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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학이야기 Jan 18. 2022

철학이야기 주간 뉴스레터 #1

디지털 세상의 무한한 즐거움과 아득한 암흑 사이의 이야기.

안녕하세요, 처음 이야기하는 FAUX 입니다.

안녕하세요! 어느 새 2022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요즘 들어 세상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메타버스, NFT, 웹 3.0... 복잡한 기술 용어들이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있고, 소셜네트워크 회사로 유명한 페이스북은 '메타(Meta)'로 회사 이름을 바꾸며 가상현실과 메타버스 사업에 적극 투자하겠다는 열의를 보이고 있죠. 우리의 일상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온 것 같습니다. 비대면 교육과 재택근무의 활성화, 다양한 기능과 편리함을 제공하는 수많은 디지털 플랫폼들... 우리의 일상은 디지털 기술에 의해 마치 복잡한 거미줄처럼 얽혀가고 있는 것 같아요.


디지털 기술의 빠른 변화에 발맞춰, 디지털 세상을 다루는 철학들도 수면 위로 조금씩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허욱의 ‘디지털적 대상의 존재에 대하여’가 한국어로 번역되었고, 가상 세계의 철학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데이비드 차머스의 책 ‘Reality+’는 이번 년도 1월에 출간될 예정이라고 합니다(얼마 안남았네요!). 이번 미국철학협회(APA)가 게임의 본질을 탐구하는 응우옌의 책 ‘GAMES: Agency as Art’에 '올해의 책' 상을 수여했다는 사실을 빼놓을 수 없겠군요. 요즘의 디지털 게임들은 정말로 디지털 세계에 적합한 예술매체라고 생각이 듭니다. 비록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2018)'이 보여주는 멋진 장면들처럼 화려하지 않더라도, 디지털 게임은 사용자에게 현실 이상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전 세계 게이머들과 함께 소통하며 게임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거나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화면에서 갑옷을 입고 뛰어다니는 캐릭터가 마치 현실의 '나'인 것처럼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하죠. 게임에 대한 가벼운 인식과는 달리, 게임의 마법같은 현실성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디지털 세상을 바라보기 위한 첫 걸음으로, 게임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해보려 합니다. 하지만 이번 뉴스레터의 게임 이야기는 중독적인 사운드와 함께 깜빡거리는 형형색색의 픽셀보단 조금 더 어두울 수 있습니다. (으스스한 사이버 바람소리)


우리가 게임에 대해 가지는 일반적으로 가지는 인식은 '즐거움'일 것입니다. 게임의 즐거움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게임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들죠. 때로는 게임은 중독적인 즐거움을 제공하는 무시무시한 매체로써 윤리적인 논쟁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게임은 그러한 즐거움에 기반하여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냅니다. 가령 '듀오링고'와 같은 외국어 학습 어플리케이션은 뱃지, 경험치, 유저 프로필 등과 같은 게임의 요소를 적용하여 사용자로 하여금 보다 즐겁고 가볍게 외국어 학습을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s://productsinpublishing.com/gamification-and-duolingo-and-what-to-learn-from-it/


그런데 어느 날, 다수의 참여를 필요로 하는 크라우드소싱을 활용하는 몇몇 기업의 머릿 속에 문득 통찰이 스치게 됩니다: '게임의 즐거움은 자발적인 참여를 이끈다. 그렇다면 비즈니스에 게임 요소를 접목하여 많은 사람들의 서비스 참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실제로 비즈니스에 게임 요소를 접목한 시도는 기업에게 유의미한 이익을 만들어주었고, 기업이 비즈니스에 적절한 게임 요소를 배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컨설팅 서비스도 덩달아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대표적인 컨설팅 서비스로는 번치볼(Bunchball)이 있습니다). 이러한 기법을 게임화(Gamification)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게임화는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죠: "비게임 분야에 게임 디자인 요소를 사용하는 것(the use of game design elements in non-game contexts)”. 게임화는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비즈니스가 실제로 가능하다는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게임화된 근무 환경은 근무자로 하여금 지루한 노동에서 벗어나게 도와줄 것이고, 기업은 게임화된 서비스를 찾는 사용자의 증가에 바탕하여 더 큰 수익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지 출처: https://boingboing.net/2018/11/03/neotaylorism.html


