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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일기] 아욱꽃, 서울

대학교 앞 경양식의 정석, 푸짐한 김치볶음밥과 돈가스

by 김고로

김고로를 비롯한 많은 식도락가에게 나타나는 일이지만, 알고 보니 방문을 원했던 식당의 정기휴일이나 임시휴일이 마침 식도락가의 방문 희망일인 경우가 꽤 있다.


금일의 미식일기도 그렇다, 원래 김고로는 현재 공부하고 있는 대학교의 후문에 존재한다는 인기만점 파니니(이탈리아 샌드위치)를 전문으로 하는 카페에 가려고 했었다. 현직 대학생들의 애교와 애정 넘치는 후기가 가득한 곳이기에 파니니를 좋아하는 김고로도 기대를 잔뜩 하고서는 대학교가 있는 지하철 역에 내려서 확인했으나, 아뿔싸, 왜 확인을 안 했을까. 마침 이 카페가 정기휴일이 토요일이다, 대학생들이 주중에 점심을 먹으러 많이 방문하는 카페면 토요일에 쉬는 경우가 많다.


주로 강릉에서 식도락을 다니는 김고로이기에, 수도권 중에서도 특히나 대학가 근처의 식당들 특징은 인지를 잘 못할 수밖에. 김고로는 잠시 고민하면서 지도 어플을 켜고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운이 좋게도 더운 날 장마철 소나기까지 내리니 이리 시원할 수가 없다.


'음, 구관이 명관이라고 그냥 153스트리트 수제버거집을 갈까.'


평소에는 잘 먹지 않는 수제버거의 육즙 가득한 패티와 기름진 맛이 입안에 감도는 상상을 하니 행복했지만 그래도 조금 더 새로운 집을 발굴하고 싶은 김고로.


지도 어플을 보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꽤나 독특한 이름의 식당을 발견한다.


'아욱꽃...?'


아욱, 그렇다, 건새우와 된장을 풀어서 국을 곧잘 끓여 먹는 그 아욱. 아, 맞네, 아욱도 식물이니까 꽃이 있겠구나. 한식집이려나?


김고로는 식당의 사진과 방문객들의 의견을 확인해 본다, 의외로 돈가스와 김치볶음밥을 판매하는 경양식집인데 양을 엄청나게 많이 줘서 남기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며 사장님들이 친절하다는 말로 일색이다.


대학교 근처의 학생들을 위한 식당이라 김고로가 서성이던 대학교 정문에서 가깝다. 김고로는 이전에 방문했었던 수제버거집과 39돈까스집을 지나쳐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니 자색의 간판에 흰색으로 쓰인 '아욱꽃'이라는 큰 글씨의 식당이 있다. 겉 유리면도 자색의 시트지로 반절이 붙여져 있고 나머지 위의 반절은 반투명 시트지로 붙여졌는데 이미 겉에서 보기만 해도 식당에 사람들이 가득이다.


"안녕하세요~"


김고로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부부로 보이는 사장님 내외가 한분은 주방, 한분은 홀에서 일을 보신다. 김고로는 마지막으로 남은 주방 앞의 한 자리에 앉는다, 대부분 4인용 식탁이지만 혼밥을 하러 온 손님들이 많기에 다들 1명 혹은 2명씩 앉아있다. 회색의 벽과 천장에 광택이 도는 갈색 타일 바닥, 주광색과 전구색이 차례로 나열된 조명, 가게 가장 안쪽의 주방은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돈가스를 튀기고 볶음밥을 볶으시며, 주방 바로 앞에 작은 텔레비전에서는 마침 김고로가 좋아하는 외화 중 하나인 '사운드 오브 뮤직'이 상영 중이다.


돈가스와 밥집이라서 메뉴도 단순하다. 돈가스, 치즈돈가스 그리고 김치볶음밥, 거기에 돈가스 종류와 김치볶음밥을 조합해서 정식으로 먹거나 각 메뉴를 단품으로 먹을 수도 있다. 식당에 들어오면서 보니 다들 돈가스에 김치볶음밥을 곁들여 먹고 있기에 김고로도 등심돈가스에 김치볶음밥이 곁들여진 정식을 주문한다.


그리고 뒤이어 어린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이 들어오지만,


"미안해요, 자리가 없어요."


의자는 비었지만 식탁이 다 찼으므로 어쩔 수 없이 추가 손님을 거절하는 사장님, 주로 조용한 혼밥을 위해 오는 손님들이 많은 곳인가 보다. 하지만 김고로는 합석도 개의치 않는다, 창밖에서 기다리려는 심산인지 비 오는 밖에서 스마트폰을 하며 기다리는 학생에게 가서는


"혹시 괜찮으면 합석하실래요?"


"어? 네, 감사합니다!"


잠시 나간 손님이 방금 사장님에게 거절당한 손님을 가게로 데려와 합석을 하자 사장님은 김고로에게 고맙다는 표시로 목례를 하신다, 김고로도 맞목례를 건넨다. 그렇다, 동네 장사에서 손님은 한 명이라도 중요한 거니까.


"김치볶음밥에 등심이요."


아욱꽃에서는 주로 돈가스에 김치볶음밥이 보통인가 보다, 그 이후로도 손님들이 들어오지만 안타깝게도 이제는 자리 문제가 아니다.


"죄송해요, 밥이 떨어졌어요."


