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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Sep 22. 2024

[미식일기] 키치마루, 부산

본 가지는 손님이 어떻게 하냐에 따라 바삭할 수도, 달콤할 수도 있습니다

9월로 접어들었지만 한반도의 날씨와 기후는, 굳이 한반도뿐만이 아니라 옆 나라인 일본과 중국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도 이상 기후의 영향을 굉장히 세게 맞고 있는 나날들이지만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한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이 성큼 다가왔다. 문제는, 추석 즈음이라면 서늘했어야 하는 강릉은 무더위가 지속되고 있었고 그에 따라서 더 남쪽에 있는 부산이라는 우리나라 제2의 도시도 한층 시원해지기는커녕 강릉보다 더 더운 폭염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 김고로의 어머니로부터 부산으로 떠나기 전날 급박하게 걸려온 전화는 김고로와 이쁜 그녀의 부산 식도락을 크게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는데...


[아들, 이번에는 집이 너무 더우니 원하는 곳에 숙소 좀 따로 잡아라.]


[...??? 에? 그걸 출발 전날에 얘기하신다굽쇼? 그것도 추석 성수기예요?]


[미안하게 됐다, 숙소비는 내가 다 내줄 터이니 그렇게 하렴. 집이 조금 더우면 선풍기 틀고서 자겠는데 (참고로 김고로의 어머니 댁에는 에어컨이 없다), 너무 더워서 에어컨 시원한 숙소가 아니면 못 잘 거야.]


[아하... 그러시다면야, 찾아볼게요.]


부산으로 명절을 쇠러 갈 때면 항상 해운대구의 산동네에서 머무르는 김고로와 이쁜 그녀이지만 이번에는 해운대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추석맞이 부산 식도락은 시작되었다.


'어디 보자... 이번에 방문할 곳이...'


부산의 터미널이 위치해 있는 노포동에서 숙소로 움직이는 것과, 친지와 친구들을 만나러 가야 하는 구서동, 망미동, 수영구, 센텀시티 등의 위치를 고려해 보았을 때 가장 좋은 위치는 각 지역의 중간에 있는 곳이렸다.


'그렇다면, 숙소들이 많이 몰려있고 그 지역들의 중간 지점인 동래가 좋겠군. 노포들도 꽤 있을 테고.'


부산에서 제일 유명한 노포 중 하나인 동래할매파전 근처로 숙소를 잡은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부푼 마음을 안고 부산으로 출발하여 '기사님'이 아닌 '기장님'이 운항하시는 비행기처럼 빠른 시외버스를 타고 날아 부산에 안전하게 착륙했다. 심야버스를 타고 움직이는 그들이기에 오전 늦게까지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난 그들은 주변에 있는 식당들을 미리 파악해 놓은 김고로의 정보에 따라 아침 겸 점심을 먹으러 동래ㅁㄱ마트 옆에 있는 '키치마루'로 향했다. 원래는 김고로가 생각해 놓았던 수제 가락국수 집과 노부부 사장님들이 운영하시는 노포 중화요릿집이 있었으나 추석 연휴라 휴업이시기에 사실 추석연휴에도 쉬지 않은 키치마루를 갈 수밖에.


숙소에서 조금 걸어서 가니 대형마트가 보이고 그 옆의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니 겉에서 보기에는 큰 대형 단층 주택을 개조한 키치마루와 입간판이 보인다. 가게에서 밥을 위해 사용하는 일본산 고시히카리에 대한 자부심을 나타내는 광고 내용과 요리주점이지만 저녁만 아니라 점심에도 가게를 열기에 점심메뉴판이 미리 가게의 자갈마당 앞까지 나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짙은 회색의 지붕과 아이보리색의 벽, 입구로 들어가는 작은 계단은 한국식 지붕으로 덮였다, 벽들은 큰 유리창으로 열려있다. 바깥에 있는 자갈밭은 주차장처럼 쓰이기도 하겠지. 이 집이 있기 전에는 고기구이나 탕, 전골을 팔던 그러한 가게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김고로였다. 입구로 들어가니 투명한 유리창들 뒤로 깔끔하게 검은 조리사복을 입은 직원분들이 음식을 준비하기 위하여 분주하게 움직이고 계셨고 홀을 보는 직원분의 안내에 따라서 우리는 창 근처로 앉았다. 겉에서 보기에도 안에 있는 손님이 잘 보이는 자리이니, 가게의 첫 손님으로서 제법 괜찮은 자리겠지. 아, 물론 가게입장에서.


