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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rok Yun Mar 30. 2023

[전시리뷰] 그 너머_원계홍 탄생100주년 기념전

그 골목의 뒷모습

 

 

한국의 70년대 골목 풍경을 줄기차게 그리던 '원계홍'이라는, 대중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의 작가가 있다. 그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1940년대 일본 유학 당시 이노쿠마 겐이치로에게서 사사하며 작가로서의 함께 두고 그린 정물화나 우리들에게 친숙한 산을 담아낸 풍경화에서 작가의 세잔에 대한 흠모를 짐작할 수 있다. 비단 세잔 뿐 아니라 얼마나 다양한 예술가들의 미학에 천착하여 자신만의 세계를 차곡차곡 쌓아나갔는지 작가 노트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작가의 시선이 최종적으로 머무른 곳은 기본적인 형태를 끝없이 변주한 골목의 다양한 풍경이 아닐까 싶다.





그림 속 건물엔 과연 누군가 살고 있기는 한걸까? 머리를 갸웃거릴 정도로 사람의 흔적이 없다. 사람만이 아니라 길고양이 아니면 흔하게 떠도는 동네 개 한마리라도 화폭 한 귀퉁이 걸쳐질 법 한데 찾아볼 수 없다. 몇몇 작품은 스산하다 못해 부조리하기까지 느껴져 언뜻 미국 현대인의 고독함을 그려낸 에드워드 호퍼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좀 더 많은 작품을 보고나면 그와는 미묘하게 결이 다른 정서를 품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서로 가리기도 가리워지기도 한 지붕의 포개짐이나 옹기종기 맞붙어 이어지는 집의 형태, 탁색의 텁텁함과 꾸밈없는 붓질은 이 곳에서 살아가고 있을 사람들의 온기를 고요하게 드러낸다.





 인적이 없는 새벽마다 화구를 지고 골목에서 그는 '화필을 손에 들고 자연과 명상'이라는 말처럼 작가로서 대상의 본질만을 남겨내기 위해 구도자와 같이 작업을 반복했으리라.



 "동양의 초월적 경향

 세계적인 조류라고도 한다. 듣는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젊은 예술가들은 그것을 극히 심상적인 표현 양식으로 간주하고 있다.

 '추상'이라는 말의 의미는 사전을 찾아보면 물체 실재의 행동, 혹은 개개의 열에서 동떨어진 '구체적이 아니다'라고 되어 있다.

 예술가의 눈앞에 있는 개개의 대상에서 외관의 기계적인 재현보다도 그 의견에 따르면 진리에 보다 가까운 본질을 추출한 회화를 가리켜 말하기 위해 쓰였던 것이다.

 세잔느는 대상이 갖는 본질적 특성은 그 구체성이며, 그런 까닭으로 자연으로부터 추상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 노트 중-



 일련의 작업은 내내 간결하지만 추상화로 전환되지 않고 특유의 질감과 사물의 구체성을 잃지 않은 걸 볼 수 있다. 장소의 이름까지 지정된 작품 '수색역'에 이르러서는 구체성이 전달하는 초월성이 작가가 구축해낸 작품 세계의 결정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수색역 - 서울, 신의주를 오가던 경의선 기차역 중 하나로 1958년 준공되었으나 지금은 철거되어 사라졌다.


 이 미니멀리즘적 풍경화는 희뿌옇게 가로로 붓질된 배경과 짙은 붉은색, 어두운 청색만으로 건물을 구성하는 최소한의 형태와 어우러져 소음 하나 방출하지 않은 채 대상의 실존을 박제해버렸다.



 "전체의 형식적 통일에 의하여 결정된 색채의 배치로서 회화 공간을 완성했다. 균형이 잡혀 있고 색채가 조화되어 있으면 작품으로서는 충분하다. 주제 같은 것은 필수적인 것은 아니었다. 회화는 말하자면 그 자체가 주제이매 아름다운 것에 영원한 기쁨이었다."                                                      

-작가 노트 중-



 원계홍의 골목 풍경은 실존으로써 주제를 대신한다. 그저 존재함으로 숨겨질 수 없는 모든 걸 말한다. 이것은 미소를 띠고 있는 얼굴에서 읽을 수 없는 뒷모습의 표정과도 같은 것이다. 그 풍경은 부조리하기도, 정답기도 때론 말갛게 단정하기도, 말할 수 없이 고독하기도 한 것이다. 어쩌면 그가 계속해서 사람이 없는 새벽의 거리를 택해서 그렸던 건 역설적으로 '지금 여기 살아가고 있음'의 진수를 담겠다는 의지가 아닐까. 삶의 뒷모습이 말해주는 풍경을 보고 싶다면 이 전시를 추천한다.


  

<원계홍 탄생 100주년 기념전 그 너머_>

전시기간 : 2023-03-16 ~ 2023-05-21(월요일 휴관)

전시 장소 : 성곡미술관(서울시 종로구 경희궁길 42)

관람료 : 5,000원

관람시간 : 10:00am~06:00pm

입장마감 : 05:30pm

문의처 : 02.737.7650

홈페이지 : http://www.sungkokmuseu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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