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천사 1중대 1소대장
담배 천사
1중대 1소대장
사회생활하는 동안 가장 무서웠던 상사는 군 생활을 할 때 모신 한 대대장님이었다. 육사 출신에 각급 학교에서의 성적이 무조건 1등밖에 해본 적이 없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 정식 부임도 하기 전부터 부대 전체에 엄청난 긴장감이 내려앉았고, 실제 부임 이후 긴장은 공포스런 일상이 되었다. 그 분의 기준은 늘 본인의 인생 여정 만큼이나 높았고,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을 때는 설명이나 설득보단 분노의 말이 날아들었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내가 담당하던 해안 소초로 방문해 각종 시설 점검을 하는 날이었다. 내 담당 구역엔 깎아지른 절벽 끝에 위치한 초소가 있다. 그 초소 곁에 쌓여 있는 모래주머니 위에 휙 뛰어 올라가시더니 몸을 절벽 너머로 완전히 숙이고 초소 바깥쪽 을 살피셨다. 이윽고 과연 인간이 낼 수 있을까 싶은 고함이 텨져나온다.
"야 이 XX들아! 북한군이 이걸 보고 우릴 얼마나 xx같이 생각하겠냐!"
무슨 일인가 싶어서 나도 절벽 너머로 살짝 내다봤더니 절벽 쪽을 바라보고 있는 주머니 하나가 과장 하나 안보태고 2센티미터 정도 터져있었다. 아직 절벽 끝에 서 있는 나와 중대장님의 가슴을 지휘봉으로 연신 밀어붙이며 본인이 아는 욕은 다 하신 것 같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이 멍청한 XX들을 어떤 XX가 임관 시켰는지 얼굴이나 보고 싶다!"였다. 참고로 내 임관 사령장에 쓰여 있는 이름은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이다. 가끔 그때를 회상하며 농담하곤 한다. 그때 상체 운동을 조금만 게을리했더라면 군부대내 추락 의문사 사고의 주인공으로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회차를 채우지 않았을까 하는 아찔함이 아직도 남아 있다며 추억을 곱씹어본다.
나중에 통일이 되면 북한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싶다. 혹시 2006년경 속초 해변 절벽 끝 초소 모래주머니 터진 거 봤냐고. 그게 그렇게 무시 당할만한 일이냐고.
아무리 군대 얘기지만 부하를 조금이라도 존중한다면 그 정도로 이런 취급을 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부대 순찰 전에 무슨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었던지, 아니면 평소에 내가 맘이 안 들어서 마음먹고 깨러 왔던지. 꼭 사람을 칼로 찌르거나 총을 쏴서 죽이는 것만 살인이 아니다. 말과 행동으로도 충분히 사람을 죽일 수 있다. 국민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꾹 참고 버텨낸 군 생활이지만 내 자식은 이렇게 존중받지 못할 곳으로 보낼 수 있을지 지금부터 걱정이 된다. 오늘도 대체 그곳에서는 하루에도 몇 건의 공식 집계되지 않은 살인이 자행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달라야 했다. 군대에서도 나는 지금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내 소대원들과 조금이나마 즐겁게 지내며 다같이 힘든 조직에서 사람답게 버틸 수 있을까?
나는 정말 작은 권력을 가진 초급 간부였지만 이를 최대한 활용해서 소대원들을 살리고 싶었다. 이발병이나 보일러병처럼 주말과 밤낮없이 본인 시간을 희생해야 하는 부하들을 주말 외출할 때 한두 명씩 데리고 나갔다. 2~3시간 정도의 외출이지만 다음 일주일은 그들의 눈에 이전과 다른 활력이 생겨났다. 마지못해 버티는 분위기가 아닌, 충분히 할만한 것을 해내고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뀌어 있다. 전투력 보존은 의외로 간단했다. 물론 혼자만의 외출이 훨씬 한가하고 편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약간의 번거로움을 감수하면 훨씬 가치있고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남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아직도 근무했던 부대 방향으론 오줌도 안 눈다고. 가끔 말도 못할 악몽에 소리지르며 깨어나는 날은 열에 열하나는 군대 다시 가는 꿈을 꿨다고. 반대가 되는 꿈을 꿔 본다. 군대 꿈을 꾸고도 빙긋이 웃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와 같이 근무한 동료들, 부하들이 나와 함께 했던 시간 속에서 기분 좋은 순간을 많이 맞이할 수 있게 해준다면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하지만 늘 담배 한 보루씩 사놓고 지냈다. 혹시 군대가 가장 위태로워지는 때가 언제인지 아는가? 북한이 우리 쪽으로 포탄을 날렸을 때? 휴전선 철책이 끊어졌을 때? 물론 그때도 위험하겠지만 소대장으로서 3~40명의 병사들을 지휘하는 입장에서 보면 PX에서 담배가 떨어지는 때가 최악의 위기다. 담배가 없으면 전투력과 사기가 눈에 띄게 떨어진다. 세상에서 담배가 사라진 그순간, 흡연자인 소대원들 눈빛은 나라 잃은 애국지사가 따로 없다.
