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식일기] 룻티, 강릉

얼큰한 해장 토마토와 달콤한 쌈장, 파스타에 버무린.

by 김고로


"고로님, 저 파스타 집 열려고요. 여기 2층에다가."


"파스타요...? 피자 집, 그리고 파스타... 괜찮네요."


김고로의 단골 피자집, 샌마르의 사장 겸 셰프 되시는 '피자 대장'님이 그이만의 독특한 매력을 담은 파스타 집을 열겠다고 말씀하셨었다, 그게 올해 초였다.


코로나 이전부터 개업한 피자집 샌마르에서 피자 대장님이 추구하는 피자 철학으로 지금의 위치까지 차근차근 정진해 오신 모습을 본 단골손님 겸 그의 팬으로서 김고로는 그가 탄생시킬 파스타집도 상당히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몇 달 후가 된 지금, '룻티'라는 이름의 피자대장님이 만들어낸 파스타 집은 초기부터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어떻게든 버텨오고 있다.


초기의 레시피 이후에는 피자대장님의 여자친구이자 룻티의 점장인 '수달'양이 그녀만의 창의성이 담긴 메뉴들을 다시 개발해 내며 점점 완성도가 높은 파스타들을 내놓았고 밖에서는 파스타를 돈 주고 잘 사 먹지 않는 김고로도 룻티만큼은 적어도 한 달에 서너 번은 방문하고 있다.


그리고 며칠 전의 저녁도 그랬다, '룻티'나 '샌마르'를 오랫동안 안 가노라면 피자대장님이 말아주는 피자나 파스타의 맛이 그리워 고향 집을 찾아가게 되는 연어와 같은 근성으로 김고로는 룻티로 향했다.


"오늘은 뭐 먹을 거야?"


"음... 한 두어 가지 먹을까."


'룻티'가 생기기 전에는 주로 임당문화센터가 크게 자리 잡은 건물 옆의 샌마르로 들어가던 김고로는, 샌마르가 있는 건물의 2층으로 올라가는 일이 더 잦아졌다.


인조 대리석 계단과 철제 난간으로 이루어진 옛 건물을 올라서 2층으로 들어가면 노란색으로 칠한 밝은 페인트칠이 번쩍이고 군데군데 유리와 나무, 식물들이 여기저기 화분으로 장식된 식물 인테리어의 룻티를 볼 수 있다. 바깥으로 향한 창문은 '샌마르'의 대표 메뉴인 '마르 더 베스트' 무늬로 스테인드글라스가 장식되어 밤에 보면 더 볼만하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이쁜 그녀와 김고로가 들어가며 손을 흔들며 인사하자 부엌에 있던 수달님과 친근한 직원분도 함께 맞아주신다.


"음.. 쉬림프 아라비아따하고 항정살 쌈장 크림 파스타, 거기에 닭구이 먹자."


"그래, 좋지."


김고로가 제일 좋아하는 파스타는 마늘이 적당히 들어간 알리오 올리오이지만 룻티에 올 때만큼은 룻티에서만 먹을 수 있는 파스타들을 주문한다. 원래는 닭칼국수에서 착안해 개발한 '닭칼국수 파스타'를 먹고 싶었지만 이 날은 왠지 모르게 얼큰하고 달콤한 파스타가 당기는 김고로였다.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룻티에 오면 항상 앉는 짙은 고동색의 넓고 두터운 바에서 수달 양과 직원분이 열린 주방에서 분주하게 요리하는 모습을 관람하여 음식을 느긋하게 기다린다.


김고로와 이쁜 그녀가 무알콜 맥주를 마시면서 있으니 붉은 색채로 범벅된 소스 사이로 새우와 링귀니면이 하얗게 빛나는 얼굴을 내민다. 그 위로 쫄깃하게 녹여낸 모차렐라 치즈가 달걀흰자나 베샤멜소스를 올린 듯 김고로의 입맛을 당긴다.



김고로에게 쉬림프 아라비아따는 굳이 해 먹거나 아니면 다른 곳에서도 사 먹는 파스타는 아니지만, 룻티에서는 닭칼국수와 항정살 쌈장크림 파스타 다음으로 좋아하는 메뉴다. 특히나 링귀니 면이 잘 어울린다.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치즈가 쫄깃하게 늘어지는 따뜻한 상태일 때 숟가락과 포크로 면과 치즈를 돌돌 말아서 그릇에 먼저 옮기고는 국물을 먼저 퍼먹는다.


눅진하면서 새콤하고 얼큰한 매콤함이 혀와 식도를 타고 온몸에 퍼지며 김고로를 후끈하게 덥힌다. 토마토의 감칠맛과 페페론치노와 새우의 달콤함, 그리고 채소와 해물 그리고 육수의 진한 육향이 어우러진 토마토소스가 얼큰한 국물처럼 시원하다.


"와, 역시 룻티의 아라비아따는 얼큰함이지!"


