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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글 May 09. 2023

살아 있다면, 언제나 봄.

봄의 끄트머리에서 봄을 정의한다면.  

 ‘아버님 암 검사하러 가신대, 다음 주 고대 병원.’

     

 고열과 몸살로 가족 모임에 참석하지 못해 남편과 아이들만 동생네에 보냈던 날, 약 기운에 한참 뻗었다가 간신히 실눈만 뜨고 분위기는 어떤지 살피기 위해 남편에게 보낸 문자의 답변은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암?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지만 여전히 ‘암’이라는 글자가 화면 위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생각해 보니 며칠 전부터 엄마의 낌새가 수상스럽긴 했다. 갑자기 연락이 와서는 대학 병원 간호사인 내 친구의 이름을 말하며 그 친구가 아직도 그 병원에서 근무하는지 물었다. 친구가 근무하고 있는 건 맞지만 직계 가족이 아니라 내가 받을 수 있는 혜택은 없다고 답하며 이유를 묻기까지 했는데, 엄마는 ‘아니, 그냥! 혹시 나중에라도.’ 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혹시 엄마 몸에 문제가 생겼나? 잠깐 걱정은 했지만 설마 그럴 리가 하며 고개를 저었던 날이 떠올랐다.      


 수상했던 엄마의 모습은 희미해지고 머릿속엔 다시 아빠의 얼굴이 선명해졌다. 초봄에 다친 허리로 한 달 내내 주사 치료를 받으러 다녔지만 회복이 더뎌 아빠의 컨디션은 이미 바닥을 치고 있었다. 게다가 어느 날 목소리가 잠기기 시작하더니 본래 목소리로 돌아오지 않아 내심 계속 걱정까지 했던 눈치. 커다랗게만 보였던 아빠의 등은 어느새 내가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작아진 것도 같고, 피부도 검고 거칠어졌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살도 꽤 빠졌고.      


 가족들에겐 무심하다 싶을 정도로 무뚝뚝한 나도 아빠와 살갑게 지냈던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도 아빠의 팔베개를 즐겨했으니 말이다. 지인, 가족들과의 모임 후 술에 얼큰하게 취한 아빠와 노래방에 가면 함께 부르던 18번 곡, ‘소양강 처녀’는 입 밖으로 내어 불러본 지 25년은 된 것 같지만 당장이라도 따라 흥얼거릴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하다. 그 정도로 부녀가 함께 자주 불렀던 노래였다.      


 가족보다는 친구가 좋아지고, 엄마를 향한 아빠의 태도가 불합리하고 못마땅하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자 나는 점점 아빠를 멀리했다. 하루에 한마디도 하지 않던 날들이 늘었고 팔 베개를 하며 함께 누워 티브이를 보던 시절이 언제 있었냐는 듯 손끝 하나 닿지 않을 정도로 아빠를 피하며 몇 년의 세월을 보내면서도 아빠는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거라 생각하며 살았다. 젊은 시절엔 내 한 몸 챙기느라 바빴고, 결혼 후엔 정신없이 아이들만 키워내느라 부모님 나이 드는 건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야 아차 싶은 마음에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소식을 들은 지인들은 갑상선 문제는 흔하기도 하고, 혹시 수술을 하게 되더라도 시술에 가까운 수술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위로했다. 그동안 내가 다른 사람에게 했던 위로와 비슷했지만 그런 모든 말들이 내 마음을 보듬는 데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를 단단하게 붙잡을 수 있는 힘은 내 안에서 찾아야 했다.


 일상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자 작은 일에도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당장 해야 할 일들은 하긴 했지만 마음은 내내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바로 조직 검사가 진행되는가 했더니 평소 복용하던 약들 때문에 검사가 미뤄졌다. 정확한 결과를 알지 못해 답답한 날들이 길어졌다. 가족, 지인 모두 무탈하고 아무 일 없는 평범한 날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평일 오전이면 좋아하는 동네 카페에서 창가 좋은 자리를 잡아두고, 따뜻한 커피 한 잔 홀짝이며 책을 읽거나 글을 쓰던 그 순간을 다시는 누리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나를 더 지치게 했다. 어서 뭐라도 쓰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처럼 흔들리는 와중에도 가장 간절하게 그리웠던 내 모습은 노트북 앞의 나였다.     


  검사 전날, 아빠의 목소리를 들을 자신이 없어 메시지를 보냈다. 걱정 말고 진료 잘 보고 오시라고, 혹시나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치료만 잘 받으면 회복도 어렵지 않고, 다시 평소처럼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이번 기회에 일도 줄이고 건강에 더 신경 쓰며 쉬는 시간을 갖자고 덤덤한 척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바로 답장이 왔다. ‘걱정하지마별거안일거야’ , 되려 나를 염려하는 아빠의 말. 아빠도 많이 무서워하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던 나는 더 이상 다른 말을 덧붙일 수 없었다.      


 다행히 검사 결과는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았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갑상선에 악성 종양이 있는 건 맞지만 크기가 5mm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아 당장의 수술 대신 1년마다 정기적으로 검사를 할 것을 권하셨다고 한다. 고혈압과 당뇨 수치가 불안정하여 건강 상태가 온전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 부분은 지금부터라도 관리하면 될 일(물론 이것도 쉽지 않다는 걸 안다.)이란 생각에 걱정을 한시름 내려놓게 되었다.      


 봄이 지나는 동안, 아빠의 건강 문제를 빼고도 내 마음을 흔드는 여러 일들이 생겼다 사라지곤 했다. 물론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도 있지만 이런저런 일을 겪는 동안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 그리고 가족, 주변인 모두 별 탈 없이 각자의 일상을 꾸려나가는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일인지. 당연하게 누렸던 모든 것들 중 당연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5월, 가족의 달을 기념하며 친정 가평집으로 오랜만에 온 식구가 모였다. 이제 갓 두 돌이 되어가는 조카까지 모두 모이니 아빠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동생네와 함께 준비해 온 음식들을 잔뜩 펼쳐 놓고, 친한 동네 이웃분들까지 모두 모여 저녁을 먹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이 또한 나중에 돌아보면 사무치게 그리운 날이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그 순간이 더 귀하게 느껴졌다.      


 나도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왔다. 숲길을 걷기 시작했고, 도서관이나 카페를 전전하며 읽고 쓰는 작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이렇게 매일같이 읽고 쓰는데, 나는 결국 뭐가 될까? 하며 겸연쩍은 표정으로 묻던 나에게 되긴 뭐가 되냐며, 그냥 고은아가 되는 거지, 하며 무심하게 툭 내뱉던 남편의 말이 갑자기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흔들리는 일상을 보내는 동안 가장 하고 싶던 일이 읽고 쓰는 일이었으니, 쓰는 동안 진짜 내가 된다는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미루 글방에서의 두 번째 봄이 끝나간다. 새로운 글을 쓰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지난해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는 것이다. 어제의 봄과 오늘의 봄의 다름을 알게 되었던 작년의 나, ‘보이지 않던 것이 보여서 봄!’이라 정의했던 나. 이번 봄은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올해 봄, 나는 중년의 시절이 지나 이제 노년을 향해가는 아빠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아빠의 남은 봄들을 헤아려 보았다. 삶의 사계절을 사는 동안 봄은 언제라도 찾아오지 않을까. 빗소리를 듣기 위해 열어놓은 창문 너머로 아카시아 향이 스며드는 5월의 봄, 봄의 모든 순간이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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