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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ily 케일리 Dec 02. 2022

'연애'라는 이름의 까나리 복불복, 왜 참여하세요?

영화 <경아의 딸> 리뷰

까나리 복불복은 한때 예능 프로그램 단골 소재였던 탓에 우리에게 익숙한 게임이다. 출연진은 좋은 잠자리를 위해, 밥을 먹기 위해 게임에 참여하지만, 무조건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까나리에 당첨될 확률을 각오하며 아메리카노를 찾기 위해 음료를 쥘까?


2019년 경기도가족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성인 54.9%가 데이트 중 연인에게 1번 이상 폭력을 경험하고, 그중 40%는 폭력을 행사한 상대와 결혼한다고 한다. 음료 10잔 중 5잔의 아메리카노, 3잔의 까나리, 2잔의 사약이 담긴 컵, 요즘 연애는 이 복불복 같다.


<경아의 딸>

홀로 살아가는 경아에게 힘이 되어주는 유일한 존재인 딸 연수는 독립한 뒤로 얼굴조차 보기 어렵다. 그러던 어느 날, 헤어진 남자친구가 유출한 동영상 하나에 연수의 평범한 일상이 무너져버리고 이 사건은 잔잔했던 모녀의 삶에 걷잡을 수 없는 파동을 일으키는데…

“엄마 탓 아니야. 내 탓도 아니고”


<경아의 딸> 주인공 박연수도 이 복불복에 참여했다가 까나리에 당첨된다. 헤어졌는데도 계속 연락하고 찾아가는 그녀의 남자친구 이상현을 보며 안전 이별을 걱정했다. 그리고 이 남자가 연수와 찍은 섹스 비디오를 그녀의 엄마, 친구에게 보내고 인터넷에 올리며 우려는 현실이 됐다.


영화는 초반에 경아를 극성맞은 엄마로 그린다. 성인인 딸을 택시 탄다고 혼내고, 복장과 헤어스타일까지 단속한다. 그걸 보며 참 답답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극단적인 연수의 상황으로 이 꼬장꼬장함마저 납득하게 만들어버렸다.


연수의 영상을 본 경아는 딸을 걸레 같다며 몰아세운다. 내 편 하나 없다고 느낀 연수는 학교 선생님이었던 직업을 관두고, 고시원으로 이사하며 현실도피를 시도한다. 사실 나조차 연수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다 큰 성인의 성생활은 자기 몫이지만, 흉흉한 세상에 너무 조심성 없는 선택이었다는 생각은 지우기 힘들었다. 애초에 그런 영상을 왜 찍나, 저렇게 안일해서 아메리카노를 고를 수 있겠나 싶었다.


그런데 연수를 마냥 탓하기엔 이 일의 시발점이 이상현이라는 것부터 굉장히 이상하다. 어쨌든 비디오엔 이상현도 찍혔는데, 그걸 본인 손으로 유출한다. 함께 찍은 건데 전혀 부끄러움도 안 느끼고, 자기가 입을 피해도 없을 거란 걸 아는 거다. 실제로 유출한 건 이상현이지만 인터넷상에서 영상을 삭제하기 위해 꾸준히 비싼 값을 지불하는 건 박연수다. 똥을 싼 가해자에게 그걸 치울 의무마저 지워주지 않는다. 게다가 합의하지 않았는데도 이상현은 징역 1년 6개월, 성폭력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다. 합의를 요구하던 이상현 모친의 울음소리가 그렇게 시끄럽고 역겨울 수 없다. 이상현 같은 까나리가 어디서 번식된 건지 알 수 있는 순간이다. 이상현 측이 당당하게 합의를 요구하는 것도, 다소 아쉬운 처벌을 받는 것도 모두 그 영상이 양측 동의하에 촬영됐다는 점 때문이다. 이 동의는 복불복에 참여하겠다는 동의였고, 까나리일 가능성이 있음에도 아메리카노일지 모른다는 희망에 음료를 고르고 마시겠다는 동의였다.


영화를 보며 줄곧 암담하던 와중에 경아의 딸이 강인한 사람이라 다행이었다. 연수는 결국 일어난다. 교사로 복귀하고자 다시 이력서를 준비하고, 나아간다. 횡단보도 앞에서 학생들과 마주 보고 걷던 장면이, 그녀가 다시 사회로 나아가 어우러질 것임을 암시하는 듯해 위안이 됐다.


물론 연수는 혼자 이겨내지 않았다. 연수의 곁엔 지지해준 친구와 동료 교사가 있었고, 늦게나마 편이 되어준 엄마와 그녀가 데려온 변호사가 있었다. 애초에 그런 게임에 왜 참여하냐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메리카노를 바란 게 잘못은 아니라고 공감해주는 사람도 있는 법일 테니까.


경아와 연수가 어긋난 상황을 보며 문득 경아의 직업이 ‘보호사’라는 게 눈에 띄었다. 누군가를 보호하고 돌보는 일을 하는 그녀가 자기 딸을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켜주지 못한다. 자신이 돌보는 어르신을 지키고자 흡연 사실까지 숨겨주는 경아인데, 정작 연수에게는 교사인 딸보다 더 엄하게 잣대를 들이민 엄마. 작품을 보기 전, 왜 제목이 ‘경아’도 ‘연수’도 아닌 ‘경아의 딸’인지 궁금했다. 물론 연수가 잘못한 점도 있겠지만, 냉철하게 심판하고 평가하기 전에 누군가의 딸로서 바라봐달라고. 상담원 연결 전 가족의 목소리가 흐르는 것처럼 조금은 너그럽게, 그녀의 편에 있어 달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나는 아직 까나리 액젓, 심지어 사약을 고를 가능성까지 감수할 만큼 아메리카노가 매력적인지 모르겠다. 물론 서로의 아메리카노를 쟁취해 함께 시너지를 발휘하고 성장하는 커플도 많다. 이들은 안정감과 행복을 얻는다. 하지만 내게는 아메리카노를 한눈에 구분할 안목이 없다. 이 게임에 참전하고 싶다면, 도전하기 전에 아메리카노에 대해 더 빠삭하게 알아야 할 것이다. 그나마 까나리는 털고 일어나 다시 나아갈 수 있기라도 하지, 내가 고른 게 사약이면 어쩔 셈인가.


물론 연애가 더 이상 복불복이 아니길, 10개의 음료 모두 아메리카노라는 선택지뿐인 세상이 오길 바란다. 아메리카노가 입에 맞지 않아 안 마시는 사람은 있더라도, 음료를 고르기로 마음먹은 모두가 아메리카노를 쥐고 만족하길 바란다. 그래서 연애는 위험을 부담해야 할 선택지가 아니고, <경아의 딸>이 완전 비현실적인 디스토피아 작품처럼 느껴질 순간을 꿈꿔본다.





본 글은 <2022 공감주간 공존을 위한 공감을 향하여> 온라인 영화제 감상문 공모전 수상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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