其实你的幸福感来自于他人的不幸。
qí shí nǐ de xìng fú gǎn lái zì yú tā rén de bù xìng 。
사실 네 행복은 타인의 불행에서 비롯된 거야.
중국 드라마를 보다 저 문장이 콱, 하고 가슴에 박혔다.
갈수록 위로가 어렵다.
나를 믿고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는 친구에게 위로를 건네는 게 점점 더 조심스러워진다.
저 중국어 문장처럼 될까 봐, 고민 끝에 나에게 털어놓는 친구의 어려움이 내 것이 아니라고 안도할까 봐, 상대의 불행을 보고 내 일상의 평온함을 감사하게 될까 봐.
혹자는 위로보다 축하가 어렵다고 말한다.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그래 뭐, 나보다 나은 상황, 잘 나가는 상황이 부럽고 제 자리에 있는 나 자신이 초라해질 수도 있으니까 이해는 한다. 나 역시 그런 적이 있었으니까. 그래도 나에겐 위로가 더 힘든 일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섣불리 타인의 아픔을 이해한다고 하는 것 자체가 실례이고 월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 상황에 놓인 게 아닌데 어찌 너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하겠는가. 반대로 너도 내가 아닌 이상 내 속내를 알 수 없듯이 말이다.
그래서 나는 축하나 위로할 일이 생기면 철저하게 물질적인 수단에 의지하는 편이다.
나에게 고충을 털어놓는 친구에게는 따뜻한 밥 한 끼를, 축하할 일이 생기면 그에게 어울릴 만한 작은 선물을 준비한다.
하지만 오늘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악필이긴 하지만 열심히 손 편지를 준비해 본다.
너의 아픔을 오롯이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 널 걱정하고 기도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이런 내 진심이 전해질 수 있을까?
갈수록 위로가 어렵다.
“别轻易评断他人,除非你穿着他的莫卡辛鞋,步行于两轮月亮之上。”
그의 모카신을 신고 두 개의 달 위를 걸어볼 때까지 그를 판단하지 마라.
Do not judge your neighbor until you walk two moons in his moccasi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