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미팅은 소개기회가 아니라 청취기회이다.
세일즈, 사업개발이라는 타이틀로 업무 경험을 쌓은 지도 이제는 커리어의 절반 이상이 되고 있다. 사업개발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흔히들 생각하는 "술영업"의 오해를 가지고 있어서, 주저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운 좋게, 사업개발을 시작하며 좋은 분들을 만나 배움도 얻고 뿌듯한 결과들도 만들 수 있었다.
사업개발을 시작할 때와 지금의 내 모습을 비교하자면 달라진 점들이 눈에 띈다. 그중 가장 큰 모습은 고객에게 나와 회사를 소개하는 태도의 변화다. 사업개발 초장기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멋진 기술들을 해외 업체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세요? 이 멋진 기술. 한번 사용해 보고 싶지 않으세요?"와 같은 전형적인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는... '나 중심' 대화가 주를 이루었다. 마치 이를 연애상대와의 첫 만남으로 빗대어 보자면 "제가 좀 잘 나가는 사람이에요. 저랑 예전에 데이트했던 상대들이 누군지 들어보실래요? 지금도 저랑 데이트하고 싶어서 다들 안달이 나있죠."
만약 첫 만남에서 연애상대가 이러한 투로 자기소개를 이어간다면, 애프터 신청은 고사하고 그날 데이트도 제대로 끝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세일즈, 특히 첫 미팅에서 가장 많이 실수하는 것 중 하나가 얼마나 우리 회사, 회사 제품 또는 기술, 오늘 이 자리 나와있는 우리 측 참석단이 대단하고 귀한 사람인지 자랑하는데 시간을 많이 쏟는다는 것이다. 부끄럽지만 나의 초장기 모습이 그러했다. 수고로이 만든 PPT 발표자료 안에는 "나 중심 이야기"가 가득 들어있었다. 하지만 그때로 돌아가 하나의 변명을 하자면, 고객이 무엇을 좋아할지 몰랐기 때문에 그랬다고 말하고 싶다. 마치 "무엇을 좋아할지 몰라서, 일단 다 준비해 봤어."와 같은 가판대 전략(?)이었다고나 할까? 어찌 되었든 지금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모습이다.
최근에도 고객과 첫 만남을 가지는 일이 있었다. 그 고객과의 첫 만남에서는 질문을 몇 개 드리고,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에 대한 소개와 자랑보다는, 그 고객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왜 그게 중요한지,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지 등, 그 고객 이야기를 청취하는 시간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사실상 내 이야기는 20% 도 하지 않았지만, 그 미팅은 아주 성공적인 미팅이었다. 당연히 후속 미팅이 이어졌고 현재도 긍정적 분위기로 계속 진행되고 있다.
첫 만남은 매우 중요한 미팅이다. 나와 우리 회사에 대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기회이며 다른 회사 대비 차별적인 기억을 남길 수 있는 기회이다. 첫 만남에서 본인 이야기만 주로 하는 사람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중 누가 더 좋은 인상을 남길까? 고객이 가지고 있는 고민을 들어줄 때, 세일즈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