처음 룻티에서 선을 보였던 쉬림프 아라비아따는 지금보다는 소스가 더 되직하고 국물이 적은 파스타였으나, '맛있는 맛'을 구성하는 수달 양의 메뉴 개선을 통해서 지금과 같은 토마토가 넉넉한 쉬림프 아라비아따가 탄생했다.



일반적인 고춧가루나 고추장 등을 이용해 얼큰함을 내기보다는 이국적인 재료로 신선함과 시원함, 얼큰함이 미각을 깨우는 맛에 진한 새우와 토마토가 미각세포의 근원과 뇌까지 침투하니 먹고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원하고 알싸한 음료들이 당긴다.


파스타에 고명으로 들어가는 중새우의 육질도 단단하고 쫀득하니 씹고 있다 보면 달달하기까지 한 식감, 거기에 중간중간 토마토 과육이 크게 사각거리면 상큼함과 새콤함의 산미가 '팍'하고 터져 나와서 지루하지 않다.



길게 늘어지는 모차렐라의 고소함에 토마토소스를 비벼 링귀니 면을 미끄러지듯 말아먹고 있노라면 치즈와 토마토, 면의 식감과 맛의 조화로 단순하게 행복해진다, 거기에 쌉쌀한 보리술 한 모금이면 멋진 마무리.



김고로와 이쁜 그녀가 쉬림프 아라비아따 그릇에 남은 소스까지 싹싹 긁어서 다 먹어갈 때 즈음 항정살 쌈장 크림 파스타가 타이밍 좋게 그들 앞에 등장. 룻티의 초기부터 나왔던 메뉴는 아니지만 수달 양이 쌈장과 돼지고기를 조합해 개발한 메뉴로 판매 전 시식을 했을 때부터 김고로와 이쁜 그녀에게 호평을 받았었고 이어 정식 메뉴로 출시되었다. 그 이후로도 룻티에서 닭칼국수 파스타와 함께 제일 많은 주문을 받는 음식 중 하나이다.


룻티에서는 각 파스타마다 어울릴만한 파스타 면을 따로 선택할 수 있는데, 항정살 크림 파스타를 먹을 때 항상 김고로는 둥근 원통 모양의 리가토니를 선택한다. 끈적하고 달콤 고소한 쌈장크림을 면에 묻혀 퍼먹기에 좋으니까.



울긋불긋한 주홍색에 흰색이 섞인 연한 살구색 소스에 원통들이 반이상 몸을 담그고, 그 위로 반질반질 육즙으로 번쩍이는 항정살 조각과 푸릇푸릇한 청양고추 원반들이 수북하다.


김고로는 숟가락에 쌈장크림과 리가토니, 항정살 조각과 함께 청양고추를 두어 개 올려 한입에 털어 넣는다.


우적우적


아삭아삭


항정살은 살코기 사이로 미세하게 지방이 넓게 섞여있는 부위다 보니 씹을 때마다 치아 사이에서 작은 용수철들이 튕기는 중독적인 식감과 그 틈에서 뿜어져 나오는 맑은 비계의 맛이 계곡처럼 흘러나온다.



그리고 달착지근하며 짭짤한, 우리 입에 익숙한 쌈장의 질척이는 맛이 하얀 크림과 섞이며 더욱 부드럽고 고소하게 입안 전체를 도배한다. 부드러움과 달콤함으로 칠해놓은 혀를 맑은 기름으로 씻어내며 고소함이 배가 된다.


그 와중에 청양 고추가 미각과 통각을 정신 차리게 번쩍 때리는 매콤함으로 뇌를 강타하면서 다시 항정살과 쌈장크림의 조합을 찾게 만드니, 리가토니의 쫄깃하고 단단한 식감이 누군가에게는 자극적일 수도 있는 맛을 심심하고 든든하게 받쳐주며 다시 쌈장과 청양 고추를 먹고 싶게 만든다.


"그래, 이 맛이지. 달콤하고 고소하면서 맑은 이 육류의 맛."


"소스에 잣까지 조금 섞여 있어서 바삭바삭 더 맛이 좋아."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그전에 나왔던 파스타를 해치웠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항정살 쌈장크림 파스타를 비워나갔다, 소스까지 깨끗하게. 수달 양은 손님들이 자신이 조리한 파스타를 설거지하는 모습에 뿌듯해하며 빈 접시들을 가져간다.


"맛있게 드셨어요?"


식사를 마치고 나면 빠짐없이 손님들의 반응을 물어봐주는 친절한 수달 양,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항상 엄지손가락을 올려준다.


룻티의 술안주 메뉴, 아스파라거스를 곁들인 닭구이. 담백하고 고소한 닭다리의 맛


"휴우, 잘 먹었다."


"샌마르에 잠깐 들러서 대장님께 인사하고 가야겠어요."


"또 봐요, 수달 씨."


여느 때의 방문과 식사처럼 만족스러운 식사를 한 그들은 다시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는 룻티를 나섰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