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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일기] 홍질목, 강릉

연곡 산골의 추어탕집, 어르신들이 줄을 서는 그 식당.

by 김고로

전날, 효주실내마차에서 이쁜 그녀의 모임 지인들과 반주를 곁들인 저녁 식사를 하는 김고로와 이쁜 그녀. 갑작스럽게 김고로에게 비보가 전해진다.


[고로님, 이번 주에 오기로 했던 알바분께서 갑자기 못 나온다 하여 비상입니다. 내일 미식투어는 아쉽게도 갈 수가 없게 되었어요.]


김고로의 미식일기는 이전부터 읽어 온 독자님들 이시라면 아시겠지만, 김고로는 강릉 샌마르피자의 사장 겸 피자장인 되시는 피자대장님과 절친한 사이로 한 달에 한 번 미식투어를 행한다.


효주실내마차를 방문했던 날의 다음 날에 피자대장님의 여자친구신 수달양과 이쁜 그녀를 포함하여 4인 모임으로 미식투어를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생업의 이유로 가능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내일 피자대장님이 가지 못한다고 하시네, 어쩌나."


"그래? 그거 아쉽네. 내일 '홍질목' 가려고 했었잖아?"


"응, 거기가 자차가 없으면 가기 어려워. 연곡면에서도 산골짜기에 있어서 대중교통도 타는 곳에서도 멀리 있거든."


몇 달 전, 이쁜 그녀의 가족분들이 강릉에 방문하여 영동 지방의 1세대 바리스타 중 한 분이신 박이추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카페에 가려고 7번 국도에서 연곡으로 빠지는 작은 길을 지나던 김고로는 신기한 광경을 목격했었다.


어둡고 축축한 날씨, 비가 오는 날은 아니었지만 외식이 당기는 날도 아닌 그런 날. '홍질목'이라는 추어탕을 전문으로 하는 어느 가게 앞에 지팡이를 들거나 머리카락이 하얗게 쇤 어르신들이 양옆에 자녀분들을 도움을 받거나 다른 도구의 지탱을 받아서 가게 앞에 줄을 길게 서 있거나 간이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


'대체 무슨 식당이길래 저렇게 어르신들이 줄을 길게...?'


잠깐 차를 타고 가며 지나간 장면이었지만 홍질목 앞에 어르신들이 길게 동아줄처럼 늘어선 현장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관광객들이나 비교적 나이가 젊고 어린 식객들이 그런 모습은 봤어도 어르신들이 그러는 일은 흔치 않으니까, 그 덥고 습한 날에.


스마트폰을 들어 '홍질목'을 검색해 보니 김고로는 이 식당을 하나도 알지 못했었음에도 불구, 강릉 지역에서는 상당히 이름이 있는 (그런데 왜 김고로는 몰랐지, 미식의 세계는 넓고 광대하다) 추어탕 집이었다.


다시, 실내효주마차에서 다음 날의 일정이 어그러짐에 대하여 대책을 고심하는 김고로와 이쁜 그녀. 그들은 이쁜 그녀의 지인인 '이팜'과 '마루'와 함께 술을 기울이는 중이었는데, 마침 다음 날 시간이 있다는 이팜을 이쁜 그녀가 섭외 성공. 얼떨결에 김고로의 미식투어에 함께하게 되신 이팜님께 김고로는 감사한 마음에 큰 절을 올리고 싶었으나 식사를 대접하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진짜 이렇게 나는 밥값 안 내도 되는 거야?"


"그럼요, 홍질목은 차 없으면 가기 어려운 곳이라 교통편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 어찌 돈을 받겠습니까."


기쁘고 행복한 등가교환의 법칙을 지켜낸 그들은 다음 날 오전, 10시 30분부터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합류하여 홍질목으로 향했다.


7월의 무더위가 한창 내리쬐다 못해 아스팔트가 끓어오르는 덥고 화창(?)한 날씨, 거기에 평일 점심시간이니 홍질목에 도착한 그들은 텅 비어있는 홍질목에 입장한다.


홍질목은, 김고로가 앞서 말한 대로, 강릉에서 주문진으로 향하는 7번 국도를 타고 가다 보면 갑자기 연곡으로 잠깐 빠지는 작은 오르막 길. 산을 올라가면 숲 속으로 들어가면 작은 정원과도 같은 홍질목이 등장한다.


자갈밭과 화려한 총천연색과 같은 색채를 자랑하는 바람개비들이 팔랑거리고 목재와 철물로 생동감을 갖게 된 조각과 모형들이 식당 주변에 즐비하다. 거기에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벤치들은 덤.


