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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일기] 황산밀면, 부산

황해도에서 피난 온 남자, 부산의 밀면장인이 되다

by 김고로

해외에서 친척들이 한국에 방문하시기로 하여, 부산과 진주에서 함께 여행이 결정된 한 달 전. 그리고 시간은 흘러 여행을 함께 하기로 한 7월이 다가오자 나는 부산에서 잘 살고 있는 나의 친우 H군이 생각났다.


부산에서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친척들의 통역 및 가이드를 해야 하기에 시간이 없어 H군을 만날 틈은 없지만 그래도 생각이 나서 잠깐 전화를 걸어 최근 근황과 부산에 있는 식당들에 대한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시작하면 당연하게도 이야기는 음식과 식당으로 귀결 지어지며 끝이 난다.


"우리 회사 근처에 황산밀면이라고 밀면집이 있는데, 거기 밀면이 꽤 괜찮더라. 아, 많이 먹는 고로씨는 반드시 곱빼기에 만두 시켜 먹어야 배가 차니까, 알아두라고."


"내가 얼마나 먹는지 귀신처럼 아는구먼. 고마워."


김고로는 파스타와 같은 국수 종류를 참 좋아하는데, 부산의 자랑인 밀면도 이전에는 부산에 방문할 때마다 내호냉면에 들려 먹을 정도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호냉면은 가는 길이 조금 복잡하여 지금은 쉽게 가겠다는 마음을 먹지 못하는데, 이번에는 부산을 방문하시는 친척분들의 마중도 나갈 겸 H군의 직장이 있는 부산역 근처로 향했다.


부산역과 부산항의 근처라서 평일에도 유동 인구가 많지만 주말이라 그런지 인구가 더 불어나 보였다. 하지만 주요 대로가 아닌, 길쭉하고 커다란 빌딩들의 등을 볼 수 있는 부산역 주변 뒷골목은 평일이나 주말이나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게 차이가 없다.


회사들의 몰려있는 곳이라 그런지 카페와 식당들과 그 입구들이 즐비해있다. 날이 더워서 그런가, 부산역에서 멀어질수록 사람들이 잘 안 보인다. 그리고 멀리서 찾기가 어렵지만 근처에 가니 커다란 간판으로 '황산밀면'의 글씨가 보인다. 식당 입구의 바로 앞에만 이름이 붙어있어서 이 식당의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면 찾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는 김고로였다.


시트지로 꾸며진 큼직한 통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니 골목에 있어야 할 이 동네 사람들은 여기에 다 모여있는 착각이 들만한 장면이 펼쳐진다. 안쪽의 공간까지 합하면 적어도 40명까지도 앉을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의 수, 가게의 가장 안 쪽에는 화장실이 있고 음식이 조리되어 나오는 주방이 보인다.


가게의 한쪽 벽에는 이 '황산밀면'집의 창업주가 본인의 후손들에게 한반도가 통일이 되고 나면 꼭 방문해 달라는 황해도의 고향집 그림과 상세한 지도가 그려져 있다. 황산밀면의 창업주가 되시는 어르신은 한국 전쟁으로 인하여 고향인 황해도를 떠나 대한민국에 정착하시고 여러 경력을 거쳐서 현재 자리에 황산밀면을 세운 연혁을 볼 수 있었다. 먹는 것만 밝히는 김고로도 이러한 이야기를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코끝이 시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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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밀면을 맛있게 먹고 어르신의 밀면은 최고라고 마음속에 간직하며 예를 표하는 일도 중요하겠지. 김고로는 브런치를 거나하게 먹은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았지만 친구인 H군의 조언을 따라 물밀면을 곱빼기로 주문한다, 하지만 만두까지 먹을 자신은 없어서 주문은 거기까지. 함께 식당에 간 김고로의 어머니는 일반 물밀면을 주문하신다.


김고로가 앉은 주변을 둘러보니 메뉴에는 이북 식당의 '요리부' 메뉴에 해당하는 '어복쟁반'도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근처 동네에 사는 주민들인 듯 관광객과는 다른 수수하고 편한 복장을 입은 손님들이 가게의 대다수였다,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편하게 먹으러 오는 식당이라, 김고로는 이 밀면집이 상당히 괜찮을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부산여행 부산맛집 동네맛집 황산밀면 황해도 부산밀면맛집 밀면맛집 부산역.jpg 밀면의 고명으로 올라간 삶은 돼지고기의 맛이 어마어마하다. 깊은 육향에 부드럽고, 서걱서걱한 식감.


"밀면 나왔습니다. 저기 양념장에 식초, 겨자 등 있으니 넣어드시면 됩니다."


황산밀면의 물밀면은 내호냉면의 밀면과는 다른 분위기와 맛이다, 이미 그 외관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 가운데에 얇은 두께로 잘 말려 나온 밀면, 그 양옆으로 육수가 보이는데 한쪽은 양념장이 들어가지 않은 짙은 갈색의 탁한 육수, 나머지 한쪽은 붉은 양념장이 잔뜩 들어간 붉은 주황색의 육수. 하지만 결국은 양념장이 육수 전체에 고루 퍼져 붉은 밀면을 이루겠지.


