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학이야기 Feb 09. 2022

철학이야기 주간 뉴스레터 #4-2

실존주의 -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안녕하세요 복잡한 개념이나 용어 없는 학부생의 철학 이야기입니다.


각자의 삶에는 빼놓을 수 없는 각자의 요소들이 있습니다. 가령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내리는 진한 커피나, 강의실로 가는 길에 듣는 음악, 담배나 금요일 밤에 마시는 가벼운 위스키 온 더 록스처럼, 삶에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없으면 안 되는 삶의 규칙 같은 것이 존재하죠. 세상을 살아가는 개인들은 그런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마치 오늘의 할 일에서 체크 리스트를 하나씩 지우는 것처럼 규칙들을 완수해나가며, 내가 사는 삶이 이상적인 삶인가 점검해나가곤 합니다. 만약 오늘 내가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면, 그날은 무언가 불완전한 하루가 되어 기억이 되어 남기도 합니다. 사실 굳이 생각해내려 노력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그런 요소들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제 친구에게는 차가 두 종류 있습니다. 하나는 흰색 승용차이고, 하나는 노란색 스포츠카죠. 친구는 늘 그 둘 중 하나를 타고 출근을 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친구는 그 선택에 불만이 많습니다. 기분에 내키는 대로 타는 것도 좋지만, 매일 자신이 어떤 기분인지도 모르고, 그 기분이 자신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모르고 그저 판단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친구는 그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내가 알 수 없는 요인으로 결정되는 상태로 삶의 방향을 결정할 수는 없다는 거죠. 그래서 친구는 조금은 독특한 스스로의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자신의 페니스가 발기되어 있으면, 그 친구는 흰색 승용차를 타고, 발기되어있지 않으면 노란색 스포츠카를 타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현상으로 나타나는 페니스의 발기성은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한 무작위에 근거해 있습니다. 그 관점에서 친구의 규칙은 어떻게 보면 기분에 내키는 대로 오늘 탈 자동차를 선택하는 것보다 더욱 랜덤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여전히 ‘기분에 내키는 대로’의 행위보다는 더욱 주체적인 것으로 보았습니다. 아침의 백지상태에서 일어난 그의 기분은 그날의 햇빛, 온도, 커피의 산미, 어제 말싸움을 한 여자 친구의 침묵 등의 영향으로 인해 선택권 없이 그의 머리 위에 흰색 구름 덩어리처럼 떠오릅니다. 하지만 발기된 페니스는 마치 어떤 관념처럼, 단단하고 의식 없이, 도덕과 윤리 없이 - 순수한 신체의 작용으로 그곳에 우뚝 서있다는 것이 친구의 관점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판단하기 전에, 합리성을 떠나서 그곳에 그저 말뚝처럼 존재하고 있다는 거죠.




이 이야기에 특별한 교훈은 없지만 굳이 해석을 해보자면,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이러한 종류의 선택들을 자주 하게 됩니다. 기분이나 발기나 결국에는 비슷한 정도의 무작위성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여러 가지 무작위성으로부터 선택을 하여 그것을 나의 고유한 판단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아침에 서있을지도- 혹은 잃어버린 양말 한 짝처럼 축 늘어져있을지도 모르는- 페니스의 상태를 부조리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조리라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합리적이지 않은 세상에 우리가 붙여준 이름입니다. 단단한 페니스던, 물렁물렁한 페니스던, 의식의 진창에서 빠져나와 가까스로 뜬 눈으로 본 자신의 고간의 형태는 그야말로 우연적이고 -비합리적입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그런 비합리성으로부터 결국에는 판단을 하고 결정을 내려 어떤 합리를 이끌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발기가 되었으니까 흰색 승용차를 탈래, 라는 제 친구의 억지스러운 합리화는 어떻게 보면 세계에 대한 불합리성, 즉 부조리함에 대한 반항입니다.


카뮈의 반항하는 인간 (1951)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선택은 합리적이지 않은 세상과 - 마치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이해할 수 없이 모든 것을 때려 부수는 폭풍이나, 아무 전조도 없이 찾아오는 발기처럼- , 합리적인 나 자신 - 세상과 타인을 마주할 때 윤리적 이치를 이해하는 나 - 사이의 관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어떻게든 스스로의 이해 가능한 규칙을 만들고, 선택을 내림으로서 주체성을 되찾는 일이죠. 이런 해석의 세계관에서 삶은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연하게 이 세상에 나타납니다. 우연하게 주어진 요소들을 가지고 말이죠. 당신은 키가 클 수도 적을 수도 있고, 잘생겼을 수도 그냥 그럭저럭 볼링을 잘 칠 것처럼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철옹성같이 단단한 페니스를 마주할 확률이 높은 사람일 수도 있고, 평소에 달리기를 열심히 해야 하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우연하게 나타나는 것들은 합리와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또한 우연하기 때문에 의미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대체 왜 나는 이런 거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그것은 합리적이라면 마땅히 느껴야 하는 존재의 기분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외국어로 된 책 앞에 앉아서 사전도 없이 그것을 읽으려고 글자들을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는 것처럼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위일 것입니다),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인간의 이치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결국 포기하고, 그럼으로써 부조리함을 느끼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 자체로 부조리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은 부조리함의 감정을 느끼는 존재라는 그 말이죠.




다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들로 돌아가 봅시다. 삶에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없으면 안 되는 삶의 규칙들에 대해서 말이죠. 우리는 그것에 대한 일상적인 고찰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그것이 우리가 정말 좋아서 하는 선택인가- 혹은 불합리에 맞서 싸우는 부조리함의 감정인가- 생각해볼 가치가 있어요. 그리고 그것을 부조리하다고 느낀다면, 어떻게 반항할지 계획을 세우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인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나름 학교에서 실존주의 동아리를 운영하는 대학생으로서, 그것이 우리가 일상적인 삶으로부터 실존적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봅니다. 하이데거는 평범한 사람들은 죽음의 순간 그 직전까지 실존적 질문을 던지지 못한다고 그러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우리는 실존적 생각을 훈련을 통해 작게라도 접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마 실존주의자가 되는 첫걸음이 아닐까요?




✔️ 이번 뉴스레터는 어떠셨나요? 뉴스레터를 평가해주세요!

✔️ 뉴스레터를 구독하시면 매주 새로운 레터를 이메일로 쉽게 확인하실 수 있어요! 뉴스레터 구독하기

✔️ 철학이야기 카카오톡 오픈채팅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철학이야기 오픈채팅

작가의 이전글 철학이야기 주간 뉴스레터 #4-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