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할 때 하더라도
얼마 전 상사와 이야기할 시간이 있었다.
" 자네는 승진할 생각 없나?"
"없습니다"
"아니.. 왜..?"
"(퇴사하고 싶으니까요) 저는 아직 자격이 안됩니다. 부족한 게 너무 많아요"
"완벽해서 올라가는 사람은 없네. 다 그러면서 배우는 거지"
" (사실.. 00님 일하는 걸 보면 올라가고 싶다가도 그 마음이 쏙 사라집니다)"
"네... 하긴,, 저도 더 이상 발전이 없는 것 같아 그건 고민입니다."
"나는 도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네"
"네.."
내가 승진에 욕심이 없는 이유
1. 이 일이 나와 맞지 않다.
나는 언제든 도망칠 준비가 되어 있다. 기회만 호시탐탐 노릴 뿐이다. 그렇기에 사실 굳이 더 배우고 싶은 의욕도 알고 싶은 의욕도 없다. 물론 그 죽일 놈의 책임감 때문에 완벽하게 일하려고 노력하고 실수 하나에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건 내 성격이고, 자율적 의지가 생기지는 않는다. 매일 이곳을 탈출할 궁리만 하는 내가 다음 단계가 눈에 들어올 리 없다. 그래서 동료들의 승진 소식에 정말 조금의 시기와 질투도 없이 박수 쳐 줄 수 있기도 하다.
2. 현타가 온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업무 분야를 공부하고 있으면 현타가 온다. 나는 조금 특이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실용적인 공부를 좋아한다. 지금 이 업무는 이곳이 아니면 몰라도 되는 일이다. 경력도 되지 않을 것 같다. 대체 이걸 내가 왜 하고 있어야 하는지 현타가 온다. 내 생각이 특이한 게 맞다. 모든 직장의 업무는 그 직장을 떠나면 딱히 쓸 일이 없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게 내 인생에 뭔 도움이 되냐 하는 의문이 들면 공부하고 싶지가 않다.
크게 이 두 가지 이유인 것 같다. 그리고 하나 더, 그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겪기가 지친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도 않고,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일은 더 많아지는데 더 이상 내 시간을 투자하기는 싫은 것 같다.
그렇다면 진급은 해야 할까?
나의 답은 예상 밖이겠지만 'YES' 다. 설사 곧 퇴사를 할 거라 하더라고 나는 적극 추천한다. 그 이유는 아래에서 설명하겠다.
리더의 경험은 인생에서 큰 자산이 된다.
평생을 누가 시키는 일만 해본 사람과 일을 시켜본 사람은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일단 리더에게 필요한 자질이 무엇인지 간단히 살펴보자.
우선 팀을 이끌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팀원을 융화시키고 개개인을 분석하여 적절한 피드백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걸 위해서 인간적인 면모도 굉장히 중시된다. 우리 모두는 사람이기에 윽박지르는 리더보다 인자한 리더의 말에 더 귀 기울이게 되어있다. 일 안하는 직원들도 일을 하도록 이끌어야 되는게 리더의 책임이며 동시에 그들의 성장도 도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에 대한 통찰력도 길러지고 나 자신도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수양 아닌 수양이 된다.
두 번째로 문제의 상황에 옳은 판단을 빠르게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나의 경우 이게 가장 어려웠다. 내가 내리는 판단에 자신을 갖는다는 것은 연차가 쌓여도 꽤 어려운 일이다. 왜냐면 매번 다른 사건들이 일어나고 거기서 그것도 '빠르게' 적절한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은 많은 연습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내가 잘 몰라 오답을 골랐다면 그에 따른 책임의 몫도 리더에게 있다. 말 한마디의 무게가 상당히 무겁다.
세 번째, 감정 컨트롤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대부분 여기서 문제가 많이 생긴다. 중간 관리자란 위에서 치이고 아래에서도 치이는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는 입장이다. 그런데 위에서 치였다고 아랫사람한테 그 안 좋은 감정을 드러내서도 안되며 아랫사람이 못한다고 그걸 윗사람에게 쪼르르 가서 일러서도 안된다. 아랫사람이 일을 못하는 것도 화가 나는데 직원들이 일을 못하면 위로 불려 가서 혼나는 건 나다. 그때부터 억울해진다. 그렇게 '내리 갈굼'이 시작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당연히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을 너도 알고 나도 안다. 하지만 그 감정이란 것이 제대로 컨트롤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나는 3가지만 적었지만 사실 일하다 보면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다. 그러면서 자기 성찰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작지만 '권력'이란 것, 그리고 '결정권'이라는 것은 리더에게만 부여된 특혜인 만큼 함부로 남용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을 가져보고 이것에 대해 고민해 본 경험은 살아가는 날들에 있어서 아주 큰 도움이 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나 역시 관리자급이 되고 나서부터 나가서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도 많이 달라졌다. 리더는 리더의 습관이 몸에 배기 마련이다. 나가서도 그 습관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나는 우물쭈물하는 경우가 조금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확실하고 단호하게 표현하는 게 익숙하다. 그리고 보는 시야도 달라지기 때문에 사람을 이해하는 폭도 더 넓어지는 것 같다.
퇴사를 염두에 두고 있더라도 이곳에서 가볼 수 있는 끝까지 가보는 것은 추천한다. 특히 나가고는 싶은데 아직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딱히 준비하는 것도 없다라고 한다면 남는 시간에 승진 시험공부를 해보는 것도 좋다. 이런 사람도 봤다. 본인이 퇴사를 할 건데 이왕 하는 거 퇴직금이나 올려서 나가자 하고 승진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각자의 동기가 있는 것이니 이런 이유도 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단 갈등을 하는 상황이라면 마음이 조금은 있다는 거니까 결과는 나중 몫이고 도전은 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