"네? 아이고.."


돈가스에 김치볶음밥 정식이 아니라면 흰밥을 가득하게 주는 식당인데 업소용 밥솥에 가득해놨던 밥이 다 떨어지니 이번엔 정말로 어쩔 수 없으니 미련 없이 깔끔하게 거절하시는 사장님.


가게 벽에 붙어있는 대략 20년 전에 방송에 방영되었던 사장님의 모습과 가게의 모습을 보니 지금 주는 밥의 양은 많이 줄은 모습이다, 이전에는 '한라산' 혹은 '백두산'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밥을 퍼주셨다고 한다.


어쩐지, 식당에 대한 의견 중에 '남학우분들에게 딱 맞고, 그 외에 많이 잘 드시는 분들은 만족스럽다'와 '밥이 너무 많아서 다 못 먹어요.'라는 말도 많았는데, 사실로 판단된다.


김고로가 텔레비전에서 나오고 있던 사운드오브뮤직을 보면서 흡족한 표정으로 음식을 기다리고 있노라니 주변 테이블에 있던 손님들은 식사를 다 하시고 나가면서 맞은편에 앉은 합석했던 학생은 김고로에게 고개를 꾸벅이고는 이동한다. 그리고 반갑게 김고로의 식탁에 올라오는 돈가스와 김치볶음밥 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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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에 들어간 커다란 방울토마토를 중심으로 7시 방향에 삶은 달걀 반 개, 10시 방향에 튀긴 맛살, 1시 방향에 튀긴 비엔나 소시지, 11시부터 12시까지 채 썬 양배추 샐러드가 큰손 한 움큼 퍼올린 양으로 산을 만들고 2~4시를 차지한 김치볶음밥 탑과 그 위에 봉긋 솟아오른 달걀프라이 언덕 지붕, 그리고 4시부터 9~10시까지 뻗어있는 큼지막한 등심돈가스 한 장. 놀랍게도 이 구성이 세종대왕님 한 장 가격, 역시 대학가 식당,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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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니쉬처럼 있는 튀긴 맛살과 방울토마토, 비엔나소시지를 먹고 나서는 반숙 달걀프라이가 완숙이 되기 전에 쪼개서 볶음밥과 함께 먹는다. 살짝 매콤한 맛에 고소하고 짭짤함이 밥알 사이사이에서 올라오는데 김칫국물이 적당히 섞였는지 김치의 신맛도 고루 배였다. 김치볶음밥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김고로지만, 한번 퍼먹고는 '어, 생각보다 맛있는데.'라는 마음에 두, 세 번 더 퍼먹고 달걀프라이도 조각내어 먹으니 김치의 상큼한 맛과 참기름의 고소한 맛이 입안에 감돈다. 돼지고기에 김치를 넣고 볶은 쌀밥이 이렇게까지 맛있을 일인가.


쌀밥은 고슬고슬하지는 않다, 입에 착착 달라붙는 완전히 익은 밥으로 볶는 집에서 해 먹는 김치볶음밥, 하지만 배가 고플 때는 내가 한 밥보다 남이 해주는 밥이 더 맛있어지는 마법 덕분에 더 맛있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중간에 쫄깃하게 씹히는 돼지고기와 아삭아삭한 김치조각들이 입안에서 하나로 어우러지며 고소함과 상큼함의 조화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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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스도 동네의 어느 김밥의 천국과도 같은 분식집에서 먹는 돈가스 스타일, 부드럽게 갈려진 곳도 있고 넓게 두들겨 맞아서 쫄깃하게 펴진 부분도 있는 돈가스이지만 김고로가 먹고 싶은 대로 맘대로 썰어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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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로의 개인적인 기준으로, 아욱꽃 경양식집은 굳이 전국에서 찾아와서 기다리면서 먹을 정도의 그런 집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집이 아니더라도, 내가 사는 동네에서 자주 가고 자주 먹는 우리 동네이웃들끼리만 아는 보물과도 같은 식당이다. 사장 부부님들의 손님을 배려하는 태도와 마음, 그리고 주 손님인 혼밥 대학생들을 위한 가성비 넘치는 양을 내어주는 넉넉한 인심이 담긴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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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도 아니고, 유명한 셰프도 아니며, 비싼 재료도 아니고, 멋들어진 인테리어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말에 '밥 먹을 때는 개도 건드리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같이 밥 먹을 사람 없는 사람도 혼자서 밥 먹을 때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편하고 배부르고 넉넉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이 '아욱꽃'이다.


솔직히, 김고로의 지극히 개인적인, '브런치'에 소개를 하고 글을 작성하는 기준에는 미치지 않는 집이다. 하지만 반숙 달걀프라이가 올라간 김치볶음밥을 먹으며 어릴 적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시던 김치볶음밥이 추억을 함께 되새기며 즐거웠고, 돈가스를 먹을 때에는 집 앞 분식집에서 사 먹던 어린 시절의 내가 생각나 즐거웠다.


'미각'의 관점에서는 모자라는 집이지만, '맛'만을 따지는 것이 아닌 '미식'이라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아욱꽃'은 맛있는 밥집이다. 이미 대학가에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포만감의 행복을 주는 것만으로도 합격점을 주고 싶다. 돈가스와 김치볶음밥으로 소유할 수 있는 '아욱꽃'의 소소한 행복이 오래도록 계속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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