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끈한 돌솥밥과 염소고기, 입에서 살살 녹는다
여름이니까, 전 세계적으로 이상기후와 이상고온 등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도 그 여파를 피해 갈 수는 없다. 기상청에서는 이미 영동지방은 불볕더위는 물론 열대야가 일주일 정도 지속된다고 예보를 했으니, 어쩜,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만한 예측은 귀신 같이 잘 맞아떨어진다.
현대과학기술을 총동원한 집합체 중의 하나인 대한민국의 날씨 예측 기술을 칭찬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으랴. 하지만, 그 정확하게 끓어올라버린 날씨 때문에 출퇴근을 하는 모든 노동자들은 녹아내렸고 김고로와 함께 사는 이쁜 그녀도 공동체의 고통을 함께 감내했다.
"온몸이 땀에 절어 녹아내린다.."
직장에서 받고 있는 과중한 업무와 더위로 인하여 해소되지 않은 피로 등이 쌓여 '원기옥'은커녕 원기회복도 되지 않는 이쁜 그녀의 저하된 체력 상태는 며칠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김고로야 집에서 에어컨을 틀고서 재택근무를 하는 직장인이라 그 괴로움을 간접 체험밖에 하지 못하고 눈으로 보고만 있으려니 무언가 미안했다. 그래도 집에서 매일 보면서 사랑하는 사이이지 않는가.
'이쁜 그녀 몸에 좋은 음식이 뭐가 있었더라...'
컴퓨터의 밝은 모니터를 보면서 분주한 클릭과 키보드로 일을 하면서도 이전에 춘천의 장모님께서 이쁜 그녀를 위해서 달여주셨었다던 식재료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개복숭아... 홍삼... 아.. 그리고 흑염소!'
실제로 이전에 이쁜 그녀가 장모님으로부터 흑염소 달인 진액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이전부터 동양의학적으로 '몸이 차가운 사람'에게는 이러이러한 음식들이 좋다더라고 했던 음식들 중에 쑥, 생강, 홍삼, 인삼 등이 생각나다가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성질이 있는 흑염소'라는 말이 김고로의 뇌를 스쳤을 뿐.
'강릉에서는 흑염소... 하면 동궁염소탕의 염소탕과 전골이 유명한데... 좀 더 가까운 곳은 없나.'
일을 하면서 틈틈이 녹색 지도 어플로 강릉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염소탕 집을 검색한 김고로, 마침 택지의 구름다리 아래에 샤부샤부 집이 있었던 자리에 '강릉흑염소온담'이라는 염소고기 전문점이 얼마 전에 생기지 않았는가.
'거기다가 그냥 염소도 아니고 마침 흑염소, 딱이네.'
지도 어플을 통해서 강릉흑염소온담의 메뉴 구성을 살펴본 김고로는 이쁜 그녀가 좋아하는 돌솥밥에 1인 정식과 같이 깔끔하게 염소탕이 곁들여진 사진을 보면서 일단은 식당이 마음에 들었다, 사진으로 맛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오후 5시가 넘어서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김고로는 이쁜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여보세요?]
[응, 오늘 집에 오면 몇 시야?]
[한 6시 반쯤? 왜?]
[같이 몸보신하러 안 갈래?]
[몸보신? 응, 좋아.]
'몸에 좋다' '몸보신에 최고다'라는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고 한반도에 종족의 씨가 마를 때까지 먹어치운다는 한국인 유전자를 물려받은 사람들답게 '몸보신'이라는 단어에는 거절이 따르지 않는다.
이쁜 그녀가 집으로 돌아오자 대충 나갈 채비를 하고서는 강릉 택지로 가는 버스를 타고서 구름다리로 향했다. 함께 퇴근하는 직장인들 그리고 대학생, 고등학생들과 구름다리에서 내린 그들의 앞에 강릉흑염소 온담이 바로 보인다. 흑염소탕과 전골의 조리된 모습을 보기 좋게 사진으로 유리창 안쪽에 걸어놓았다.
