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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일기] 영동막국수, 강릉

사과맛 그 막국수, 달고 시원한 바닷가의 막국수집

by 김고로

덥고 더운 8월의 그 어느 날, 전국이 폭염이었던 주말 오후에 아시는 형님과 만나서 일하기로 했어서 김고로는 자전거를 타고 회산동의 어느 아파트 단지로 내달렸다.


컴퓨터의 바탕화면에 걸릴 만한, 화창하고 맑고 구름 한 점이 없는 그러한 여름날이었다. 동네 형님과 일 이야기를 하려는 찰나, 형님이 물어보신다.


"고로야, 점심은 먹었냐?"


아직 정오가 되지 않은 시간이라 김고로는 당연히 점심을 먹지 않았다. 생각보다 시간에 잘 맞추어 끼니를 챙기는 그.


"아뇨, 아직 안 먹었어요. 형님 뵙고서 일하려고 했죠."


"그래? 그럼 우리 밥 먹고 하자. 일이 급하지는 않으니까."


"오, 좋아요!"


"시원하게 막국수 한 사발 하러 가자, 그럼."


그리고 그는 자신의 흰색 카니발에 김고로를 태우고 강릉의 어느 바닷가를 향했다. 김고로와 형님이 가기로 한 곳은 송정해변. 송정해변은 강릉에서 이름난 안목, 남항진, 강문, 경포 등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진 해변이고 근처에 관광객들을 위한 시설도 적어서 강릉의 지역민들이 해송밭을 거닐며 산책을 하거나 해변의 소나무 아래에서 소풍을 하는 장소.

하지만 강릉의 전체적인 관광객 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송정 해변에도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이전보다 훨씬 많아 보이니 '생각보다 외지 사람들이 많네'라고 생각하는 건 김고로의 기분 탓만은 아닌듯하다.


송정 해변의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형님께서는 광택 없는 검은색의 양철과 같은 벽과 통유리로 된 접이식 미닫이창으로 된 '영동막국수'라는 집으로 김고로를 데려가셨다.


'이전에 이쁜 그녀랑 송정해변을 꽤 많이 왔었는데, 왜 이 집은 처음 보는 느낌이지.'


김고로는 이쁜 그녀와 송정 해변에 올 때면 주로 솔밭을 거닐거나 해변에서 누워 있는 한량과 같은 행위들을 즐겼기에 해변에서 조금만 옆으로 더 걸어가면 막국수 집이 있는 줄 알리가 없다.


한창 성수기인 강릉이지만 관광객이 많이 없는 송정 해변이라 막국수집도 기다리는 일 없이 바로 착석해서 주문할 수 있었는데, 막국수와 만두메뉴 그리고 수육만 있는 단순한 메뉴판이 마음에 들었다. 김고로와 형님은 물막국수나 비빔막국수가 없던 시절 양념이 얹어진 막국수에 육수를 부어 먹던 '전통' 막국수를 먹기 위해 비빔막국수를 주문하고 육수를 추가로 주문했다.


가게는 대략 10팀 정도가 앉을 수 있는 크지 않은 규모였지만 막국수라는 음식 특성인 빠른 회전율과 홀에 서너 명의 인원을 배치하며 손님들을 많이 받는 식당이었다. 어두운 색의 타일로 장식된 길고 좁은 주방이 형광등 아래에서 뜨거운 수증기를 내뿜으며 한증막의 여름을 대표함과는 대조적으로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져 있는 손님들의 공간은 막국수 한 그릇으로 열을 식히는 이상적인 여름을 보임이 김고로에게는 인상적이다.


영동막국수의 특징은 가게에서도 볼 수 있는 문구에도 쓰여있듯이 막국수에 사과를 갈아 넣는 과일육수라는 점, 시원한 동치미에 사과는 달콤하고 청량하다는 공통분모가 있으니 그 조합에 박수를 쳐줄만하다.


김고로는 고성과 속초에 거주하면서 막국수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처음 속초에서 단골도 다니던 '방아다리 막국수'라는 곳도 과일육수를 기반으로 막국수와 메밀묵사발을 주요 메뉴로 했었어서 김고로는 과일육수를 상당히 좋아한다. 강릉 연곡면에 있는 초시막국수도 과일과 채소를 사용한 육수와 양념을 사용하기에 김고로의 입맛을 쉽게 끌었었다.


