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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Sep 16. 2024

[미식일기] 푸짐한밥상, 강릉

살아있는 밥집은 맛있다, 손님이 끊이지 않는 집 앞 밥집



"저 집은 대체 무슨 밥을 하길래, 저녁에도 손님이 가득하지?"


"음? 어디가?"


김고로와 이쁜 그녀가 가정을 꾸린 거주지 근처는 새로운 신축 아파트와 가스 공사, 도로 공사, 신축 건물 공사 등등 공사를 하는 일도 많아서 인부들을 포함한 회사원들과 근처 사업체, 자영업 사무실 등 점심시간의 유동인구가 많은 주택가이다. 그런 주택가인만큼 근처에 밥집들도 꽤나 있는데 그중에서도 앞을 점심이나 저녁 시간에는 앞을 지나갈 때마다 유리창 너머로 사람들이 앉아있고 주방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는 한식 밥집 '푸짐한밥상'이라는 식당.


화사하게 웃으면서 한식 한판이 가득 담긴, 보자기로 감싸인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서는 걸어가는 여성의 그림이 음식의 상호명과 하얀 배경의 간판에 있는 집이다. 이 집이 이 골목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남아있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근처의 음식점들의 간판이 매우 선명함에 비하여 이곳의 간판만이 유일하게 매우 닳아 없어져서 옅어져 버렸다는 사실이 이 밥집의 세월을 증명할 뿐이다. 일부러 처음부터 이렇게 닳아 옅어져 버린 간판을 걸고 신장개업을 할리는 없고, 김고로가 여태까지 다녀본 밥집들의 경험으로 쌓인 '빅데이터'에 의하면 오랫동안 살아남아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의미는 손님이 많이 온다는 의미이며, 손님이 많이 온다는 의미는 맛있다는 뜻. 즉, 김고로에게 '노포'의 의미는 '버틴 세월만큼 어마어마하게 맛있다'이다.


'푸짐한밥상'의 앞을 수십, 수백 번을 왔다 갔다 지나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집 앞에 있는 밥집이기에 흔해 보이고 별 특별한 기운을 받지 못했다는 의미로 시선도 주지 않았었는데 언젠가부터 낮과 저녁에는 이 식당에 손님들이 가득 차서, 그것도 주변에서 공사를 하시는 건설 노동자분들이, 현장 앞에 함바집이 있음에도 불구, 주 고객으로 식사를 하는 장면과 그 외에 주변 사무실과 자영업의 사무원들, 굳이 그 근처까지 차를 끌고 와서 밥을 먹고 가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목격하고 나서는 이 집에 특별한 무언가가 있음을 이제야 발견한 김고로. 꼭 집 근처에 있던 '종로청국장'의 청국장과 간고등어구이를 맛보고서 느꼈던 '왜 이제야 왔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밥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게... 굳이 사람들이 멀리서 와서 먹네..."


마침 그들 앞에서 식당 주변 도로에 주차를 하고서 식사를 하러 들어가는 커플을 보며 김고로가 중얼거린다. 그리고는 다시 말한다.


"다음에는 여기 한번 와볼까."


그리고는 가게 외관을 둘러친 통유리의 반을 차지하는 시트지 너머로 보이는 푸짐한밥상의 메뉴판을 쓱 훑어본다.


'오징어볶음, 제육볶음, 낙지볶음, 두부조림, 청국장, 찌개류에 백반.... 일반적인 한식 밥집 구성. 그렇다면 기본적으로 맛을 잘 살린다는 증거이려나...'


"그래? 그럼 와서 뭘 먹으려고?"


"음... 그때 와서 결정하자."


"그래."


그리고 며칠 후, 비가 조금씩 내려도 이상하지 않은 먹먹한 구름이 하늘을 덮은 날에 김고로는 이쁜 그녀와 함께 푸짐한밥상으로 향했다. 어차피 집 앞에 있는 식당이라 도보로 5분도 걸리지 않는 식당, 시계는 11시 30분을 넘어서 곧 있으면 점심 피크시간이 다가올터이다. 식당에 들어서니 이미 입구 좌우에 있는 입식과 좌식 좌석에는 오전 작업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러 들어오신 노동자분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진형을 구축하고 있었고 그 외에 말끔하게 입은 사무직 노동자분들과 차를 끌고 온 커플들이 몇몇 앉아있다. 두 명이라고 말씀드리니 이제 막 식사가 끝난 식탁을 치워주시고 자리를 안내해 주시는 직원분. 주방에서는 사장으로 보이시는 남자분이 배달과 계산을 하시는 모습, 주방에서 주로 요리를 하시는 이모님들이 화구와 식기세척기 앞을 왕복하시고, 주방 보조와 홀을 도맡으시는 비교적 젊으신 여성분께서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었다.


