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이직 중독자가 되어가 (3)
‘000 님, 00그룹입니다. 아쉽게도 최종 면접 결과 이번엔 저희와 함께 할 수 없...’
절대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아직도 그때 기억이강력하게 남아있는 걸로 보아 아마 불합격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래서 허언증이 무섭다. 남을 속이기 위해 시작했지만 결국 나까지 속여 버리니까. 굳이 긍정적으로 보자면, 막 중증으로 번지기 시작한 허언증이 그 한 통의 문자로 인해 단번에 치유된 건 다행이었다.
멍하니 휴대폰만 붙들고 침대 끝에 걸터앉아 있었다. 기운이 얼마나 빠졌는지 그대로 스르르 미끄러져 바닥에 쿵 떨어졌는데도 몸에는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잠시나마 행복했던 일상이 일순간에 증발해 버린 느낌이었다. 침대 끝에서 슬쩍 미끄러졌을 뿐인데 끝이 보이지 않는 컴컴한 우물속으로 계속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휴대폰이 다시 한번 징 울린다. 퇴직금이 입금되었다는 알람이었다. 어쩜 이렇게 타이밍이 절묘한지. 불합격 소식이 접수된 직후, 아주 잠깐 이전 회사로 달려가 볼까 생각했었다.
"제가 아무래도 미쳤었던 것 같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등등의 대사를 떠올려 가며.
칼같이 입금된 퇴직금은 이제 회사가 넘어오지 말라고 그어 놓은 군사분계선 같았다. '선 넘어 오지 마라, 알짱대면 총 맞는다.'고 써있는 것 같았다. 회사로부터 한 번에 받은 돈 중 가장 큰 금액 위로 무서운 경고문이 겹쳐 보인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떠오르는 건 죄다 좋은 기억뿐이었다.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 스스로 주말에 출근해서 강의안 만들면서도 행복했다.
마침 주말에 나오신 사장님과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사장님의 귀까지 찢어지는 미소를 보고 더 행복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분위기 좋은 곳에서 저녁 식사를 하면서 회사에선 미처 보지 못한 그들의 멋진 모습과 깊은 생각을 느끼며 행복했다.
잘할 땐 잘한다고 칭찬해 주고 못 할 땐 잘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신 팀장님과 부장님의 따뜻한 모습에 분명 행복했다.
일한 만큼의 월급 말고는 받은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회사가 내게 준 행복한 순간들이 정말 많았다.
왜 그땐 알지 못했을까.
회사도 충분히 즐겁고 재미있을 수 있는 곳이었다.
내게 다음 회사가 한 번 더 허락된다면 그 기회를 헛되이 하지 않으리라.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 스테이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