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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Aug 18. 2023

취업 후 1년...

퇴근길 버스에서 질질 짜던 그 여자는 어디로...

지난해 9월...

나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코로나로 출강 일이 끊겼던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일자리고 기회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배웠던 능력을 써먹을 수 있는 일자리였다.

잘하고 싶었다. 비록 면접은 말아먹었어도 나는 저력이 있는 사람이니 금방 적을 할 줄 알았다.

훗.

오만했다.

교육받는 한 달 동안 5007번 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집까지 오는 길..

나는 매일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괴감에 빠져 괴로워했다.


내가 그리 좋아하는 명동길을 지날 때도, 한강의 야경이 보일 때도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아니 울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 달이면 내가 취업한 지 딱 1년이 된다.

출근길에 맘 졸이고 퇴근길에 질질 짜던 나는..

어느새 회사의 에이스로 거듭났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더는 나에게 어떤 일이 주어질지 두려워하지 않게 됐고, 어떤 일이 주어지든 해치워 냈다.

나는 그렇게 우상향의 곡선을 그리며 발전하고 성장했다.


취업 후 많은 게 달라졌다.

우선 적은 돈이지만 버는 돈이 생겼다.

외벌이로도 부족한 삶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이 생긴다는 게 어찌나 소중한지.

양가 어머니들께 김장에 보태라고 큰돈을 턱턱 드리기도 하고, 지난봄에는 인덕션과 스타일러를 들이기도 했다.


달라진 또 하나.

일상의 쉼이 너무 소중해졌다.

일이 익숙해지던 봄 그 어느 날 즈음부터...

나는 점심시간이면 산책을 즐길 수 있게 됐다.

겨울까지만 해도 점심시간에 밥도 못 먹으며 헉헉댔던 시간은 사라지고

봄쯤 되니 드디어 재택근무의 장점을 누릴 수 있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빨리 밥을 먹고 동네 산책을 다니고, 집 앞 세탁소나 과일가게를 찾기도 했다.

그리고...

퇴근 시간이면 딱 컴퓨터를 끄고 동네 호수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그 산책길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살살 부는 바람... 산책하는 사람들의 모습...

호수공원 절반을 돌면 소규모의 먹자골목을 지나는데..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여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내가 쉴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보니

하루하루 내가 짬을 내서 산책하고, 바람을 느끼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소중해졌다.


그렇게 나는 열심히 일했고, 열심히 걸었고, 열심히 살았다.

물론.

아이의 고등 입학과 함께 생각보다 많은 좌절과 씁쓸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나마 이렇게 일에 몰두할 수 있어서 아이에 대한 서운함이 표출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내 나이 마흔 중반...

일상이 이렇게 소중하다는 걸 깨닫고 감사하는 중이다.

이래서 삶은 살아볼만 하다는 말 나오나보다.


지금 난 내 삶이 좋다.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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