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 *
“야, 들었냐? 김동후 결혼한다던데.”
“그 자식 성공했지. 대학 잘 나왔겠다, 인물 좋겠다, 제수씨도 엄청난 미인이라고 들었어. 정말 배 아프네.”
“그놈이 잘되는 게 어디 정의인가. 그놈의 더러운 성질머리가 발동해서 우리 반 애들 대부분 그놈한테 맞아봤지. 키 크고 주먹깨나 쓴다고 기분 나쁠 때마다 친구들 때리던 그 자식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갈린다.”
“그렇게 억울하면 찾아가서 한 대 갈기고 와. 막상 겁나서 못하겠지?”
침침하던 눈이 번쩍 뜨였다. 신경 세포 하나하나가 김동후라는 이름 석 자에 괴기스럽게 반응하여 경련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그놈에게 맞은 적은 없지만, 한 학년 내내 그놈의 주먹이 날아올까 아슬아슬한 학창 시절을 보낸 기억이 일상에서 불쑥불쑥 튀어 올랐다.
“그래도 그놈이 정말 대단했지. 공부 잘해서 서울대 갔지, 싸움 잘하지, 카리스마 있지.”
고등학교 동창들은 김동후의 뒷담화를 안주 삼아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틈을 보아 남의 험담을 하는 것은 진화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습성으로 굳게 자리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단순한 뒷담화를 넘어 김동후의 존재는 고등학교 시절의 우리 모두를 한 데 비끄러매는 구심점이 되었다. 그의 존재는 무소불위의 힘으로 친구들의 추억에 한 올 한 올 매듭지어 있었다.
‘그’라는 안주가 소화되지 않은 채로 속을 휘감았다. 나는 메슥거리는 느낌이 콧구멍까지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것만 같아 말없이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갔다. ‘인 서울’이란 말이 전국을 떠돌며 입시의 장에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어갈 무렵, 그의 서울대 진학은 우리 고성군의 큰 화젯거리가 되었다. 서울 소재 대학을 동경한 김동후의 사냥개들은 속으로 배앓이를 했다. 그들 중 몇몇은 중앙과 지방이란 이분법적 틀에 갇힌 채, 지방에 잔류한 사실에 박탈감을 느꼈다.
“왜, 혼자 한숨 쉬고 있어?”
나도 모르는 사이 한철민은 옆으로 와 있었다. 그는 김동후와 함께한 고3 시절, 우리 학급의 총무부장이었다.
“내가 그랬냐?”
“그래, 자식아. 담배 끄고 들어가서 술이나 한잔하자. 애들 가르친다는 녀석이 담배는 왜 자꾸 물고 있어. 애들이 보고 따라 하겠다.”
“한 대만 더 피고 들어갈게.”
내뿜은 연기가 휘휘 거리는 기체 지우개가 되어 고3 때의 기억을 지워주길 바랐다. 금요일 밤의 반창회는 고향에 남아 농사짓는 녀석들과 부모님의 가업을 이어받아 사업을 하는 녀석들이 대부분이었다. 고향 친구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모임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무렵, 과도한 음주로 나는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정신 좀 드냐? 물 좀 마셔.”
한철민의 도타운 목소리가 들렸다. 창가로 비어드는 아침 햇살에 눈이 부셨다. 머릿속의 무언가가 우지끈 깨져 금이 간 듯 통증이 일었다.
“어젠 어떻게 된 거야?”
“떡이 되도록 술에 취했지. 네가 뭐라고 중얼거린 줄 알기나 해?”
“내가 뭐랬는데?”
“안 알려줘 자식아. 어제 너 챙기느라 힘들었어. 길거리에서 무슨 토를 억수처럼 퍼붓냐. 스프링클러인 줄 알았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한철민의 집을 나왔다. 그의 집과 우리 집은 걷기에 꽤 애매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버스로 십 분 거리, 결국 걷기로 마음먹었다. 고향이 머금은 여름의 내음을 코로 크게 들이마셨다. 고성의 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기운이 몸으로 전달되었다. 읍내 시장 기름집의 기름 냄새와 항아리 옹심이 냄새가 다른 계절보다 코의 감각을 자극했다.
평소 쉽사리 느껴왔던 정신 건강의 조락으로 육신마저 더욱 무기력해지는 것 같았다. 시장 옆 전통가옥이 늘어선 한옥촌의 용하다고 소문난 한의원이 떠올랐다. 서울 소재 유명한 특목고에서 과학 교사로 재직 중인 나로서는 양의학 쪽에 더욱 신뢰를 두고 있었지만, 한의원에 가보라는 어머니의 말이 쉽게 떠나가질 않았다. 양자역학의 시대와 걸맞지 않게 이질감을 주는 한의원의 사립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나이에 비해 낯빛이 좋지 않군. 몽마(夢魔)가 잔뜩 독기를 품었어.”
“몽마라뇨?”
“꿈 몽! 마귀 마!”