하지만 어딘가 이상하고 불안한 모습들이 즐거움의 틈새 사이에서 스며나오기 시작합니다. 2011년, 애너하임의 디즈니랜드 호텔에서 일하고 있는 근무자들이 게임화 기법이 적용된 작업 환경에 강한 압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세탁 업무를 하는 근무자들이 일하는 호텔 지하의 벽에는 커다란 스코어보드가 걸려있고, 스코어보드는 근무자들이 일하는 속도 순서대로 근무자의 이름들을 나열하였습니다. 근무자는 자신이 다른 근무자들보다 얼마나 일을 느리게 하는지 혹은 누가 제일 세탁을 빠르게 하는지를 스코어보드로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스코어보드에는 '능률성'이라는 지표가 각 근무자의 이름 옆에 붙어있는데, 근무자가 기업이 정한 능률에 맞게 일하는 경우에는 초록색으로 표시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빨간색으로 표시된다고 합니다. 근무자들은 디즈니랜드가 '전기 채찍(Electronic Whip)'을 휘두르고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근무자들은 스코어보드에 표시된 능률이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여(게다가 능률이 하락하면 매니저에게 자세하게 해명해야 한다는군요) 화장실을 가는 것조차 스스로 통제하게 되었고, 심지어 일의 진행에 문제가 될 수 있는 임산부 근무자에게 기분 나쁜 감정을 느끼기도 하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조금 으스스한 기분이 들지 않나요? 우리는 게임이 즐거운 경험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비즈니스에 게임화 기법을 적용하자 근무자들 사이에서 게임의 즐거움과 거리가 먼 감정과 행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해당 근무자들은 기업이 요구하는 효율을 충족하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추가로 벌어들인 이익을 적절하게 분배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디즈니랜드는 그동안 근무자들에게 무료로 제공되었던 의료보험의 일부를 그들의 임금에서 삭감하는 방식으로 청구하고자 하였다는군요. 지루하고 반복적인 노동에 게임의 요소를 더하면 근무자들은 보다 즐겁게 일하고 기업은 더 많은 이익을 얻는, 모두가 행복한 상황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였지만, 게임화는 근무자들에게 부당한 전기 채찍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언 보고스트는 이러한 게임화를 두고 '개소리(bullshit)'라고 외치며, 게임화는 단순히 '착취적 소프트웨어(exploitationware)'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어쩌면 게임화 기법은 게임의 즐거움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기에, 위와 같은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윤리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사용자 혹은 근무자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는 게임화 기법 적용 사례들을 충분히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럼 게임화가 게임과 같은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다면, 디즈니랜드의 전기 채찍과 같은 문제의 원인은 오롯이 악한 기업의 몫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일까요? 하지만 잠깐...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얼굴을 한 게임의 즐거움을 그냥 돌려보내기 전에, 한 번만 더 질문을 던져보죠. 게임의 '즐거움'과 '자발적인 참여'는 윤리적인 책임과 별개라고 할 수 있을까요?


