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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카 May 15. 2022

원해서 꾼 악몽

#시가 싫은 당신에게 #운문 에세이


소리를 지르며 눈을 뜬다

또 베개가 젖었다

또 목이 쉬어있다

그러나 나는 너를 피할 수 없다

원해서 꾼 악몽이기에 그럴 것이다


꿈은 괴롭지만

나는 계속 잠을 설친다

그러면 찰나일지라도 너를 생생히 본다


베갯잇을 빨아야겠다


2022.05.15


나는 이전 연애 이야기를 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누군가와 만나다 헤어지고 나면, 왜 헤어졌냐는 질문이 쇄도하는 시기가 있다. 이십 대 중반까지의 나는, 앞다투어 질문하며 내 대답만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이별의 계기가 될 수 있을 만한 아무 사건을 하나 꺼내어 얘기해주며, 쓴웃음과 함께 적당히 얼버무리며 넘어갔다. 더 해봐야 좋을 것이 없었다. 헤어진 상대가 어딘가에서 내 이야기를 하고 말고 와는 별개로, 적어도 나는 헤어졌다는 이유로 뒷담화를 하기 싫었다. 할 거면 헤어지기 전에 했어야지. 그리고 상대방과 대화하여 그 문제를 풀어냈어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신랄한 비난 또는 욕설을 기대한 이들은 나의 뜨뜻미지근한 대답에 실망했다. 그리고 다시 그 일을 묻지 않았다. 물어도 재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정확히 내가 원하는 바였다. 


그렇게 하면 더 빨리 편해지는 줄 알았다. 이야기를 안 하면 생각도 안 날 줄 알았던 것이다. 실제로 그전까지는 대체로 그랬기에, 나는 이 방법에 어느 정도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진짜로 힘들었던 적이 없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이별한 상대가 꿈에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꿈은 막을 방법이 없었다.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했다. 하지만 며칠씩이나 같은 사람이 나오는 꿈을 꾸다보면, 무의식 중에 그 사람이 나오길 기대하며 잠에 드는 나를 발견한다. 그때 밀려오는 슬픔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바닥이 없는 곳으로 끝없이 떨어지는 기분이다. 심지어 며칠, 길게는 몇 주를 그렇게 시달리면, 실제로 그 사람이 그리워지기에 이른다. 그러다 종국에는 이런 현상이 대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긴 고민 끝에 내가 도달한 결론은, 다름 아닌 '침묵'이었다. 남들의 질문에 침묵하느라 쌓인 스트레스가, 그때마다 담아두었던 상대에 대한 생각이 꿈으로 발현되었다, 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었다. 


이미 이별한 사람에 대한 뒷담화를 하고 싶지 않다는 내 입장은 다행히도 아직까지 견고하다. 아직 만남도 이별도 없는 상태지만, 아픔을 털어버리는 다른 방법을 미리 찾아놔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지 않으면 또 이별 후에 원해서 꾸는 악몽을 꿀 지도 모른다. 살면서 더 이상 그런 시기는 겪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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