가게의 내부도 10팀은 넘게 앉을 수 있는 널찍하고 짙은 색상의 의자와 식탁, 그 위로 요즘 큰 가게에서는 유행인 듯 원격주문기가 키치마루의 음식들을 선보이며 우리의 눈길을 끈다. 가게의 대표메뉴는 관서식 혹은 관동식의 고기전골 '스키야키'와 모츠나베 등이지만 우리는 하루의 첫 끼니이기에 밥과 고기를 함께 먹고 싶은 마음이 컸다.


"어? 여기 주류가 다양하구나."


"낮술 하려고? 괜찮겠어?"


"응, 나는 하이볼 한잔 할래."


"그래... 그럼 그거랑 가지 메뉴가 괜찮아 보이네."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집에서도 '어향가지'를 곧잘 해먹을 정도로 가지로 한 요리를 좋아한다, 한국식 가지무침은 빼고. 가지 덮밥, 가지 구이, 가지 튀김, 가지 만두 등 가지로 굽거나 바삭하게 튀겨낸 음식은 양손을 들고 환영한다. 그런데 마침 키치마루에는 가지와 다진 고기로 달콤 짭짤하게 맛을 낸 니쿠나스동(일본식 고기가지덮밥)과 가지새우 멘보샤가 있으니 음식을 고르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우리가 첫 손님이다 보니 우리 이후 손님들이 계속 들어오기도 전에 우리의 가지새우 멘보샤는 제법 일찍 우리 앞에 등장했다.


키치마루 가지새우 멘보샤

"신기하네, 가지만두 같이 조금 두께가 있는 가지튀김 사이에 새우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지 두쪽 사이에 멘보샤처럼 다진 새우가 들어가 있는 모습은 맞으나 튀김옷은 생각보다 얇았다, 얇은 타이즈를 입은 모습처럼 얇은 가지 두쪽 사이에 다진 새우가 두툼하게 들어가 있고 그 위로 튀김 조각들이 식당 마당의 자갈들처럼 굵직하게 박힌 모습이었다.


바사사삭


키치마루 가지새우 멘보샤

얇은 튀김옷을 입은 덕분에 등(?) 위에 눈송이처럼 가지런히 내려앉은 튀김조각들과 함께 바삭하지만 부드럽게 씹히는 가지, 가열하면 굉장히 부드럽고 매끈해지기 때문에 바삭한 튀김과는 식감의 조화가 환상적으로 잘 어울리는데 그 사이에 이 사이로 굵고 세밀한 새우조각들이 씹힌다. 치아 사이에서 우적거리면서 바삭한 튀김옷과 함께 입안에서 듣기 좋은 앙상블을 만들어내기에 시작부터 기분이 좋다. 거기에 적당히 짭짤하고 구수한 가지와 새우의 맛이 서로를 간섭하지 않고 존중하는 원래의 맛이 어우러지기에 브런치로서 산뜻한 시작이다.


하지만 역시나 사이드 메뉴인지라 양이 많이 나오는 편이 아니기에 식사에 시동을 거는 역할을 마치고 사라지는 가지새우 멘보샤. 고기가지덮밥의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단무지를 씹어본다, 투명하고 누르스름한 빛깔이 곱다.


아삭아삭 오도도독


"음? 이거 유자맛 난다!"


"그래?"


이쁜 그녀가 말하기를 투명한 단무지에서 유자향이 난다고 하기에 김고로도 당연히 한입 먹는다, 시중에서 유통되는 유자 단무지가 있으나 일반 단무지보다는 조금 더 가격이 있는 탓에 자주 볼 수 있는 단무지는 아니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반찬을 맞이한다. 사이트러스향이 나는 무절임이기에 튀김이나 고기류 음식 중간에 같이 먹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렇게 단무지 몇 쪽으로 즐거운 사이 고기가지덮밥, 등장.


