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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일기] 천황식당, 진주

비빔밥에 담긴 진주의 얼, 비단 같은 생고기가 비벼진 꿀맛

by 김고로

이번에 프랑스에서 한국을 방문하신 이모와 이모부는 사실, 가족 계보를 따지자면 김고로에게는 이모할머니와 이모할아버지와 같은 분들이다. 작년에 김고로에게는 '삼촌' '숙모' 뻘인 이분들의 자녀분들이 한국에 와서 김고로, 이쁜 그녀와 함께 즐거운 한국 관광의 시간을 보냈다.


올해에는 서울에서 국제적인 워크숍이 있으셨던 이모부께서 워크숍에 참여도 하실 겸, 이모와 함께 한국에 있는 가족들을 보고 싶다고 하시어 부산과 진주 등을 다니며 통역과 가이드를 위해 김고로가 이분들을 맞이하러 간 경우였다.


김고로의 증조할머니께서, 이분들의 할머니가 되시는 분의 조카셨고 (김고로의 집안에서는, 이 할머니께서 하와이 이민 1 세대 셨기에, '하와이 할머니'라고 불리셨다) 생전에는 하와이 할머님과 본인의 증조할머니가 편지를 꾸준히 교환할 정도로 친분이 있었다. 직접 김고로의 조부모님을 방문하러 오시기도 하셨었고.


20세기 초반부터 이어온 깊고 긴 가족의 뿌리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그 후손들의 교류까지 결실을 이어오고 있다. 김고로 조상님들의 본래 출신지는 진주이기 때문에, 이분들을 모시고 진주에 가서 조상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분들이 사시던 동네에서 식사를 한다는 일은 매우 뜻깊은 일.


그렇게 김고로는, 뜻깊은 여행을 위해 서울에서 워크숍을 마치신 이모와 이모부를 모시고 부산에서 진주로 향했다. 진주로 들어오는 어귀에서부터 볼 수 있는 남강의 아름다운 모습과 주변을 둘러싼 넓은 산맥의 광경에 이모부는 스마트폰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연신 촬영하신다.


김고로 일행은 진주의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진주에서 안내를 도와주시기로 한 감사하신 분과 함께 점심을 하기 위해 택시를 잡는다. 김고로가 점심식사를 위해 선정한 식당은 '천황식당'이었다. 현재도 천황식당이 있는 중앙동은 김고로의 조상님들이 진주에 사실적에는 '평안동'으로 불려 지금은 중앙동이 되었다. 조상님께서 사시던 집, 출석하시던 교회와 학교들이 모두 그곳에 모여있고 지금은 진주 교회, 진주 갤러리아 백화점, 중고등학교들이 비봉산 아래에 모였다. 옛날에는 '부르주아 동네'라고 불렸던 곳이지만 지금은 그 별명은 없고 인심이 넘치는 중앙시장이 자리 잡은 평범한 동네다.


그렇기에 아직까지 중앙동에서 일제강점기부터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천황식당에서의 식사는 김고로 일행에게 조상님들의 얼과 그때의 식사를 얼추 음식으로 맛볼 수 있는 식사. 진주의 대표음식 중 하나인 진주비빔밥은 고려시대 때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음식이기에, 조상님들께서도 그 옛 시절에 주변에 있는 천황식당에서 적어도 한 끼 이상은 끼니를 드셨을 거라 생각하면서.


천황식당의 입구는 대한제국 시절 사용했을 듯한 나무 격자에 유리가 끼어진 미닫이문, 그 오른쪽에 흰 배경에 커다랗게 파란 글씨로 '천황식당'이라고 붙었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근대화가 시작되고 있던 시절 혹은 5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식당으로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멋들어진 테이블과 등받이가 낮은 의자이지만 유기로 된 식기와 그릇들을 제공하고 위생을 위해 머리 두건과 앞치마들을 두르신 점원분들이 홀과 주방에서 움직이시는 모습을 보니 먼 옛적 아낙네들이 이와 비슷하지 않았으려나 하는 착각을 하는 김고로.