바깥의 풍경에 비해 현대화가 이미 끝난 유리로 된 자동문을 턱 하고 열고 들어가서 자리를 찾아 앉는 김고로 일행. 아직 손님들이 올 시간은 아니었지만 형광등 아래 (이미 대낮이지만) 대낮처럼 밝은 부엌에서 밑반찬들을 커다란 스테인리스 대야에서 만들어내고 계시는 사장님과 직원분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홀로 나오신다.


"몇 분이세요?"


"3명이에요."


"아이고, 아직 에어컨을 다 켜놓지는 않아서 덜 시원한데. 저쪽으로 들어가서 앉으세요. 에어컨 켜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김고로 일행은 사장님께서 친절하게 안내해 주시는 식당의 안 쪽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는다. 가게는 생각보다 널찍하다, 한 번에 최소 50명 정도는 앉을 수 있지만 이 가게 앞에 손님들이 줄을 선다는 것은 그 이상의 더 많은 손님들이 온다는 의미겠지.


거실처럼 보이는 넓은 메인 홀, 그 옆에 곁방처럼 뻗은 작은 방 2개와 부엌. 원래는 이 터가 어떤 집터였을지는 모르지만 왠지 모를 친숙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이려나.


"사장님, 저희 추어탕 3인분에 추어튀김 하나 주세요."


김고로는 메뉴판에 추어탕은 물론 추어튀김이 눈에 띄자 당연히 추어튀김도 주문한다. 추어탕집에서 흔히 내놓는 음식이지만 추어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빼놓지 않고 주문하는, 사랑받는 메뉴다.


강릉여행 강릉맛집 동네맛집 홍질목 연곡 추어탕 추어튀김 3.jpg 홍질목의 밑반찬. 깍두기와 겉절이가 매력덩어리


홍질목은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영업을 이어 온 저력 있는 가게다, 이 집의 위치와 홍보를 거의 하신 적이 없음을 고려해 봤을 때 식당의 실력과 입소문으로 지금까지 버텨오셨다고 김고로는 짐작했다.


식당에 붙어있는 안내문에 '추어탕은 주문과 동시에 조리가 시작되오니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다는 말이 있음으로 보아 김고로는 당연히 기대감 섞인 인내로 음식을 기다렸다.


강릉여행 강릉맛집 동네맛집 홍질목 연곡 추어탕 추어튀김.jpg


"추어튀김 드릴게요."


탕보다는 조리 시간이 비교적 짧은 추어튀김이 먼저 작은 대나무 소쿠리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멀리서 보면 꼭 작은 고추튀김의 외모를 가졌으나 자세히 보면 거뭇거뭇한 미꾸라지의 색깔이 튀김옷 위로 드러난다.


바사삭


추어튀김이 생각보다 기대 이상으로 바삭하다. 이전에 먹었던 추어튀김들은 튀김옷이 바삭하기보다는 가능한 얇게 미꾸라지의 겉표면에 붙어서 미꾸라지의 육질과 식감이 도드라졌으나 홍질목의 추어튀김은 바삭하고 강렬하게 씹히는 튀김옷으로 손님을 기선제압.


바삭바삭


강릉여행 강릉맛집 동네맛집 홍질목 연곡 추어탕 추어튀김 1.jpg
강릉여행 강릉맛집 동네맛집 홍질목 연곡 추어탕 추어튀김 2.jpg


별가루처럼 부서지는 튀김옷의 조각들 사이로 부드럽고 쫄깃하기까지 한 미꾸라지가 부드럽고 매끈거리며 씹혀 식도로 빨려 들어간다. 추어튀김을 먹을 때, 김고로가 한 가지 조언드리는 바는 추어튀김을 베어문 이후에 굳이 추어의 잘린 단면을 볼 필요 없다는 사실. 특별히, 잘려나간 미꾸라지의 단면을 관찰하여 생선의 해부학을 연구하는 고상한 취미가 있으신 분들이 아니라면 추어튀김을 한 번에 입에 넣고 씹거나 두 번에 잘라서 먹되 그 잘린 단면은 쳐다보지 말라고 권해드린다. 그 이유는 그 잘린 단면이 식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만 말씀드리겠다.


잘린 단면이 그리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라는 사실 외에는 추어튀김은 단단한 튀김옷과 매끄러운 미꾸라지의 육질이 서로의 식감을 보완해 주며 그저 간장에 콕 찍어 씹음만으로도 훌륭한 전채 요리다. 홍질목의 추어탕은 현재는 대한민국 대부분 지역에 보편화된 '미꾸라지가 뼈까지 다 갈린' 남원식이라 추어튀김은 '통 미꾸라지는 이런 맛이구나'하는 깨달음을 얻기에도 훌륭한 음식.