"잘 먹어봅시다."


후루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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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로는 스테인리스 사발을 들어 올려 아직 붉은 양념장이 침범하지 않은 짙은 갈색의 육수를 마셔본다, 쇠고기로 육수를 뽑았다고 하는 식당의 안내가 보인다. 여름날의 더위를 물러가게 하는 시원함에 이어 살코기를 많이 넣어서 육수를 뽑았을 때 혀에 느껴지는 고기육수의 달콤함이 시원한 파도처럼 입안에 밀려들어온다.


"와아, 이거 뭔데 이리 맛있나."


평소 육고기로 된 육수나 음식보다는 채소와 해산물을 더 좋아하시는 김고로의 어머니지만, 잘 뽑아진 고기육수가 맛이 좋으신 듯 생각보다 매우 잘 드신다.


"맛있네, 괜찮다."


"오, 입에 잘 맞으세요?"


그도 그럴 것이, 고기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은 고기에서 느껴지는 잡내와 누린내, 은근한 피맛을 기피하는데, 황산밀면의 육수는 달콤하면서 고기의 진한 맛이 콧속까지 스며들면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쇠고기에서 단맛과 고기맛만 뼛속까지 뽑아내었다.


김고로는 육수에 대한 감탄사를 잠시 접어두고 노릇노릇하게 상아빛이 감도는 밀면을 젓가락으로 말아 올려 흡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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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루루룩


쫄깃쫄깃


밀가루로 만든 얇은 면 특유의 쫄깃함과 탱글함, 그리고 씹을 때마다 꼬들꼬들하면서 튕기는 식감. 다른 지역에서 먹을 수 있는 차가운 면요리와는 두드러지게 다른 식감이다, 이로 끊기 힘들 정도로 질기거나 뚝뚝 끊어지는 식감도 아니다. 밀가루면 특유의 찰기가 차가운 냉수를 만나며 생기는 쫄깃하고 꼬들꼬들한 느낌, 치아로 씹다 보면 오랫동안 씹으며 이 맛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크게 차오른다. 튼튼한 치아를 물려주신 부모님께 감사를.


김고로는 그리고 한쪽에 쏠려있던 양념장을 밀면 그릇 안에 크게 푼다. 고춧가루와 큰 고추조각들, 잘게 다져진 마늘과 양파의 결들이 양념장 안에 보인다. 그리고서 다시 한 모금 크게 육수를 마신다.


후루룩


마늘의 알싸함은 없고 얼큰한 맛과 고추씨, 건고추가 사각사각, 오독오독 씹힌다. 그리고 느껴지는 양파의 달착지근함. 달콤한 고기에는 역시나 마늘과 고추를 곁들여 먹어야 맛있다, 차가운 음식도 그런가 보다.


부산여행 부산맛집 동네맛집 황산밀면 황해도 부산밀면맛집 밀면맛집 부산역 4.jpg 짙은 육수 속엔 고추, 마늘, 양파가 잔뜩 담긴 얼큰한 양념장이 숨어 맛의 균형을 잡는다


이쁜 그녀는 밀면의 육수가 무언가 '미끄러지는 듯한 단맛'이 있어서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황산밀면의 밀면 육수는 달콤하면서도 향신료가 가득 들어간 양념장 덕분에 이쁜 그녀도 문제없이 '호, 불호' 중에 '호'라고 얘기할 맛이다. 달콤함에 마늘과 고추의 조합, 약간의 매콤함과 알싸함이 육수의 차가운 달콤함을 중화시켜 주기에 균형이 잘 잡힌 맛이다.


김고로가 특히나 더 좋아하는 부분은, 고추씨와 건고추가 사각거리듯이 바삭하게 씹히는 식감이 쫄깃하고 매끌매끌한 밀면과 매력적인 궁합을 이루는 그 식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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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수에 어느 정도 담가 놓고서 차갑게 육수를 잔뜩 빨아놓기를 기다린 돼지고기를 젓가락으로 집어 씹는다.


우걱우걱


뒷다리를 사용했지만 기름이 적절하게 섞인 갓 나온 수육만큼이나 부드럽고 차갑게 움츠러든 육질 사이로 사각사각, 서걱서걱 거리며 치아를 일깨우는 식감이 일품이다. 거기다가 군내 없는 고기맛은 더 훌륭하고.


찰진 맛, 단 맛, 매콤함에 다시 식도를 식혀주는 차가운 밀면 육수. 60년 동안이나 이 자리에서 밀면을 판매해 주시고 그 맛을 이어주신 그 세월과 정성에, 김고로는 그저 그 맛에 감탄하며 마음속으로 깊은 감사를 표했다.


'황산밀면을 처음 세우신 어르신은 아직 살아계시려나? 사후에라도 고향에 가실 수 있기를, 고향 사람들 그리고 가족들과 조우하실 수 있기를'


배가 아직 다 꺼지지 않은 탓에 밀면 육수까지 다 비우지는 못한 김고로, 아쉬움을 남기고는 부산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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