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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수 Jan 16. 2022

극과 극의 사람들이 부부가 된 이유

아, 우리 성향은 정말 많이 다르구나

본래 우리는 비혼 주의 까지는 아니었으나 딱히 결혼에 대한 생각도 욕심도 없었다


그냥 때 되면 가겠지 정도?


특히 나는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인 데다가 자유로운 영혼이라

더더욱 결혼은 하지 않고 내가 키우는 개와 멋지게 살아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우리가 연애를 시작했다

알아가기 시작할 때 즈음이었을까 남편과 나는 너무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꼈다

남편은 나보다 무딘 사람이라 당시 이런 부분을 명확하게 느끼지 못했지만

나는 걱정될 정도로 우리의 성향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편은 현실적이고 매우 이성적인 사람, 매사에 천하태평 한 사람
나는 이상을 추구하고 감정적이고 걱정이 끊이지를 않는 사람

연애 당시만 해도 전화로 세네 시간 동안 남편에게 걱정을 줄줄이 늘어놓았을 정도였는데

남편은 항상 다 괜찮다는 식으로 얘기했으니 이 얼마나 다른 성향인가


남편 특유의 천하태평함에 걱정이 조금이나마 사라지긴 했지만

본래 걱정 투성이인 나는 걱정에 걱정을 거듭하곤 했다




어느 날 내 인식을 바꿔주는 남편의 한 행동을 목격했는데,

바로 우리 집 쓰레기통의 종량제 매무새를 다듬어주는 모습

남들 눈에는 별 거 아닌 것일지 몰라도 내 입장에선

아무리 여자친구 집이라 해도 그런 사소한 것에 시선이 간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다


깔끔한 나도 남의 집 쓰레기통은 지저분하다고 느껴서 잘 만지지 않게 되기에 남편의 행동이 더 놀랍게 느껴진 것 같다


아 이 사람이랑 살면 존중을 받을 수 있겠구나


쓰레기통 매무새 하나로 존중까지 연결되나 싶을 수 있겠지만 '사소함'에 시선이 가는 남자라면

나의 사소함까지 다 잘 알아주리라 생각이 들었다


이 외에도 자유분방 천방지축인 나와 다르게 남편은 성격도 무던해서

안정적이라는 큰 장점이 있는 사람이라 이것을 계기로 더욱 좋게 볼 수 있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을 전제로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이십 대 중ㆍ후반의 연애와 동거인만큼 '결혼'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처음엔 마냥 좋았다, 다 잘 될 것 같은 기분? 나도 이제는 안정적인 사람과 안정적인 인생을 살 것 같은 느낌?


근데 왠 걸 남편과 나는 역시나 너무 달랐다


양식을 좋아하는 사람과 한식을 좋아하는 사람

먹은 건 바로 치우는 사람과 나중에 치우는 사람

밥 먹고 산책을 가고 싶은 사람과 쉬고 싶은 사람

계획해서 행동하는 사람과 무계획도 계획인 사람

대화가 인생의 낙인 사람과 대화가 어려운 사람


우린 짧은 연애 후 동거를 시작했기 때문에 이런 각자의 세세한 성향을 알 리가 없었다


너무 막막했다. 남편을 따라 이 먼 타지까지 따라온 데다가 양가 허락 하에 시작한 동거 생활이었고

동시에 여기까지 오게 된 나의 판단에 대한 자책도 잇따랐다


남편은 내가 요구하는 것의 대부분을 묵묵히 따라주었지만 내가 감정적으로 나올 때면 자리를 피하곤 했다

하긴, 수시간에 걸쳐 내 감정을 쏟아내니 대화와 격한 감정에 익숙지 않은 남편이 힘들었을만하다


당시에는 결혼을 하기 싫다기보다 결혼을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몇 번이고 들었다

평소에 잘 지내다가도 서로 다름을 느끼면 또다시 복잡해졌다


우리는 함께 지내며 수없이 대화를 하고 맞춰 갔다


너무 다르고 과정이 복잡하기는 했지만 서로에게 단점으로 느껴지는 부분들만큼이나

서로의 장점이 서로의 단점을 커버해주고 업그레이드시켜줄 만큼 우리는 시너지가 좋았다


나는 이상적인 시각에서 현실적인 시각의 눈을 떴고,

자칫 강박으로까지 느껴지는 기존의 계획적인 성향에 느긋함을 섞었다

남편은 조금 더 타인을 공감하게 되었고, 감성과 감정이라는 추상적인 문구를 알게 되었다


물론 중간중간 나의 예민함이 발동되기는 했지만 남편은 이제 내 감정 분출에 익숙해졌는지 잘 견뎌주었다

그렇게 결혼을 했다. 벌써 첫 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았고 그 후로도 네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매운걸 전혀 못 먹던 남편은 이제 불닭볶음면 정도는 거뜬하고

까페 가는 것을 전혀 이해 못 하던 사람이 이제는 먼저 까페를 가자고 한다


그렇게 극과 극이던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서로 닮아가며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연인같이

사람 냄새나는 깨 볶는 신혼생활을 즐기고 있다


물론 여전히도 잘 맞지 않는 부분은 존재하고 때로는 화가 날 때도 아주 '가끔' 있으나

이제는 서로의 모습을 그 자체로 인정하다 보니 대부분 잘 넘기는 경우가 많다


우린 아직 풋내기 부부이기에 앞으로도 서로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연애-동거-결혼의 과정에서 얻었던 것들을 양분으로 삼아 잘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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