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빼로, 그 이상의 즐거움
매년, 피할 수 없는 11월 11일이 다가온다.
사실상 이날은 L제과가 집중적으로 돈 버는 날이다. L제과가 마케팅 차원에서 스스로 만든 날도 아니고 일본의 ‘포키 데이’가 동해를 건너와서 강제로 기념일이 된 날이다. 탄생의 배경이 그렇게 유쾌하진 않지만 그래도 연인이나 이제 막 썸을 타고 있는 남녀 사이에는 설렘이라는 감정을 소소한 선물을 통해 표현하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좋은 날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공동의 기념일을 대하는 나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날엔 남들이 하는 것과 비슷하게 하면 역시 즐겁게 보낼 수 있다. 기념일은 그렇게 보내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11월 10일이나 12일과는 조금 달라야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재미있는 자극을 받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 부서원 수에 맞춰 인터넷으로 이것저것을 주문했다. 빼빼로데이니까 뭔가 길쭉한 간식거리로만 골라서 샀다. 다이소에서 포장용 봉투 한 묶음을 천 원 주고 구매하니 준비는 어렵지 않게 끝났다. 당시 부서원이 11명 정도 됐는데 5만원도 들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추구하는 ‘행복의 가성비’를 제대로 충족한 준비였다. 증명하고 싶었다. 행복은 그리 비싸지 않다는 걸.
아침 일찍 사무실에 도착해 하나씩 포장해서 책상마다 올려놓았다. 그러면서 상상한다. 0과장님은 바로 "이거 누가 갖다 놨어요? 너야? 너야?" 이러고 신나게 분위기를 띄우실 것이고, 0대리님은 조용히 눈동자를 굴리면서 부서원들의 분위기를 살피며 이벤트의 주인공을 추리하고 있을 것이고, 눈치 100단 0주임님은 아마도 바로 나한테 카톡을 보내실 것이다. 여러 모양으로 기쁨을 표시할 부서원들 모습에 20년 전 담배 선물을 받고 무한 충성을 약속한 사랑스러운 소대원들이 겹쳐 보인다.
다소 불순한 의도로 시작한 프로젝트이긴 하지만 효과는 상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상과 큰 차이가 없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재미있었고 이 서프라이즈 이벤트의 주인공이 나로 밝혀진 이후엔 하루 종일 감사와 칭찬을 받았다. 역시 주는 사람이 최대 수혜자이다. 받은 사람은 준 사람에게만 감사할 수 있는데, 준 사람은 11명의 받은 사람들에게 계속 사랑의 피드백을 되돌려 받기 때문이다.
어디 가서 5만 원으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라고 한다면 난 바로 인터넷으로 주변 분들에게 줄 선물을 주문할 것이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부담스럽지 않은. 그러면서도 작은 재미와 행복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회사를 재미있게 다닐 수 있는 훌륭한 기술을 하나 장착했다. 이건 적어도 우리 회사에서 나밖에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다. 매년 이벤트를 진행해도 늘 같은 반응이다. 모든 기념일은 1년에 한 번 뿐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기억력은 다행히도 그렇게 좋지 않다. 여전히 이 초콜릿을, 사탕을, ㅃㅃㄹ를 놓은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한다. 주는 사람도 재미있고 받는 사람은 즐거운 그런 시간들. 좀 더 자주, 좀 더 기쁘게 회사 안에서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