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하고 행복한 직장생활 가능함? (6)

급하면 체한다.

by 하작가

급하면 체한다.


이전 회사의 업무 중 가장 재미있었던 순간은 단연 강의 준비하고 강의하는 일이었다. 과장 조금 보태면, 그건 일이라기 보단 내가 즐기기 위해 찾아가는 '놀이'에 가까울 정도였다.


주말에 강의안 준비하러 자진해 출근하고, 시간 외 근무 수당 한 푼 받지 않아도 전혀 억울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고 아무때나 와서 일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깊은 감사함이 넘쳐나기까지 했다. 그런 곳을 또 만날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을 품고 본격적인 준비에 돌입했다.


어떻게 해야 강의할 기회를 얻을 수 있고, 오랫동안 그 일을 뮤지할 수 있을지 백방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그러다 국가 자격증 하나가 레이다에 포착됐다. 바로 ‘직업상담사 2급’이었다. 본격적으로 여기저기를 찾아다니고, 전화를 돌려가며 정보 수집에 돌입했다.


자격증 학원이나 인터넷 강의 업체 한두 개의 말만 믿을 수 없어 약 열 군데 정도 꼼꼼하게 알아봤다. 이 자격증을 따고 나서 향후 몇 년 뒤 나의 모습, 발전 가능성,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강의와 계속 연결되는 삶을 살 수 있는지까지.


거의 모든 학원의 응대 내용에서 공통 분모가 보이기 시작했다. "선생님 정도의 나이와 경력, 열정이라면 이 자격증 따고 원하시는 일 충분히 하실 수 있을거예요." 그래서 이 길에 대해 점차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가장 친절하게 답변해 준 학원 하나를 선택해서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시험을 준비했다. 오랜만에 하는 공부지만 목적의식이 뚜렷하니 나름 재미까지 있었다. 받은 책을 100% 외워버린다고 생각하고 공부했다. 그 결과 1, 2차에 걸쳐 진행되는 시험을 비교적 수월하게 합격했다. 첫 번째 정식 백수 생활은 생각보다 내실 있게 보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이제 다음은 이 자격증을 갖고 취업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취업의 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경력이 없으면 서류 전형 통과조차 어려웠다. 그 어떤 곳에서도 자격증만으로는 취업하기 힘들 거라는 얘기는 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아닌가?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들었던 것일수도 있다. 이전 회사 퇴사할 때부터 약간 제정신이 아니긴 했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점차 일이 꼬여가고 있음은 확실했다.


아,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과연 다시 꿈꾼 재미있는 회사 생활은 다시 찾을 수 있는 건가?

아니다, 재미같은 건 없어도 좋다. 다시 아무 데나 안정적으로 소속될 수만 있다면 좋겠다.


정말 다행히도, 간절하게 구직 활동을 이어가던 중 드디어 나를 불러주는 회사가 하나 있었다. 급여 수준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면접 때 나에 대한 평가를 후하게 준 곳이었다. 기분도 좋고 오랜만에 자존감이 한껏 올라간 김에 여기서 다시 행복한 회사 생활을 시작하고 싶어졌다.


'급하면 체한다'는 말은 이때의 나를 두고 만들었던가?


최종 합격을 하고도 이 회사가 대체 뭘 하는 회사인지 정확히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지만 과거의 나는 그런 디테일한 부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다. 참으로 위험천만한 청춘이었다.


새 회사는 집에서 거리가 꽤 됐다. 회사에선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내근보다는 출장이 많은 일이라 본사 출근은 거의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첫 출근 때 선배들로부터 OJT를 바로 받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알게 됐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1:1 과외 알선 상담사’였다. 업무 내용만 보자면 직업상담사와 완전히 동떨어진 일은 아니었다. 학생들의 진로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학업 성적이 따라줘야 하니 목표에 필요한 과외를 알선하는 일은 크게 봐선 직업상담사와 다르지 않은 것이 아닌가? 야심 차게 백수의 길에 발을 들였고 일정 기간을 자격증 취득에 쏟아부었으니 지금 내가 선택한, 사실은 유일하게 날 선택해 준 회사는 반드시 그 자격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이어야만 했다. 그렇게 굳이 얼렁뚱땅 연결고리를 만들고 있었다.


업무 방식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1단계: 상담팀이 어딘가에서 학생이 있는 집의 정보를 수집한 뒤 무작위로 전화한다.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면 2차 방문 상담 일정을 잡는다.

2단계: 상담사가 직접 가정으로 방문해 학생의 레벨 테스트를 하고, 학부모와 상담하며 과외 계약서를 작성한다.

3단계: 학부모가 수강료를 입금하면 회사가 보유한 과외 교사 풀에서 적합한 강사를 배정해 수업을 시작한다.


나는 그중 2단계를 담당했다.


아침 10시쯤 사무실에 느긋하게 출근하면 그날의 상담 일정이 주어진다. 동선을 고려해 하루 3~4건씩 방문할 수 있도록 조정되었다. 처음 일주일은 선배들의 상담을 따라다니며 배웠다. 네 명 정도의 선배 사원들과 각각 동행했는데, 각자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능숙하게 계약을 성사시키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이제 남은 건 내가 이 일을 재미있게 하는 것뿐이구나.’

그때까지만 해도, 나의 꿈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전 회사와 같은 종류의 재미는 느끼기 어려웠다. 업무는 대부분 혼자 진행됐고, 동료들과의 소통이나 팀워크에서 오는 기쁨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일 자체에서 보람을 찾기 위해 스스로를 바쁘게 몰아붙였다.
“사람은 바빠야 잡생각 안 나지!” 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며.


매일 첫 방문 상담을 위해 김포공항 근처나 영종도까지 갔다. 마지막 일정은 내 거주지 인근이었던 분당이나 강동에서 끝나곤 했고, 막차를 간신히 잡아 타고 집에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이동만으로도 체력이 바닥났지만, 학부모와 학생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일은 의외로 즐거웠다.


상담의 핵심은 결국 학생의 미래와 진로에 있었다. 그 과정에서 얼마 전 취득한 자격증이 제법 도움이 되는 순간들도 있었다. 억지로 끼워 맞춘 것 치고는 꽤 의미 있는 퍼포먼스가 조금씩 나오고 있었다. 몸은 고됐지만 상담 때마다 분출되는 아드레날린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을 시작한 지 약 2주쯤 되었을 때. 순수한 보람만으로는 이 일을 지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통렬하게 깨닫게 된 사건이 있었다.


부천의 어느 가정에서 상담을 진행했다. 상담은 순조로웠지만, 학부모가 계약을 망설였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최저가로 제시한 비용조차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마냥 억지로 밀어붙일 수는 없었다. 나의 실적을 위해 누군가의 살림살이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 판단이 ‘옳다’고 스스로 생각하며 집을 나섰다.


문을 나온 지 1분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스마트폰 화면에 대표님의 번호가 뜨며 불길한 진동을 울렸다.


‘아니, 대표가 나 같은 막내 직원에게 직접 전화를? 무슨 일이지?’


심장이 쿵 내려앉은 채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대표님, 000입니다!”

“어이, 000 선생. 거기까지 가서 대체 뭐 하고 나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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