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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학이야기 Feb 16. 2022

철학이야기 주간 뉴스레터 #5-1

자율성과 열린 마음 

안녕하세요, 스터디우스입니다!

우리에게 자율성은 소중한 가치를 가집니다.


한 명의 주체로서 나의 태도와 선택에 대한 통제를 가진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 외부의 장애와 내부의 격동에 가로막히거나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는 힘을 갖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스스로도 스스로 마음에 대해 알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나의 바람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타자의 욕망을 비추는 거울에 지나지 않을 때가 있고, 나의 판단은 하키의 퍽(puck)처럼 이런저런 요소에 의해 내몰린 감이 없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마음을 완전히 마음대로 하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이고 따지고 보면 삭막한 환상 같습니다. 

그보다 자율적이라는 것은 이렇게 저렇게 날뛰고 들뜨는 마음의 동요 속에서도 여유를 만드는 것, 또 그것을 바라보아 나의 선택과 판단의 경향성을 인지하고 또 그 경향성을 가꾸어나가는 데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한 사회의 지도자들이 백신 정책에 대해서 같은 판단을 내리더라도 그 판단의 이유가 분명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지도자는 여러 고려사항들 중에 자신이 부여하는 가치들의 선후와 정도가 비교적 명확할 것이고 어떤 지도자는 이런 점에 있어서 순간순간의 기지와 느낌에 의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조심스레 생각해보건대, 상황이 바뀌어 정책의 구체적 내용을 바꾸어야 할 때 전자처럼 비교적 명확한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는 이는 자신의 판단을 좀 더 유연하게 바꾸고 개선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본래 판단의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쉽게 기존의 판단에 집착하게 되고, 그나마 바꾸더라도 변덕에 불과할 심산이 큰 듯합니다. 


이처럼 변화하는 세상 속에 끊임없이 활동하는 마음을 지닌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이해는 자율성과 관련하여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때 스스로에 대한 이해는 무엇보다 자신의 선택의 바탕이 되는 가치들의 위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저는 지난 글에서 브레이트먼에 따라 이런 위계를 "자기 지배 정책(self-governing policy)"라고 불렀습니다. 위의 백신 정책의 예를 다시 가져와 이야기해보자면, 백신 패스에 의해 제한되는 국민의 자유와 이를 통해 보호할 수 있는 국민의 안정성이라는 두 가치 사이의 적절한 관계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어떤 정책이 주먹구구식이라기보다 '자율적'이라 할 수 있을 테지요. 이것은 꼭 정치처럼 큰 규모의 영역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영역에도 유사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또 지난 글에서 웨스트런드의 시각을 빌려, 자율성과 관련된 하나의 우려를 언급했습니다. 즉 우리가 어쩌면 스스로의 자기 지배 정책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내가 어떤 판단을 내릴 때 참고하는 자기 지배 정책을 스스로 아무리 잘 알고 있어도 이 정책을 수정하거나 변화할 힘을 전혀 가지지 못한다면, 나는 기껏해야 이 자기 지배 정책을 현실화시키는 피동자일 따름일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어떤 악보를 보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구현해내고 때때로 변주를 해낼 수 있는 자는 예술가이지만 있는 그대로 반복할 수밖에 없는 자는 축음기와 같습니다. 


웨스트런드는 누군가 스스로의 자기 지배 정책에 사로잡혀있지 않음을 확인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의 판단에 대해 설명하고자 하는 기질, 즉 대답성(answerability)을 이야기합니다. 자기의 자기 지배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자 하는 사람은 실제든 가상이든 일종의 대화 상대자를 상정하는 것이고 이것은 한 걸음 물러나 대화 안에서 자신의 판단을 살펴볼 능력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저는 이런 웨스트런드의 주장을 비판했습니다. 말은 청산유수지만 사실 자신의 판단과 판단 방식에 대해 전혀 바꾸려들지 않는 사람은 자기의 자기 지배 정책에 사로잡힌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생각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지의, 나아가 이러한 여지를 활용하여 자신의 자기 지배 정책을 수정할 역량을 가지는지의 여부입니다. 제가 볼 때, 웨스트런드의 말처럼 대답성은 스스로가 스스로의 자기 지배 정책에 매몰되어있지 않음을 드러내 주는 좋은 지표입니다. 타자의 시선을 자기 자신에 대한 판단함에 초대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모든 대답성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겐 추가적인 조건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나의 자율성을 드러내 주는 특별한 대답성이 있다는 것이죠. 