튀김옷과 미꾸라지 육질의 훌륭한 풍미에 빠져 추어튀김이 금방 증발해 버린 그 자리를 뜨끈뜨끈한 육개장의 외모를 닮은 추어탕이 채운다.


매콤하고 코를 톡 치는 정도의 맵기에 표고버섯, 부추, 마늘, 대파와 민물고기로 맛을 낸 매콤한 탕요리에 빠짐없이 들어가는 보너스 수제비, 그 위에 풀어진 달걀이 요리를 완성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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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루룩


된장의 묵직한 베이스에 고춧가루와 고추의 매콤함이 콧구멍을 푹 찌르며 들어온다. 하지만 예상보다 맑고 가벼운 국물의 맛에 눈이 번쩍 뜨이고 미묘한 감칠맛이 혀에 오라를 감고 잡아당긴다.


"오우, 국물이 뜨끈하고 매콤한데 감칠맛이 감도네."


"맛이 육개장이랑 비슷한데, 다른 맛이야."


이쁜 그녀도 추어탕을 함께 먹으면서 탕에 들어가 있는 부재료들의 구성 때문에 육개장을 먹는 기분이라고 한다. 하지만 민물고기가 주재료이고, 김고로의 생각에는 닭육수를 근본으로 하여 조리를 하기에 전체적으로는 깔끔한 시작과 마무리를 하는 추어탕이다.


후루룩


아삭아삭 사각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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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을 한 입 더 마시며 입과 목을 축여 추어튀김의 기름맛을 벗겨내고, 부추와 대파 표고버섯을 젓가락으로 건져 씹어본다. 채소들을 국물에 듬뿍 적셔 먹으니 처음 먹을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한국인의 맛'인 다진 마늘의 풍미가 머리 꼭대기까지 솟아오른다.


매콤하고 얼큰함의 기본이 되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맛, 고추와 마늘 거기에 된장의 구수함이 어우러지니 이미 시작부터 든든하다. 그리고 식감이 좋은 다른 채소들과 뿜어져 나오는 채수들, 각자의 풍미를 지키며 육수에 섞이니 달콤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추어탕은 추어탕, 국물과 채소들 사이에서 가열된 민물고기의 구수함과 은근한 진득함이 표면으로 솟아오르면 풀어진 달걀이, 미꾸라지의 맛과 함께 솟아오르는 매운맛을 한 박자 늦게 식혀준다.


"처음 먹었을 때에는 그냥 그런 맛이라고 생각했는데 먹을수록 맛있다."


"저도 그래요. 무언가, 이상하게, 묘하게 맛이 좋아요."


김고로와 마주 앉아 함께 식사를 하는 이쁜 그녀와 이팜도 그들의 홍질목 추어탕에 대한 감상을 나눈다. 김고로도 그들의 의견에 동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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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수저를 떴을 때는 생각보다는 평범한 추어탕이라는 감상이었으나 먹으면 먹을수록 점점 김고로를 홍질목의 추어탕이 빨아들이고 있었다. 김고로가 추어탕을 먹는 것이 아니었다, 홍질목이 김고로를 추어탕 안으로 빨아들이며 잠식했다는 표현이 맞겠다.


'이 묘한 미꾸라지 탕의 감칠맛이 홍질목을 지금까지 버티게 한 저력이겠구나.'


김고로는 추어탕과 함께 나온 포슬포슬한 감자밥을 밥그릇으로 나온 도자기 사발에 담긴 추어탕에 말아서 먹으며 생각했다. 감자밥과 함께 추어탕 국물을 흡입하니 추어탕에서는 크게 느껴지지 않던 추어탕의 구수함이 배가 되어 김고로의 후각세포를 깨운다.


매콤함, 깔끔함, 구수함과 진득함에 이은 묘한 감칠맛. 강렬한 양념의 맛도 아니며, 한국의 평범한 재료만을 사용했지만 그것이야말로 기본기를 탄탄하게 잡은 홍질목의 추어탕이며 손님들을 끌어모은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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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로 일행이 식사를 하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젊은 관광객 커플이 들어오더니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손님들이 들어와 점차 홍질목의 공간을 채워나가는 모습이 김고로의 눈 안에 들어온다.


'당최 이 사람들은 어떻게 여기를 알고 오게 되었을까, 아마도 나와 비슷했겠지? 맛있는 음식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찾아내니까.'


쫀득거리는 수제비 반죽에서 터져 나오는 추어탕 국물의 감칠맛을 치아 사이로 얌전히 씹으며 김고로는 혼자 보이지 않는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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