키치마루 니쿠나스동

쇠고기와 돼지고기, 가지가 한 소스로 잘 조려졌다. 덮밥 그릇의 반은 밥, 그 위에 그릇 위로 튀어나올 정도로 다진 고기와 가지들이 수북하게 담겼다. 고기와 가지, 된장에서 그을린 불의 냄새가 올라오기에 참지 못하고 숟가락으로 덮밥을 푹 떠서 식사를 시작한다.


"으으으음....!!"


고기조각들이 먼저 혀 위에 닿으며 극강의 달콤함, 하지만 뾰족한 달콤함이 아닌 범위가 넓은 뭉뚝한 달콤함이 혀 위로 한순간에 퍼진다. 일식 된장과 설탕이 고깃 조각들과 함께 구워지며 졸여진 불과 훈연의 풍미가 입안을 가득 메우고 코까지 점령한다. 음식의 첫 숟가락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김고로에게 확실히 자기주장을 하는 음식이다.


"굉장히 달달한 맛인데 짭짤한 간장맛이 함께 있으니 감칠맛이 멱살을 확 잡아당기네."


"그리고 쌀밥 맛있다, 간판에 쓰여있던 고시히카리 쌀알인가 봐."


김고로는 다시 가지와 고깃 조각들 속으로 다시 숟가락을 깊게 쑤셔 넣어 밥과 함께 퍼올린다. 밥반, 고기가지 반을 올려서 천천히 음미하며 씹어본다. 달콤한 감칠맛 사이로 부드럽게 씹히며 채수를 쏟아내는 졸인 가지 옆에서 두툼하게 씹히는 고기의 식감, 부드러운 쇠고기와 쫄깃한 돼지고기가 섞인 다진 고기의 식감이다. 그리고 뒤이어 넘어오는 고슬고슬하며 알알이 씹히는 쌀밥, 파도 속의 모래처럼 매끄럽게 움직인다.


옛날옛적부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의 식사 조합이 무엇이던가, 단백질에 탄수화물 아니던가, 한국에서는 '쌀밥에 고깃국' 거기에 김치 한 조각이면 완벽한 밥상. 일본에서도 음식과 식재료는 다르지만 비슷하지 않으려나, 초밥용으로도 쓰이는 '고오급' 쌀에 달콤한 고기, 그리고 가지라는 채소 한 조각. '쌀밥에 고깃국' 부럽지 않은 '쌀밥에 고기가지', 가지만두 혹은 가지튀김만큼이나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좋아할 만한 맛이다.


처음 덮밥 메뉴판을 열었을 때는 무난하게 고기덮밥이나 먹을까 했었는데, 오히려 평소에는 잘 못 보는 메뉴이기에 주문한 자기 자신을 매우 칭찬하는 김고로였다. 이전에 전포의 카페거리 근처의 일본가정식 집인 '보이후드'에서 먹었던 미소된장 가지구이가 간절하게 생각이 나는 맛이다, 해당 가게의 사장님께서 새로운 도전을 위해 폐업을 하셨기에 더 이상은 먹어볼 수 없는 그 가지구이, 이전에 먹었던 그 추억의 맛이 떠오르는 김고로였다.


좋은 쌀밥의 윤기와 고기, 가지의 윤기가 번쩍인다

"이거 간이 강하고 강렬한 맛이지만 계속 끌리는 매력이 있어."


"응, 먹고 나면 물 많이 마실텐데 그래도 괜찮아."


오랜만에 하이볼을 마시는 이쁜 그녀는 약간 붉어진 뺨과 알딸딸한 분위기로 잠시 기분이 좋은 낙원에 다녀온 듯하다. 맛있는 식사와 술이 있는데 그럴 수도 있지, 암. 처음 묵어보는 동네에서 처음 오는 가게에서 추억의 맛을 다시 먹는 일이 흔하지는 않기에, 추석 연휴의 첫 끼를 이렇게 달콤하고 훈훈하게 시작함이 행복한 김고로와 이쁜 그녀였다.


"저녁에는 뭐 먹기로 했더라?"


"글쎄, 저번에 H군이 얘기해 줬던 거기로 가볼까?"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일어나면서도 그다음 식사 메뉴를 생각하는 그들은 동래의 비 오는 거리로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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