"사람 많네, 아직 12시도 안 되었는데."


"그러게, 일찍 오길 잘했어."


그들은 볶음 요리는 2인분 이상이라는 메뉴판의 안내에 눈을 돌리고는,


"뭘로 할까? 오징어? 제육?"


김고로는 이쁜 그녀의 생각에 잠시 생각하고는 결정한다.


"오징어볶음을 먹자. 이 집이 정말 맛있는지 아닌지 결정하기에는 그게 좋겠어."


"그래, 오징어볶음. 나는 좋아."


김고로의 생각에, 제육볶음이라는 메뉴는 고기반찬이기에 대부분의 식당에서 주문하면 적어도 평균 이상의 맛을 내는 음식이다. 하지만 오징어볶음의 경우는 다르다, 오징어를 생물을 사용하느냐 혹은 냉동을 해동에서 사용하느냐 그리고 오징어의 전처리를 얼마나 잘하느냐, 전처리된 오징어를 얼마나 솜씨 있게 볶아내느냐에 따라서 식당별로 맛이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메뉴이기 때문에 전형적인 한식 밥집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에 더없이 좋은 메뉴다.


김고로와 이쁜 그녀가 사랑하는 한식집 '남매식당'의 주력 메뉴도 오징어볶음이고 그 맛은 그들을 단숨에 사로잡았었기에 과연 집 앞의 밥집에서도 그들이 행복한 오징어볶음을 먹을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한식 밥집의 오징어볶음이 맛있다? 그러면 그 외에 메뉴는 다 믿고 먹을 수 있다, 김고로는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언제나 예외는 있을 수 있겠지만.


김고로는 이쁜 그녀와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주방에서 어떻게 음식을 조리하는지 슬금슬금 살핀다, 주문이 들어가고 나서 전처리된 재료들이 궁중팬에서 불질이 되는 모습이 보인다, 길고 커다란 불길이 몇 번을 궁중팬 위로 솟아오르며 불향이 살랑살랑 김고로의 콧속으로 들어오는 기분을 느낀다. '과연 저 불속의 음식은 오징어볶음일까?' 왠지 모를 기대감에 휩싸이는 김고로.


"오징어볶음 나왔어요~"



앞에 주문이 밀려있었던 탓에 음식이 나오기를 조금 더 오래 기다려야 했지만 상관없다, 그래도 음식이 제대로 나오면 그만 아닌가. 오징어볶음과 함께 가게의 밑반찬들이 함께 나오며 식탁 위를 수놓는다. 아욱된장국, 꽈리멸치볶음, 김치, 얼갈이들깨무침, 가지볶음, 양파새송이볶음, 꼬시래기 무침 등 집반찬들이 조연을 맞추고 그 중심에 검붉은 양념으로 뒤덮인 뜨거운 오징어볶음이 주연으로 자리한다.


"먹어볼까, 불향이 진동하는데."


"잘 먹겠습니다."


김고로는 눈앞에 보이는 커다란 오징어 살점을 하나 들어 올려서 입으로 가져간다, 기대되는 순간이다.


으적으적



탱글탱글하고 부드러운 오징어의 식감이 어금니 사이에서 수축과 이완을 반복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콧속으로 연기처럼 밀려들어오는 불향. 불에 그을린 설탕의 달콤한 매캐함과 굵은 고춧가루가 씹히며 매콤함이 별사탕처럼 터진다. 그리고 오징어가 신선하다, 생물을 사용하였거나 해동된 오징어의 전처리가 완벽하다는 방증.


"으음, 으으으음!"


연속적으로 헤비메탈 콘서트 장의 관객처럼 헤드뱅잉을 시전 하는 김고로, 반복해서 맛있음을 표현하는 고개를 끄덕거린다.


"오옷, 맛있어!"