몇 가지 실제 사례를 살펴봅시다. 이슬람주의 무장단체 조직 지하드(Islamic jihadi groups)는 그들의 홍보용 웹사이트에 포인트, 레벨, 컨텐츠 잠금 해제와 같은 게임 기법을 사용하여 지지자를 모집하였고, 캠오버(Camover)라는 웹사이트는 감시국가에 반대하는 시위자들로 하여금 베를린 주변의 CCTV 카메라를 파괴하는 것을 장려하기 위해 포인트와 보너스를 부여하였습니다. 잠깐... 일이 더 복잡하게 되어가는 것 같지만, 그렇다면 특정한 게임화는 게임의 근본적인 즐거움에 기반하여 행위자의 폭력적인 행동을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게임화의 논의에 추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사고 실험은 어떤가요?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면 포인트를 얻는 게임이 있고, 해당 게임에 완전히 몰입한 게임 중독자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만약 게임 중독자가 현실에서 정말로 물에 빠진 아이를 보게 된다면, 도덕적인 동기로 상황을 바라보게 될까요, 게임의 포인트를 떠올리게 될까요? 가령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루게릭 병의 사회적 인식 개선과 기부를 활성화 하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챌린지가 사회적 유행으로 번지게 된 주요한 이유는, 아이스 버킷 챌린지가 담고 있는 윤리적 메세지에 대한 참가자들의 공감이라기 보단,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선택의 순간을 제시하는 챌린지의 게임성이 참가자들로 하여금 즐거움을 제공하여, 전 세계적인 전파를 만들어 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히 어떤 행동이 도덕적인 결과를 가져왔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의도가 도덕적이지 않다면, 해당 행동을 완전히 도덕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이미지 출처: https://time.com/3182165/i-figured-out-why-i-hate-the-ice-bucket-challenge/


게임화의 윤리적 문제에 대한 논의는 아직 남아있지만, 기회가 된다면 이후의 뉴스레터에서 조금씩 다뤄보겠습니다. 디지털 세계로 글을 시작해서 게임화의 윤리적인 문제로 나아간 이유는, 게임의 요소가 인간 행위자의 동기와 행동에 영향을 주는 모습이 어쩌면 디지털 세계에서 생존하는 우리의 모습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세계를 다시 한 번 떠올려보죠. 우리는 어플리케이션으로 전 세계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상품을 주문하거나 원하는 정보를 검색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숙히 들여다보면, 거대 기업은 전 세계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훌륭한 디지털 기법을 만들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디지털 게임 디자인을 활용한 게임화도 그렇고, 사용자의 검색 기록이나 페이지에 머무르는 시간을 바탕으로 하는 추천 알고리즘도 예시로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사용자의 정보를 모으기 위해 혈안이 된 어떤 기업들은 사회적인 공방을 만들어내기도 하였습니다.


디지털 기술이 단순히 비즈니스에게만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 나아가면, 정보는 무게와 물리적인 크기가 없다는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막대한 정보를 저장하기 위한 데이터 센터를 추가적으로 세워나가야 한다면, 이와 관련된 다양한 환경적인 문제를 고려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올 것입니다. 디지털 세계의 활성화와 함꼐 정보 보안의 문제도 시급한 윤리적 문제로 떠오르게 되었죠(우리의 사생활이 담긴 정보가 해쉬 기록으로 남아 기업 혹은 국가에게 전송되는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도대체 디지털이란 무엇일까요? 우리의 눈 앞에 놓인 스마트폰과 어플리케이션만이 디지털 대상일까요?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내는 대상과 현실의 대상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일까요? 아니면 정말로... 현실과 디지털 세계를 구분하는 명확한 구획이 존재하고 있을까요? 만약 현실과 디지털 세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면... 우리의 존재는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요? 입이 없지만 비명을 질러야만 한다면, 조심스럽게 디지털 암흑 속으로 발걸음을 내딛어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된 것 같습니다


출처: https://www.gamesindustry.biz/articles/2020-04-15-game-of-life-creator-john-h-conway-dies-at-82



게임화에 관한 논의는 김태완(Tae Wan Kim) 교수님의 'More than just a game: Ethical issues in gamification'을 참고했습니다.

게임화에 대한 정의는 서베스천 디터딩(Sebastian Deterding)의 연구를 참고했습니다:  'From Game Design Elements to Gamefulness: Defining Gamification'.

게임화에 대한 국내 서적으로는 권보연 교수님의 '게이미피케이션'이 게임화와 게임에 대한 이야기들을 잘 정리해놓으셨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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