김고로와 이쁜 그녀가 가게로 들어가려 하니 들어오는 손님들을 미리 홀에 계신 사장님께서 보고 계셨는지 문을 열어드리며 안내를 하신다. 가게를 둘러보니 원목과 벽돌무늬로 장식이 된 내부장식이 '흑염소탕'이라고 하면 으레 생각나는 '토속음식점'에 박혀있는 고정관념과는 다르게 경양식집이 어울리는 꾸밈이다.
이쁜 그녀는 에어컨 바람을 좋아하지 않기에 식당 영업도 간접적으로 도울 겸 일부러 창가 자리에 앉는 이쁜 그녀와 김고로. 김고로는 염소탕을 '특'으로, 이쁜 그녀는 '일반'으로 주문한다. 그들의 주변에는 지긋하게 나이를 드신 대여섯 명의 어르신들로 구성된 팀들과 흑염소편백나무찜에 소주를 기울이는 40대로 보이는 남성 손님들이 보인다.
한쪽 벽에는 흑염소 사진과 인형, 그리고 대관령에 있는 흑염소 목장에서 직접 흑염소를 가져온다는 인증서, 한동안은 오픈 이벤트로 식사하는 손님들에게 인원수대로 흑염소 진액을 증정하며 따로 판매도 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이쁜 그녀가 스마트폰으로 남아있던 잔업을 하는 사이에 김고로도 잠시 SNS의 이웃들을 둘러보기도 하고, 서로 이런저런 일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 금방 흑염소탕이 식탁 위로 등장한다.
돌솥에 흑미를 살짝 섞은 돌솥밭에 흑염소탕 뚝배기, 그리고 김치, 숙주나물, 어묵볶음의 간단한 밑반찬에 돌솥의 밥을 불려 숭늉을 만들기 위해 둥굴레차를 주신다. 잠시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으니 흑염소의 잡내나 고기 군내가 없이 깔끔하다. 깔끔한 흑염소탕에 1인 상차림, '흑염소탕'이라는 음식에 거부감이나 어려움을 느낄 수 있는 젊은 세대들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라고 김고로는 생각했다.
김고로는 일부러 흑염소탕을 '특'으로 주문했는데, '특'과 '일반'의 차이점은, '특'에는 흑염소 갈빗살과 배밑살이 추가로 더 들어간다는 점이다. 소, 양, 돼지, 닭 갈비는 많이 먹어봤으나 흑염소의 갈비는 처음인 김고로. 굵은 빨대와 같이 굵기이지만 갈비의 모양으로 둥글게 휘어있는 갈빗대에 작은 벽돌 같은 갈빗살이 붙었다. 젓가락으로 잡아서 뽑으니 압력솥에서 푹 익어 나온 갈비찜의 살점처럼 '쑤욱' 깨끗하게 빠진다.
두툼한 살점에 얇게 깔려있는 지방이 맞물려 국물을 머금고 영롱하게 빛이 나니, 한식의 식사예의에 어긋나지만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기 전에 고기부터 한입 먹는다.
우적우적
위, 아래 어금니의 사이에서 씹히는 두툼한 유부와도 같이 부드럽게 씹히며 씹으면 씹을수록 이 사이에서 살살 녹아내리면서 매콤 짭짤한 국물 맛이 보의 물이 터지듯 입안으로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그 고소함은 보너스로 마무리.
"와아, 갈빗살이 진짜... 입에서 녹네."
그리고 김고로는 이어서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서 마셔본다.
후루룩
염소고기의 진한 육수맛은 그대로인데 염소의 냄새가 약간은 그리울 정도로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커피에 비유하자면 COE (Coffee of Excellence) 원두로 내린 드립커피와 같은 깔끔함.
"국물 깔끔하고 맛있다. 나는 염소탕 처음 먹어봐."
김고로를 따라서 먹으러 온 염소탕이 첫 염소탕 경험인 이쁜 그녀는 잡내 없이 말끔한 염소탕 국물과 쫄깃한 살코기가 마음에 드는가 보다.