김고로보다 해산물을 더 좋아하는 이쁜 그녀도 김고로가 극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마자 바로 오징어볶음을 먹으며 화색을 짓는다. 대부분의 맛있는 밥집들은 음식을 한입 먹자마자 손님들의 입맛을 휘어잡아버리는 강력함을 갖고 있는데, 푸짐한밥상의 오징어볶음이 그러하다. 한입을 먹자마자 신선하고 쫄깃한 오징어살점에 장작불을 문지른듯한 불맛과 입에 찰떡처럼 감기는 달달함의 감칠맛, 거기에 기분 좋은 매운 고춧가루가 쫄깃하고 부드러운 오징어 사이에서 단단하게 씹히며 식감과 풍미를 선사한다.


"이 양념이 특히, 훌륭해."


김고로는 숟가락을 들어 오징어볶음의 양념을 일부러 한 숟가락 떠서 후루룩, 먹어본다. 입안 가득 메우는 달콤함에 침샘이 폭발하며 혀와 입천장이 촉촉하다 못해 이미 축축하다. 오징어볶음에서 조금이라도 해산물 특유의 냄새가 나면 견디지 못하는 김고로이나, 그로 하여금 오징어를 제육볶음처럼 퍼먹게 하는 파괴력을 가진, 그야말로 '푸짐한밥상'이다.


잠시 매콤한 꽈리고추와 사각거리는 얼갈이들깨배추로 입안을 상쾌하게 만든 김고로는 오징어볶음에 함께 들어간 양파와 당근, 양배추, 대파 등을 밥에 올려 먹어본다.



사각사각


'양파와 대파는 달콤하고 부드러우며, 당근과 양배추는 적당히 단단하고 식감이 살아있어. 센 불에서 빠르게 볶아내는 조리방식은 역시나 오징어뿐만 아니라 다른 부재료도 양념과 함께 맛있게 만들어버리는 마법의 힘을 갖고 있지.'


김고로는 푸짐한밥상의 오징어볶음을 먹으며 '여기서 오삼불고기를 내놓았다면 거의 반칙이었겠군'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징어와 채소를 양념과 함께 가득 숟가락에 담아서 밥과 함께 먹는다. 식당에서 내놓는 밥도 오징어볶음을 먹은 덕분에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더 찰지고 단맛이 나는 느낌이다.



'가게 이름 하나 잘 지었네, 푸짐한 밥상이 아니라 푸짐하게 먹을 수밖에 없는 밥상이잖아. 이렇게 맛있는데 누가 메뉴를 한 개만 시키고 싶겠어.'


"와, 메뉴가 2인분 이상시켜야 되는 것만 아니었다면 제육볶음도 시켜서 먹고 싶다."


"그러게, 그런데 양이 많아서 나는 그렇게는 못 먹어."


"나도 그래. 지금 딱 양이 좋아."


거기에다가, 김고로는 이쁜 그녀와 앉아있는 동안에 적어도 서너 팀은 식당에 들어왔다가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보고서 실망한 발걸음을 돌리는 모습을 보았고 거기에 배달도 두어 건 이상은 근처로 다니시는 남자 사장님의 모습을 보며 홀만 운영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먼 거리까지 배달도 해야 했다면 주방에 있는 네 분은 너무나 바쁜 나머지 '어딜보시는겁니까? 그건 제 흔적입니다만?'이라는 밈의 주인공들이 되셨겠지.



김고로는 다시 한번 오징어 살점을 들어서 본다, 불에 익어서 보랏빛이 감도는 오징어껍질이 순백의 살점 위에서 한 줄을 긋는다. 오징어껍질이 남아있으면, 껍질을 제거한 오징어보다 비교적 비린내가 있기 마련인데 이 오징어볶음은 김고로의 편견을 깨부수기 충분했다.


그렇다, 갓 나온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김고로는 이전에 이미 껍질을 제거하지 않은 오징어볶음에 대하여 많은 실망감을 겪었기에 이런 비린내가 없는 오징어볶음에 대한 또 다른 경험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이제 가자, 너무 오래 앉아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못 들어오잖아."


"응, 그렇지. 집에 가서 차 한잔 해야겠어."


그들은 수십 분 전과는 달리 희고 커다란 그릇 위에 오징어볶음이 있었다는 증거인 '붉은 양념'만을 남겨놓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음에 오면 제육볶음 먹자, 분명 불맛이 날 거야."


"그래, 또 오자. 집 앞이잖아."


"그렇지, 집 앞에 이런 가게를 이제야 발견하다니. 아쉽네."


"앞으로 자주 오면 되지."


"그래,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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