막국수는 메밀껍질까지 사용하여 작은 흑점들이 흑임자처럼 콕콕 박힌 무늬로 메밀과 다른 반죽을 섞은 평범한 메밀국수에 다진 쇠고기가 들어간 매콤 달콤한 양념 그리고 절인 무조각 하지만 육수는 투명한 황토색 빛이 나면서 잘게 갈려진 얼음들로 흡사 냉동고에서 막 얼음을 깨고 나온 사과주스처럼 반짝거렸다.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육수 속에 개미들의 조각배처럼 둥둥 떠다니는 사과의 과육 조각을 눈치채고도 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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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막국수의 과일육수와 메밀국수


김고로는 우선 육수사발을 들어 한 모금 마셔본다.


꿀꺽


"캬, 시원하네."


살얼음이 낀 육수라서 당연히 차갑다, 하지만 뇌를 거쳐 정수리 끝까지 찌릿하게 뚫고 들어오면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감각은 차가움보다는 달콤함이었다. 설탕으로 범벅되어 혀가 저릿할 정도의 그런 단맛이 아니다, 한 점을 찌르면서 팍 치고 올라오는 그런 단맛이 아니라 넓은 범위로 몸을 잠식해 오면서 서서히 차오르는 단맛이 빠르게 몸 전체로 뻗어나간다. 그리고 뒤이어 단맛의 호수 위로 잔물결처럼 찰랑이는 사과의 향기.


김고로는 영동막국수의 육수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스테인리스 막국수 사발 중심에서 몸을 꼬고 앉아있던 막국수가 반 이상 잠길 정도로 육수를 들이붓고는 양념과 막국수를 슥슥 말고 비빈다. 양념과 물이 섞인 막국수, 막국수를 옛날 그대로의 상태로 되돌려서 먹는다.


후루루루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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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한 메밀 향기를 풍기며 탱글거리는 찰랑거림이 더해진 메밀국수가 관성을 타고 김고로의 입으로 튕기며 말려들어온다. 양념과 육수가 덧입혀진 메밀국수가 빛을 반사하며 양념장의 고소함과 약간의 매콤함이 입안에 가득하더니 사과의 달콤함이 그 위를 전체적으로 덮으며 감싼다. 막국수 한 입에 메인 디쉬와 디저트가 모두 담긴 맛이다.


"와, 남녀노소 모두 좋아할 맛이네요. 왜 여기를 여태 몰랐지."


"나는 여기 애들이랑 몇 번 왔었어. 괜찮게 하더라고."


사실 이 형님이 지금의 직업을 갖기 이전에는 분식집을 20년 이상 하시던 분이라 식당과 음식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으셔서, 형님께서 '맛있다'라고 하시면 어느 정도 괜찮은 집이다.


한번 젓가락을 들기 시작한 김고로는 사과와 양념장의 조화에 매혹되어 막국수의 그릇에 거의 빠져들어 얼굴을 처박듯이 막국수를 흡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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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로록


양념장의 매움과 달콤함 안에서 잘게 갈린 쇠고기의 조각들이 고소함과 기름진 구수함을 내뿜고 군데군데 섞인 굵은 고춧가루가 씹히며 바삭함까지 느껴진다.


거기에 매끄럽고 쫄깃한 메밀국수가 막힘 없이 사과맛을 계속 혀 위로 흩뿌린다. 분명 과일은 보이지 않는데 과일향이 피어오르고, 메밀의 구수함에 과일이 섞인 달콤 고소함이 묘하게 매력적이다.


과일과 채소로 우려낸 달콤함은 질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입안에서 감칠맛을 더해주며 '꿀떡꿀떡' 양념과 함께 끈적하게 미끄러져 내려간다, 양념과 메밀면에 의해서 매콤함과 구수함의 견제를 받으니 균형도 제법 잘 맞다.


김고로는 배가 제법 고파서 면사리까지 추가로 주문했었는데, 먹다 보니 김고로의 막국수는 대체 어디로 갔는지 순식간에 사라졌다. 생각보다 배가 고팠었는지 그야말로 청소기처럼 막국수가 김고로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눈 깜짝하니 그릇이 비었어요."


"네가 다 먹었잖아, 모르는 척 말을 하냐."


"헤헤, 맛있는걸요. 마음에 드니까 나중에 아내랑 또 오려고요."


김고로와 형님은 식당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손님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면서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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