이 날 진주는 차로 두어 시간 떨어진 부산과는 큰 차이가 나는 섭씨 39도를 기록하는 무더위였기에 김고로 일행은 11시 30분 정도에 식당에 빨리 들어가려고 했다. 여러 매체에 출연한 이력이 있고 역사가 깊은 만큼 평소에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기에, 괜히 바깥의 뙤약볕에서 외국의 손님들을 서있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감사하게도 아직 천황식당은 만석을 채우지 않았고, 만석과 같은 많은 손님들이 식사 중이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천황식당이 처음부터 판매하던 진주비빔밥과 그리고 냉면을 먹는 사람들이 많다. 철판에 지져서 나오는 남도식 불고기도 많이 먹지만 날이 더워서 냉면을 먹는 사람들이 압도적, 냉면을 외관을 보니 진주식 냉면은 아니고 이북식 평양냉면과 비슷해 보인다.


김고로 일행은 자리에 앉아 김고로의 조상님, 가족, 진주 그리고 우리를 안내해 주시기로 한 분이 어떻게 진주에서 우리를 돕게 되었는지 등등 처음 만나는 만큼 많은 이야기를 꽃피우고, 진주비빔밥을 주문한다. 진주비빔밥은 생 소고기가 고명으로 올라오기에, 생고기에 거부감이 있다면 고기를 익혀서 올려달라는 주문도 가능하다.


대화가 즐거운 사람들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음식도 금방 나온다. 기본 반찬은 김치, 깍두기, 콩나물, 오이탕탕이에 쥐포무침. 진주비빔밥은 깍두기 모양의 선지가 들어간 일명 '탕국'이 곁들여 나온다. 경상도식 매콤한 소고기뭇국이지만 고춧가루는 약간만 들어간 탕에 선지와 다진 고기가 들어갔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진주에서 볼 수 있는 탕국이다. 탕국은 경상도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국물요리로 지역마다 넣는 재료가 많이 다르고 방식도 다르다.


(부산에 있는 김고로의 집안에서는 맑은 국으로 끓이는데 홍합, 새우, 조갯살 등의 해산물에 무와 쇠고기를 넣는다.)


김고로가 이전에 진주를 방문했을 때 먹었던 진주비빔밥은 중앙 시장의 제일식당에서의 식사였다. 당시에도 담백하고 슴슴한 간으로 식재료의 맛이 양념고추장과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맛이라고 생각했었다.



비빔밥 위에 올려진 양념고추장을 젓가락으로 콕 찍어 맛보니 약간의 매콤함이 있지만 거기에 달착지근하고 고소하며 담백한 맛이 더 도드라진다.


'우선 비벼볼까.'


식기를 들어 올려 식사를 시작하시긴 했지만 즐겁게 대화에 더 집중하고 계신 분들을 방해하지 않고 김고로는 자신의 식사에 빠져든다. 굵기가 굵고 짙은 금색으로 빛나는 유기 젓가락을 들어서 쓱싹쓱싹 비빔밥을 비비기 시작했다. 진주에 있는 다른 육회비빔밥 식당과 비슷하게 채소들을 다지거나 채를 쳐놓았다. 무채, 고사리, 애호박, 얼갈이배추에 김가루지만 쇠고기 육회와 애호박이 수북하게 밥 위에 쌓였고 고추장도 짠맛이 거의 없다는 것을 보여주듯 숟가락으로 크게 한 술 떠서 가운데에 정점을 찍었다.


비빔밥을 고루고루 비비고 나니 '나도 고추장이다'라고 얘기하듯 고운 고춧가루 분자들이 눈에 띈다. 일단 숟가락으로 비볐으니 한 숟가락 먹는 김고로.




사각사각


진주를 처음 방문했을 때 먹었던 맛있는 진주비빔밥의 맛은 천황식당에서도 그대로다. 고슬고슬한 밥알 사이에서 비빔밥의 채소들이 숨이 아주 살짝만 죽은 채로 '나 안 잔다' '나 안 죽었다'라고 외치듯 식감을 그대로 유지한 채 씹힌다.


얼갈이배추가 아삭아삭 씹히고 그 옆에서 고사리가 거의 고기와 같이 쫄깃하게 잘근잘근, 부드러운 무생채가 으스러지듯이 소곤거린다. 생고기가 많이 들어갔다 보니, 김고로에게 이 생고기의 질감과 맛이 가히 예술이다.


'햐, 이 쇠고기 봐라. 육회가 따로 없네.'