제가 제안하는 것은 열린 마음(open-mindedness)입니다. 이미 몇몇 학자들은 이런 열린 마음이 자율성의 필요조건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죠. 그런데 우리의 맥락에서 열린 마음에 대한 논의에는 두 가지 큰 의문이 있습니다. 하나는 도대체 열린 마음이 무엇이냐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열린 마음이 가진 어떤 특징 때문에 이 태도가 자율성의 기초가 되느냐는 것이 그것입니다. 


베어(Baehr, 2011)에 따르면,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마주했을 때 그 의견을 기꺼이 진지하게 고려하는 사람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둘 이상의 선택지가 있을 때 주어진 정보와 의견들을 토대로 충분히 공정하게 평가하여 선택을 내리는 사람입니다. 마지막 하나는 꼭 경쟁적인 두 선택지가 없더라도, 어떤 결론을 내릴 때 서두르지 않고 충분히 숙고하는 사람입니다. 베어는 이런 세 유형의 열린 마음은 모두 자기 자신의 믿음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다는 것에 주목합니다. 그러므로, 이 능력이야 말로 열린 마음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다고 그는 보고 있지요. 그의 표현대로라면, 심리적 공간(psychologcal space)을 만드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곧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물론 심리적 공간을 마련하여, 기존의 믿음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곧 열린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상황에서 심리적 거리를 두는 사람은 굳건한 믿음을 가지거나 분명한 선택을 내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기보다, 줏대 없는 사람이거나 우유부단한 사람이라고 불리는 편이 더 나아 보입니다. 이 때문에 베어도 이런 심리적 공간을 만드는 능력을 발휘할만한 상황을 잘 분별하는 일이 열린 마음이라는 성품을 설명하는데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아울러 강조합니다. 베어는 우리가 어떤 믿음에 대해 잘 모를 때, 스스로 어떤 문제를 다룸에 있어 그 능력이 출중하지 못할 때, 기존의 믿음에 반대되는 주장이나 증거의 출처가 믿을만할 때, 이런 심리적 공간을 마련하는 능력을 사용하는 사람이 열린 마음을 가진다고 주장합니다. 


베어가 설명하고 있는 열린 마음은 자율성을 설명하는데도 적합해 보입니다. 열린 마음 가진 사람은 자신의 믿음에서 언제 어떻게 거리를 두면서, 기존의 믿음을 변경할만한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은 특정한 판단을 내리는 바탕에 해당하는 자기 지배 정책에 대해서도 거리를 둘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만약 우리가 베어의 말을 옳게 여긴다면, 지금까지의 논의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율성이란, 어떤 선택을 내릴 때, 그 선택이 자기 지배 정책에 근거하고 있어야 함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지배 정책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즉, 우리가 열린 마음을 가지는지 알아야 합니다. 자기 지배 능력을 통한 선택을 내릴 수 있으면서도, 특정 주제에 대해 자신이 잘 모르거나,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기 어렵거나, 반대의 주장을 더 신뢰할만할 때에는 이 자기 지배 능력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이 능력 자체를 수정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지배 능력을 구성하는 가치들의 위계들과 이에 근거하는 논증을 설명할 수 있는 동시에, 주어진 상황이 심리적 공간을 마련할만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는 대답성을 가진다면, 그는 자율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논의를 갈등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자율적인 입장에서 갈등에 임하는 사람이고자 한다면, 자신이 믿음과 사고방식에 대해 반성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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