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하고 행복한 직장생활 가능함? (7)

퇴사 원고 다듬기의 즐거움

by 하작가

"000선생! 당신이 갔다 온 그 집 얼마나 어렵게 상담 잡은 줄 알아?"


"대표님, 그집은 과외 시킬 만한 여유가 되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억지로 밀어붙일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내가 언제 억지로 밀어붙이라고 했어? 그런 상황에서도 도장 받아오는 게 기술이지! 회사가 지금 누구 사정 다 봐주면서 돌아가는 덴 줄 알아? 대체 선배들 따라다니면서 뭘 보고 거야? 누가 그딴 식으로 상담하래? 누구야, 빨리 말해!"


그 말을 듣는 순간 이곳은 영락없이 사기 집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여기 소속된 나도 사기꾼이 된 거나 다름없었다. 나름 국가 자격증 취득했다는 허영심에 취해 무책임한 환상을 품었던 것은 아닐까? 이게 진짜 내가 발 딛고 살아가야 할 현실 인건가? 처음부터 이렇게 너무 세게 나오는 건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




어렵사리 몸을 구겨 넣은 퇴근 버스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다음 상담 일정이 하나 남아 있었지만 도무지 가기 싫어졌다. 가장 최근에 동행 상담을 진행해 주신 선배에게 오늘 몸이 너무 안 좋다는 이유로 대신 방문을 부탁드리곤 집으로 향했다.


‘난 너무 불가능한 이상만을 쫓아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냉혹한 현실을 경험해 봤으면서 난 아직도 너무 감상적인 걸까?’

‘아니야, 분명 회사라는 곳도 충분히 재미있고 따뜻할 수가 있었어, 내 눈으로 봤잖아.’

‘어렵게 들어온 회사이니 감사하게 생각하고 내일부터 다시 마음을 다잡아 볼까?’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래도 약 20개 정도의 집을 다니며 상담을 진행했었다. 만났던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모습이 기억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걱정, 염려, 그리고 나로 인해 가진 희망 등으로 일희일비하시던 모습이 떠올라 안타까웠다. 그런 분들에게 수십만 원짜리 계약서를 들이밀고 협박 비슷한 설득을 거듭하던 내 모습도 함께 보이는 듯 했다. 만약 상담하던 내 모습을 찍은 영상을 본다면 정말 참담했을 것 같다.


결론은 생각보다 빨리 났다. ‘그래, 여긴 사기꾼 집단이 확실해! 더는 이 일로 돈 벌 순 없어!’




확신이 서자, 퇴사 의지를 피력할 시나리오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그 회사 대표가 좀 무서운 사람이었다. 면접 때의 한없이 푸근했던 첫인상이 내가 계약을 딱 한 번 이끌어내지 못했을 때 길길이 날뛰던 모습과 너무나도 대조됐다. 그래서 더 무섭고 소름 돋았던 것 같다. 위기 때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고 하지 않나? 대표의 민낯이 이곳의 기업문화라면 더 버틸 이유가 없었다.


그나저나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퇴사 원고를 쓰는 일이 너무 재미있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기 위한 준비가 이렇게 흥미진진하다고?’


이건 과연 어떤 마음일까? 감히 내게 큰소리친 대표에게 한 방 먹일 생각하니 통쾌한 것일까? 아니면 그동안 만났던 학생, 학부모들에게 최선을 다해 최소한의 사죄를 할 기회라고 생각했던 걸까?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난 어떤 상황에서도 재미있게 일하고 재미있는 조직에 속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었다. 어느새 노트북 화면에는 빼곡히 글자가 채워졌고 날 응원하듯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기묘하게 설레는 밤이었다.

작가의 이전글지속가능하고 행복한 직장생활 가능함?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