사실 육회를 고명으로 넣었으니 육회 맛이 나는 법. 매끈매끈거리듯이 치아 사이에서 꿀렁이는 육질이 부드럽고 미끄러운 비단결의 식감이 난다. 씹히면서 아직 육질 안에 남아있는 육즙이 어금니 사이에서부터 모래사장 위 펼쳐지는 흰 거품의 파도처럼 혀 위로 터져 나온다.



'이렇게 맛이 좋으니까 굳이 제사 때만 먹는 음식이 아니라 보편적인 음식이 되었겠지. 생고기에 거부감만 없다면, 누가 싫어할까.'


비빔밥의 한 숟가락의 맛을 즐긴 김고로는 잠시 진주식 선지탕국에 관심을 돌린다. 재미있게도 천황식당에서 내어주는 탕국의 선지는 깍두기와 같이 정육면체 모양을 갖췄다, 선지를 만드시면서 틀을 내어 굳히시거나 굳은 선지를 그렇게 정형하듯 자르시는가 보다. 옆에서 식사를 하시던 프랑스 이모도 선지를 보고서 묻는다.



"고로, 이게 뭐야?"


"소의 생피를 굳힌 거예요."


"오, 그래?"


그 대화를 듣고 있던 프랑스 이모부가 얘기한다.


"프랑스에도 창자에 피를 넣어 굳힌 '피소세지'가 있어. 그것과 비슷한 음식이구나."


"본질적으로는 그렇죠."


고기가 부족하니 소의 신선한 피를 굳혀서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만국공통이었나 보다. 김고로는 두 분께 선지에 대한 설명을 드리고는 다시 자신의 식사로 돌아온다. 맑지만 약간의 짭짤함과 고기의 구수함, 거기에 콩나물의 시원함이 가득한 국물에 잘근거리는 선지 특유의 식감에 고소함이 가득하다. 콩나물도 아삭아삭 살아있듯이 씹히니 진주에서는 식재료의 근본적인 맛과 식감을 살려서 즐기는 조리법이 옛적부터 유행인가 싶었다. 그리고 김고로는 그러한 요리를 좋아한다, 식재료의 맛을 더 배가시키는 요리들.


구수하고 진한 탕국의 맛으로 잠시 입과 목을 축인 김고로는 다시 비빔밥에 집중한다. 김고로 개인적으로 생각하기는, 진주비빔밥은 맛의 조화보다는 '식감의 조화'를 중시한 음식이 아닌가 싶다. 쌀알을 하나하나 느낄 수 있는 고슬 거리는 쌀밥에, 그보다 더 강한 식감인 아삭한 얼갈이에 단계적으로 식감의 강도 낮아져 가는 고사리의 쫄깃함, 애호박의 으스러지는 식감과 으깨지는 무채.



씹으면서도 내가 씹는 식재료가 무엇인지 구분을 할 수 있으니 그 식감에서 채수와 각각의 맛이 혀의 미각세포 위로 떨어질 때마다 '이건 그것이 씹히는 맛!' 하면서 혀와 치아 사이로 굴러다니는 음식조각들을 음미하는 재미. 그리고 육회가 잔뜩 씹히기라도 할 때에는 인생에 아직까지 한 번도 당첨되지 않은 로또에 당첨된 듯한 고기맛. 치아 사이에서 튕기는 동시에 입안을 서서히 잠식해 가는 부드러운 고깃 결과 구수한 육즙이 서민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고오급'스러운 맛을 낸다.


마지막은 고소한 장맛과 심심한 달착지근함으로 무장한 고추장이 후식처럼 장식하니, 김고로는 진주비빔밥 안에서 균형이 잘 잡힌 한식 상차림을 맛보는 기분.


"나한테는 양이 많아서 다 못 먹겠어."


일반적인 한국인의 식사량보다 더 적은 양을 드시는 이모와 이모부는 다 드시지 못했지만 상당히 맛이 좋다고 말씀하신다, 비빔밥이라는 음식이 익숙지 않은 음식에 생고기를 고명으로 드시니 더 어색했다고는 말씀하셨지만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드리니 뜻깊은 점심 식사 메뉴에 만족하셨다.


물론, 김고로는 그릇을 싹 다 비웠고.


음식을 통해 조상님들의 얼을 살핀 그들은 진주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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