"그래? 된장을 베이스로 탕을 끓이는데 염소고기 특유의 고소하고 진한 맛이 일품이지. 시내에 있는 동궁염소탕 분점에서 먹었던 염소탕은 여기보다 고기맛이 더 진한 편이야."
그리고 김고로는 다시 염소탕의 국물을 후루룩 퍼먹는다. 구수한 된장의 맛과 고소한 염소고기의 감칠맛이 육수에 녹아든 깻잎, 얼갈이, 들깻가루와 엎치락뒤치락 섞여서 시원하고 고소한 맛으로 혀 위로 올라온다.
김고로는 그리고 한 개 더 들어있는 염소고기의 갈빗살을 게눈 감추듯 입안에서 녹인다. 씹으면 씹을수록 부드럽게 으스러지며 씹히는 식감이 매력적이고 소고기와는 다른 촘촘한 육질의 식감이 참 재밌는 맛이다.
거기에 부추, 파, 깻잎, 팽이버섯, 얼갈이 등이 채로 썰려 국물을 묻히고 젓가락에 잡혀 올라오면 채소들의 아삭아삭한 맛에서 흘러나오는 고기육수의 구수함과 된장국물의 짭짤함.
사각사각 아삭아삭
이전에 먹었던 염소탕집의 '국물 반 고기 반'의 고기 가득한 염소탕과 옅은 된장국물도 맛있었지만, 진한 된장국물에 여러 채소들과 품질 좋은 염소고기가 다양한 식감과 식재료의 맛으로 어우러진 균형 잡힌 탕도 제법 맛이 좋다.
김고로는 뚝배기 밑바닥에 가라앉아있던 무거운 고기들 중에서도 지방이 촘촘히 섞인 배밑살을 잡아 채소와 함께 먹어본다. '배밑'에 있는 '살코기'이니 갈빗살보다는 조금 더 물컹하고 부드러운 지방이 장조림과 같은 각지거나 둥글둥글한 모양으로 탕에 들었다.
말캉말캉
잘 삶아진 장조림과 같은 육질이라고, 처음에는 느꼈으나 그것보다 두 배는 더 쫄깃하다. 아무래도 기름이 더 속살 안에 포진하고 있기 때문에 그건 당연하겠지만, 일반적으로 염소탕에 넣어주는 염소고기보다 곱절로 더 쫄깃하고 튀어 오르듯 씹히는 식감, 일반 대신에 흑염소탕 '특'으로 주문하기를 정말 잘했다고, 김고로는 스스로를 칭찬했다.
각각의 고기들을 구별해서 경험한 김고로는 이후 고기, 채소, 국물을 수저로 마구 퍼먹으며 대관령에서 온 흑염소의 영혼과 육체를 즐겼다. 쫄깃함과 고소함에 이어지는 채소들의 생기 넘치는 사각거림, 그리고 따라오는 고소 하면서 살짝 매콤한 된장 국물. 거기에 완벽하게 잡힌 염소 고기 특유의 잡내.
'염소탕'이라는 음식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고정관념 때문에 처음이 어려울 뿐이지, 한 번이라도 먹어보면 그 이후로는 누구나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맛이다.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탕을 다 비운 후에 돌솥에 일찌감치 부어놨던 한국인의 후식인 둥굴레차 숭늉을 즐기며 식사를 마치려는 찰나,
"저희 가게에서 식사하시는 모든 분들께 지금 흑염소진액을 증정해드리고 있어요, 한번 드셔보세요. 따로 판매도 하고 있습니다."
가게 안의 안내문처럼 흑염소진액이 담긴 비닐포를 주시는 사장님. 이미 몸이 많이 뜨거운 김고로는 흑염소 진액을 먹으면 몸이 더 달궈져 불타오르기에 아쉽게도 흑염소 진액은 모두 이쁜 그녀에게 양보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흑염소 진액을 마시고 출근한 이쁜 그녀는 퇴근 후 귀가하고서 밝은 표정으로 한마디를 바로 건넨다.
"나 흑염소 진액 먹고 원기 회복 했어."
다시 생기발랄하게 활력을 되찾은 이쁜 그녀를 보며 김고로는 그저 흐뭇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