기의 형태가 돼지고기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오리고기를 입안에 넣는다. 덜 익었을 때보다는 더 진하고 달착지근하며 입안에 폭포처럼 퍼지는 매콤 달콤한 양념이 압도적인 맛이다. 그 위로 흩뿌려진 들깻가루에서 나오는 고소한 들깨의 풍미가 감칠맛 나고 매콤한 양념의 끝에 견과류의 고소함을 남기면서 마무리한다, 일반적인 닭고기나 돼지고기보다 입안에서 더 튕기는 듯한 식감이 느껴지는 쫄깃한 오리고기의 식감이라 씹으면 씹을수록 양념도 함께 터져 나와서 더 맛이 좋다. 나는 숟가락으로 양념과 함께 채소, 버섯을 퍼먹는다.


"이 양념이 사람을 홀리는 맛이네, 적당히 단맛을 내면서 입안에 착착 감기는 맛이 계속 구미를 끌어."


기름이 섞인 오리고기는 고소하고 쫄깃하다


이쁜 그녀도 입안에 고기와 채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배가 고프기도 했고 맛이 좋으니 말없이 계속 오리고기를 먹는다. 우리나라 어느 지역의 속담에 '오리고기는 옆사람 입에 있는 것도 뺏어서 먹어라'라는 말이 있는데, 오리고기가 그만큼 건강하니까 많이 먹으라는 뜻이지만, 소나무식당에서 먹는 것과 같은 오리주물럭을 먹으면 당연히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한국사람으로서 마늘과 고추맛이 가득한 매콤하고 달콤하며 끈적하고 촉촉한 양념이 묻은 볶은 고기를 어떻게 참을 수 있을까, 그것이 살짝 두툼해서 치아 사이에서 씹는 맛도 으적거리면서 훌륭한 육질의 오리고기라면 불향이 나게 웍에서 구워지거나 직화로 구워진 돼지고기만큼이나 뜨끈한 밥에 참을 수 없는 요리인 것이다.


"이 정도의 오리고기는 집 주변에서 사서 먹을 수 있겠는데, 이 양념의 이 집만의 특별한 맛이지. 주물럭의 양념맛이 좋으니 닭볶음탕의 양념도 궁금해지네."


오리의 살코기도 쫄깃하며 입에 감기는 식감이다


"응, 고추장 양념 진짜 맛있어. 엄청 단맛도 아닌데 좋아. 들깨 많이 들어가서 고소해."


방 안에 들어온 단체손님들을 맞이할, 붉은 고추장 국물 위로 높게 산성처럼 쌓인 닭볶음탕의 모습이 홀직원분의 손으로 옮겨 지나가자 만약에 사람들이 더 올 수 있었다면 닭볶음탕에 주물럭을 시켜서 먹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쌈을 싸먹어도, 떡을 양념에 묻혀 먹어도 양념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맛이다


고기만 먹는 것은 아쉬우니 쌈추와 무쌈에 마늘도 얹어서 고기를 싸 먹을지라도 오리고기를 덮은 어마어마한 맛의 양념은 존재감을 잃지 않는다. 마치 이 집을 여기까지 이끌어온 닭볶음탕의 맛만큼이나 무게감과 묵직함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말이다. 한 숟가락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맛이라 싹싹 바닥까지 긁어먹고 나니 우리가 볶음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잊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차, 볶음밥에 얹어먹어야 하는데. 다 먹어버렸네."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먹자."


"그래, 선생님 여기 볶음밥 2개 볶아주세요!"


마침 우리 근처를 지나가시던 다른 홀직원분께서 식탁으로 오시고는,


"어라, 양념도 안 남기고 야무지게 긁어드셨네요. 볶음밥 갖다 드릴게요~"하고는 철판을 통째로 가져가신다. 김고로는 양념이 안 남아서 아쉽다기보다는 철판을 통째로 다 가져가기 전에 모든 음식을 깨끗이 잘 먹었다는 마음에 다행이고 뿌듯하다. 양념을 밥에 같이 볶기보다는 그 자체로 먹고 싶은 맛이었으니까. 주방으로 들어간 철판은 잠시 지지고 볶는 소리가 주방에서 나더니 하얀 쌀밥과 검고 짭짤한 맛김조각들이 날치알들과 어울려 또 다른 맛을 선사할 것이라고 예고하며 우리 앞으로 다시 등장했다.


"오리주물럭과는 정반대의 냄새가 나네."


주물럭에 비교하면 다소 심심한 맛이 나는 볶음밥이지만 매력적이다


묵직한 것은 변하지 않았다, 그것이 매콤 달콤한 맛이 아니라 들기름과 맛김의 고소하고 짭짤한 풍미였다는 것을 빼고는. 철판을 조심스레 슬슬 숟가락으로, 가마솥의 누룽지 긁듯이 긁어가며 입으로 밥을 후후 불어가며 먹는다. 고열에 볶아진 밥맛이 고슬고슬하고 들기름, 날치알, 맛김과 어울려 짭짤하고 고소한 맛이 속을 뜨끈하면서도 든든하게 마무리 지어주는 맛이다. 오리주물럭과 같은 양념이었다면 솔직히 조금 질릴 수도 있었을 텐데 오히려 이렇게 고소하면서 심심한 맛으로 볶음밥을 마무리하게 되는 것이 더 마음에 들었다. 식사의 마무리가 다가오자 우리 주변을 이미 식사와 반주와 한창인 남녀노소의 무리들이 둘러싸고 그들만의 미식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맛이 좋아, 반찬도 맛이 좋았고."


"그러니까 2층에서 안이 보이지 않는 식당임에도 불구하고 장사가 잘되는구나."


매장을 겉으로 노출하고, 공격적인 홍보를 하는 식당은 아니지만 본인들만의 튼튼한 맛으로 오랫동안 이 자리를 지켜오다 보니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리는 식당은 아니지만 동해시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모르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오가는 식당이 된 '소나무식당'. 어떠한 풍파에도 꺾이지 않고 푸르른 푸른 소나무처럼 앞으로도 그 자리에서 맛있게 뿌리내리고 있기를 바라면서 우리는 '소나무식당'에서의 미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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