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으로 산다는 것
나는 한동안 속도를 맞추며 사는 사람이었다.
함께 결정하고, 함께 책임지고, 함께 계산했다.
그 방식은 안전했고, 때로는 안온했다.
그사이 남편은 이미 혼자 설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 되었고, 나는 그 옆에서 오래 함께 뛰었다. 그의 성장은 내가 기대어 쉴 수 있는 나무 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아직 서보지 못한 미지의 자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도 내 이름으로 서보고 싶다는 생각.
누군가의 파트너가 아니라,
내 선택으로 움직이는 사람으로.
그건 반항도 비교도 아니었다.
다만 이제는 속도를 맞추는 삶이 아니라,
내 속도를 책임지는 삶을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감각이었다.
종종 사람들은 말한다.
왜 그렇게 성공에 매달리느냐고.
결국은 나답게 사는 게 정답 아니냐고.
마흔을 넘기고 나서야 조금 알 것 같다.
사는 일은 혼자 잘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기댄다고 해서 반드시 무너지는 것도 아니라는 걸.
상황은 변하고,
그 안에서 선택의 모양도 달라진다.
그걸 인정하면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상황도 변했다.
남편은 나 없이도 경제적으로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
나는 그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그 모습은 내게 자극이 되었다.
나도 그렇게 서보고 싶었다.
누군가의 이름 옆이 아니라,
오직 내 이름으로.
그래서 일을 다시 시작해 보기로 했다.
이제는 이인삼각이 아니라, 혼자 걷는 방식으로.
⸻
남편은 조심스럽게, 그러나 뼈아프게 말했다.
“그건 취미지, 돈 벌려고 하는 일은 아니야.”
그리고 덧붙였다.
“돈 벌 생각 말고, 제발 까먹지만 마.”
그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예전 같았으면
그 문장은 나를 무시하는 말처럼 들렸을 것이다.
분노가 먼저 올라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분노 대신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내가 살아온 날들이
이렇게 평가받는 게 맞는 걸까.
함께 버텼던 시간들,
내가 감당했던 실패들,
밤마다 다시 일어나 붙들었던 선택들이
결국 ‘수익’이라는 단어 하나로
정리되는 건가.
나는 정말
스스로 수익을 내본 적이 없는 사람일까.
잠시 마음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말은 내 삶 전체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이번 선택에 대한 그의 방식이었다.
그는 ‘안전의 언어’로 말했고,
나는 ‘존재의 언어’로 들었을 뿐이다.
우리는 다른 단어를 쓰고 있었다.
그는 나를 깎아내리려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방식으로 나를 걱정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남은 질문 하나는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이제
수익으로 증명되지 않으면
설 자리가 없는 사람인가.
그 질문은
나를 위축시키기보다
오히려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기대에 반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내가 나를 확인해 보기 위해
걸어보고 싶어졌다.
⸻
그 시작으로
나는 새 노트북을 샀다.
그리고
내 이름으로 된 사업자 등록증을 새로 냈다.
글은 핸드폰으로 써도 되고,
이면지에 적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이 노트북은
내 생각을 정돈할 최소한의 영토였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오직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작업대였다.
여전히 나는
이 구매의 정당성을 남편에게 설명하지 못한다.
수익이라는 숫자 앞에서
‘매일 기록하는 삶’의 가치를
아직 말로 증명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시선에서
이 노트북은 과소비일지도 모른다.
가끔 노트북 가방을 열 때
내 손끝이 머뭇거린다.
하지만 이번에는 멈추지 않으려 한다.
기대지 않기로 한다는 건
관계를 끊겠다는 말이 아니다.
사랑을 거절하겠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도움이 있어야만 유지되는 구조에서
조금씩 벗어나 보겠다는 의지다.
사랑은 남겨두고,
의존만 걷어내는 일.
의존은 늘
‘안정’이라는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
그래서 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노트북 전원을 켠다.
이번에는
잘 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어디까지 설 수 있는지
스스로 확인해 보기 위해.
화면의 하얀 여백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망하더라도
내 선택으로 망하고,
일어서더라도
내 발로 일어서는 감각.
나는
그 투박하고도 정직한 첫발을
지금, 이곳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