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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도 Apr 10. 2023

[수집 일기] 2023년 4월 10일

소장했던 가구를 떠나보내며

가구를 수집하기 시작하고 지금까지, 꽤 많은 가구를 모으고 보냈다. 그런 과정에서 아무리 집에 가구가 많아도, 언제나 새로운 가구를 구입할 때의 마음가짐은 ‘평생 함께해야지’였다. 내가 지금 구입한 이 가구가 나와 함께 나이를 먹어서 언젠가 집 안에서 볕이 잘 드는 공간에 자리 잡고 있을 생각을 하면 괜히 뭉클해지기도 했다. 훗날 나의 컬렉션을 궁금해할 그 누군가가 물어봤을 때, 이 피스가 언제부터 어떻게 나와 함께하게 됐는지 이야기할 생각을 하면 즐거웠다.


하지만 참 아쉽게도, 내 곁으로 온 모든 가구가 나와 평생 함께할 수는 없었다. 내가 생각보다 취향이 급격하게 변하는 사람은 아니어서 취향의 변화에 따라 판매하는 일은 없었다. 다만 공간이 여의찮아 마음속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혹은 정말 갖고 싶었던 피스를 구입하기 위한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판매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후자의 경우는 아쉽지 않지만, 전자의 경우는 내심 미안하고 아쉬운 경우가 많았다. 어디든 충분한 공간만 있으면 절대 보내고 싶지 않았을 텐데, 어떤 가구든 일정 면적은 차지하다 보니 공간의 한계가 있었다. 렌탈 스튜디오처럼 공간을 널찍하게 사용하며 가구 한두 점으로 포인트를 주는 그런 공간에서 사는 사람도 아니고, 오히려 복작복작하게 가구를 최대한 들여놓고 사용하는 맥시멀리스트인 나지만, 그래도 사람이 여유를 느끼며 살만한 공간은 필요했다.


이렇게 가구 판매에 대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이유는, 최근 국내 빈티지 샵을 통해 위탁 판매를 했기 때문이다. 위탁 판매를 의뢰한 대부분의 제품은 알토 디자인 제품이 아니었으나, 오늘 새롭게 의뢰한 곳에는 알토 디자인 제품도 두 점을 요청했고 기록을 남겨 놓고 싶었다.


의뢰품 하나는 일본에서 구입한 알토 책상 서랍(Drawer)이었다. 이 서랍을 구입하기 전까지 알고 있던 알토 디자인의 책상 서랍은, 앞면에 3~5단 서랍이 있는 서랍장이거나 또는 거기에 더하여 뒷면에 책꽂이가 있는 모델 총 두 가지였다. 더 세분화하자면 열쇠로 잠글 수 있는 모델과 그렇지 않은 모델이 있었다. 그런데 이건 무려 알토 대학교에서 왔다는 책상 서랍이었는데, 조금 높은 협탁 같기도 했다. 락(Lock) 시스템은 없었고, 서랍장 윗면에 조금 더 넓은 사각 상판이 덧대어져 있어 알토 디자인의 책상 밑으로 쏙 들어가는 크기는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협탁이라는 느낌이 조금 더 강했던 것 같다. 상판은 블랙 컬러의 리놀리움으로 되어 있어, 컬러 상판의 다른 알토 디자인 가구들과도 합이 좋다고 생각했다. 핸들도 다른 서랍에 비해 특이했는데, 이 부분은 확실히 하고자 Artek 2nd Cycle에 별도로 문의했었고, 세컨 사이클 측에서도 과거에 동일한 핸들을 가진 서랍을 판매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했던 기억이 있다.


나머지 하나는 아이노 알토(Aino Aalto)의 얼룩말 패턴(Zebra Pattern) 패브릭으로 업홀스터리 된 69번 의자였다. 아이노 알토의 흔적이 남아있는 제품을 구입하고 싶었을 때 거짓말처럼 만난 제품이었는데, 66번 의자에 비해 잘 사용하지 않게 되고 분명 좋은 의자임에도 구석 한쪽이나 방 한편으로 밀려나는 신세가 된 것이 안타까워 새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위탁했다. 아이노 알토의 제품은 그 뒤로도 계속 찾아다니고 모으고 있는데, 사실 이 의자와 더불어 아이노 알토의 제품이라면 가급적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 지금 일본 도쿄 이세탄 더 스페이스(ISETAN THE SPACE)에서 열리고 있는 ‘Women Design In Modern’처럼, 언젠가 서울에서 핀란드 혹은 전 세계 여성 가구 디자이너들의 제품을 모아둔 전시를 연다면, 나도 일부분 도움을 줄 수 있는 때가 오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레 글릭센(Maire Gullichsen)의 스튜디오 in Villa Mairea
적지 않은 나이에도 찾는 알토 디자인 제품을 찾아 세컨 사이클까지 방문한 할아버지. 저렇게 되고싶다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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