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 마감을 위한 새벽은 언제나 고독하다.
나는 종종 급한 일을 앞뒀을 때 에너지 드링크를 마신다. 평상시에는 되도록 고카페인 음료를 멀리하려고
노력하지만 마감일이 코앞일 때만큼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서울신문의 신춘문예 마감일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나는 밤을 새우기로 결심했다. 아직 때가 아니라는 명분을 들며 최종 퇴고를 미뤄왔던 작품의 폴더를 열었다. 그동안 여러 번 퇴고를 거쳐왔으나 글에 익숙해진 작가의 시선으로 보아도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이 드러나는 작품이었다. 솔직히 회피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원래 사람은 고쳐야 할 게 많은 일을 최대한 끝까지 미루기 마련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사실 일단 퇴고를 시작하기만 하면 감은 저절로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늘 시작이 문제다. 이미 내가 짜 놓은 배경과 문장, 인물들의 관계를 다시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다는, 다소 회피적인 성격의 변명이 늘 내 발목을 잡았다.
나에게는 이번 작품이 그랬다. 그렇게 10월 초부터 이 작품과 마주하는 순간을 계속해서 미뤄왔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작가로서 조금은 무책임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결국 11월 말이 되었고,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낀 나는 잠자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마무리를 지어야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다행스럽게도(?) 오랜만에 마시는 에너지 드링크는 예상보다 훨씬 더 내 몸과 잘 맞았다. 카페인이 몸 안에서 잘 기능했다는 의미다. 예술대학을 다니다 보면 밤샘 작업을 하는 동기와 선후배들을 자주 마주칠 수 있다. 늦은 새벽까지 예술관에 불이 켜져 있으면, 대략 어느 학과 학생이 작업 중인지 유추할 수 있다. 나도 한때 에너지 드링크나 커피 따위에 의존하여 긴 새벽을 보냈다. 대부분의 문예창작과는 과제량이 다른 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실제로 교수님께서 학과 OT 시간에 우리 학과는 과제가 많다고 직접 말씀해 주시기도 했을 정도다) 학생들이 과제로 내는 작품들은 추후 퇴고하여 공모전에 투고할 수도 있고 그 자체로 아웃풋으로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보통의 수면 패턴을 지키면서 과제를 할 경우 마감 기한을 못 지킬 거 같다는 판단이 섰을 때 동기들은 예술대학 편의점으로 향한다. 수업이 다 끝났을 무렵인 오후 일곱 시쯤에 편의점 매대에서 에너지 드링크를 집어 드는 예대생을 보면 묘한 동질감이 피어오른다. 비록 건물은 다르지만 작품 마감을 위해 함께 밤을 새우는 사람들 사이에는 왠지 모를 강한 연대감이 존재한다.
다시 신춘문예로 넘어오자. 원래 내 계획은 에너지 드링크의 힘을 빌려 막판 스퍼트 작업을 마친 후 오후 2시 무렵 여유롭게 우체국에 방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계획은 언제나 틀어지기 마련이다. 위기는 항상 늦은 새벽에 찾아왔다. 마치 잠든 부모님 몰래 라면을 끓여 먹고 싶다는 지독한 욕망에 사로잡힌 어린아이처럼 고통스러웠다. 이사할 때 내 방 책상 바로 옆에 침대를 배치한 것부터가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분명 정신이 말똥한 상태였고 그다지 피곤함을 느끼던 때도 아니었지만 이상하리만큼 침대에 눕고 싶은 강박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그날 밤 조금만 자고 일찍 일어나서 나머지 일을 하면 된다는 (너무나 전형적인) 합리화를 한 채 그대로 잠에 들었다.
편히 숙면을 취한 업보는 피할 수 없었다. 우체국 마감은 6시. 집에 프린터기가 따로 없었던 나는 프린트 전용 매장을 거친 후 우체국으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적어도 5시에는 집에서 나와야만 했다. 머릿속으로 수십 번씩 최적의 동선을 그리며 4시 50분에 ‘최최최최종찐막 ver.’ 파일을 USB에 옮겨 담았다. 11월 초부터 부지런히 작품 퇴고를 할 거라 믿었던 과거의 나에게 아주 조금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최종 투고 순간만큼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에 그다지 크게 후회로 남는 부분은 없다.
다만 내년에는 지금보다 더 부지런한 문창생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