그런 날이면 담배 네 갑을 들고 점호 하기 직전 생활관을 방문한다. 퇴근한 소대장이 갑자기 밤에 찾아오니 소대원들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불안이 스친다.
그때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하늘 높이 올릴 때의 함성 소리를 어떻게 잊으랴. 당시 물가로 만원도 안 하는 돈으로 다수의 사람에게 가장 큰 행복을 줄 수 있는 방법이었다.그렇게 담배를 분대별로 한 갑씩 선물하면 그렇게 무뚝뚝한 군인들의 입에서 한없이 아름다운 말들이 넘쳐 난다.
"소대장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꼭 성공해서 이 은혜를 백배로 값겠습니다."
"소대장님, 장동건보다 잘 생기셨습니다."
그렇게 충성을 다하지도 않았고, 전역하고 나면 은혜는 커녕 연락 한 번 없이 남남이었고 난 여전히 장동건이 아니지만 그냥 우린 그 순간 모두가 행복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새까맣고 건장한 청년들의 입에서 저런 말이 단 한 번이라도 나오게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대체 그들에게 담배가 무엇이길래. 내가 비흡연자니까 담배 자체에 무관심했다면 과연 나의 소중한 부하들이 언제 가장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지 알 턱이 없었을 것이다. 아주 조금만 관심을 두고 보니 우연히 보였을 뿐이었다. 그들이 나누는 일상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 봤을 때 들렸을 뿐이다. "와 진짜 담배는 와 이리 빨리 떨어지노?" "PX에 연초 언제 들어온대?" 나는 자원해서 온 군대지만 저들은 자의와 무관하게 징집됐다. 과정이야 어떻게 됐든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한 부대에서 만났다는 사실이다.
나의 어깨에 둘러있는 지휘자 완장의 의미를 늘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초록색 완장은 부하들의 목숨을 책임진다는 거창한 의미가 있다. 생명이란 육체에 숨쉬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영혼의 호흡도 만만치 않게 중요하다. 대부분의 군인들은 영혼의 호흡이 가쁘다. 유독 힘들어하는 친구들은 일상의 호흡을 위해 늘 영혼의 산소호흡기가 필요하기도 하다.
그때 필요했던 것은 소대장이 건네 준 담배 몇 가닥이었고 "힘들지? 내가 뭘 도와주면 좋을까?"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뿐이다. 이런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엄청난 정신교육을 계획하고 전문 강사를 써가며 강당에 군인들을 모아놓고 되도 않는 레크리에이션을 시켜주고 다같이 모여서 축구, 족구하게 해준 것으로 그들의 상처와 고통을 위로해줬다고 으스대고 있다. 평소에 그들의 말과 행동을 한 발짝만 가까이 와서 듣고 봤다면 그런 비효율적인 예산과 인력 투입까지 필요 없었을 것이다. 나의 노력의 결과 영광스러운 별명도 생겼다.
'담배 천사 1중대 1소대장'
그리고 이런 행동으로 인해 가장 행복한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담배 4갑으로 이런 행복을 얻었는데 아직 방에는 6갑의 담배가 남아 있다. 무려 한 달 반 동안 행복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소대원들에게 선물해 줄 행복 몇 갑이 내 삶에는 더 큰 즐거움으로 증폭되는 순간이다.
어릴 때는 당연히 받는 것이 익숙하다. 부모님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나보다 어른이기 때문이다. 주는 것이 익숙하지도 않고 딱히 즐겁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서류상 성인이 된 후 비로소 진짜 성인다운 구실을 시작한 군 생활을 하면서 주는 것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 배우게 됐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줘야 가장 효율적으로 행복을 느끼게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말이 ‘가성비’라 행복의 가성비를 계산하고 있는 나를 지금도 자주 발견한다. ‘이왕 살아가야 하는 시간 재미있고 행복하면 좋잖아?’라는 생각을 그때부터 했던 것 같다.
앞서 이야기한 회사 상품권으로 축의금을 준 대표님 덕분에 ‘담배 천사 1 소대장’의 행복 본능이 깨어났다. 그리고 다짐했다.
"저 분 하는 것 반대로만 하면 되겠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이렇게 한 수 배웠습니다.
대표님과의 축의금 사건으로 인해 나의 마음은 한층 더 단단해졌다. 주변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나를 성장 시킨다. 십 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때 받았던 봉투, 봉투를 여는 순간의 흥분감, 내 손에 붙어 나오는 미상의 종잇장, 이게 대체 뭘까 하는 끝없는 의구심, 이건 꿈일까?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인 것 같기 때문에 이게 꿈이어야만 할 텐데 등등의 복잡 미묘한 생각들. 수백 번이고 돌려봐도 질리지 않는 드라마처럼 생생하게 내 오감을 자극하는 경험이었다. 처음에는 마음 한 구석 찝찝함이 진하게 남아있었지만 점차 괜찮아지고 있었다. 그 분 반대 방향으로 살기를 다짐했을 때부터.
하나의 목표를 정했다. 나를 그렇게 대한 분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면 주는 기쁨과 쾌감을 한층 극대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