미신에 물든 동네 어르신을 상대로 한 계산속이라면 모를까, 숫제 ‘꿈 마귀’ 같은 허상의 개념을 늘어놓는다는 건 나 같은 합리적인 과학 교사에게 먹힐 리 없었다. 실체 없는 개념을 그대로 믿게 하여 돈깨나 벌겠다는 심보라고 느꼈다.
“관둬요. 요즘 세상에 마귀라뇨. 기가 허하다느니 하는 식의 주관적인 말만 늘어놓지 마시고, 좀 더 실증적인 방법으로 접근해 보세요. 그럼, 전 갑니다.”
시간 낭비를 했다는 생각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봐, 악몽으로 괴롭지? 열기 가득한 얼굴을 보니 뭐, 진맥할 필요도 없겠어.”
사립문 밖으로 가려던 발걸음은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늙은 한의사는 뒤이어 말을 이어갔다.
“사기(邪氣)가 가득해. 몽마의 장난으로 음양(陰陽)의 균형이 깨졌으니 낯빛이 좋을 리 있나. 일단 침부터 맞아.”
“어! 잠시만!”
갑작스레 잡아채는 노인의 손아귀에 이끌려 나는 침상에 누울 수밖에 없었다. 그의 손등에 묻혀있던 실핏줄이 선명하게 굵어지며 저항할 수 없는 힘을 내뿜었다. 늙은 한의사는 팔과 얼굴에 차례차례 침을 놓기 시작했다. 처음엔 돈독으로 차오른 중고차 딜러처럼 느껴졌지만, 나중에는 침 하나하나가 피부를 찌르면서 생기 잃은 고사목 같은 마음을 서서히 적시는 위로를 느꼈다. 침이 꽂힌 채로 눈은 자연 감겼다.
* * *
“젊은이, 혼곤히 단잠을 자니 깨울 수가 있어야지. 병상에 누워 잔 게 벌써 두 시간 째야. 슬슬 일어나.”
손목시계를 확인하니 바늘은 두 시간 앞으로 흘러가 있었다. 이처럼 단잠에 한껏 취하다 쾌청한 기분으로 일어난 적은 드물었다. 느티나무 가지에 앉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타고 산 중턱으로 쓰러져가는 햇살이 어슴푸레 흘러들었다. 동화 속 세상을 만난 듯 몽롱하면서 몸에는 생기가 도는 걸 느꼈다.
“시간이 이렇게 지났을 줄 몰랐네요. 덕분에 감사합니다.”
“됐고, 한약 한 재 달였으니 취침 한 시간 전에 한 팩씩 먹어. 마음의 병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자넨 불의 기운이 너무 강해. 일주일에 한 번씩은 와서 진료 보고 가.”
“아니, 제 의견도 안 물어보고 약을 달이다뇨. 이건…”
“사람 살리는 의사를 사기꾼 취급하고 있어! 이미 달였으니 약값 계산하고 가봐. 나중에 고맙다는 말, 하게 될 거여.”
마음의 병이니, 불의 기운이니 하는 말은 서울 시내 복판에서 도를 깨우쳐 준다는 사람들의 그것과 비슷하게 들렸다. 재수 옴 붙었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투덜투덜 걸어갔다. 그래도 몸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을 받았다. 일종의 한의학적 위약효과라고 생각했다.
집에서는 과도한 음주에 대한 어머니의 볼멘소리를 들어야 했다. 삼십 대부터 몸 관리를 잘해야 한다며 일장 연설이 시작되려 하자, 슬며시 한약 한 재를 어머니 앞으로 내밀었다. 시장 옆 한옥촌, 용하다고 소문난 한의원에 다녀왔다는 말에 어머니는 반색했다.
“그려, 그 양반 성격은 괴팍해도 병은 참 잘 본다니깐. 평일에는 사람 많이 없을 거여. 거기 갈 생각을 어떻게 했니.”
어머니의 말에 건성으로 답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김동후를 떠올리면 발생하는 분노를 연료로 태우자 악몽이 자꾸만 동력을 얻는 것 같았다. 졸업한 이후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그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수록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성채를 세우려고 애썼다.
“야 숟가락 좀 빌려줘.”
“싫어!”
고1 때의 일이었다. 김동후는 점심시간마다 자신의 친한 친구들이 많이 몰려있는 우리 반으로 와서 그들 무리와 함께 도시락을 먹었다. 어느 날 숟가락 가져오는 걸 잊은 모양인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나와 눈이 마주쳤고, 내게 숟가락을 빌려달라는 요구를 했다. 누군가와 숟가락을 공유한다는 자체가 비위 상하는 일이라 생각하여 정중히 거절했다. 그는 한동안 나를 노려봤다. 절대권력을 쥔 왕이 고개를 조아리는 신하는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그렇게 신(神)이 장난을 치려는지, 그와 나의 악연은 그렇게 숟가락 따위로 맺어지고 말았다.
고3, 김동후와 나는 한 반이 되었다. 고등학교 삼 년 중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을 외로운 투쟁의 서막이 열렸다.
이른 새벽, 또 그 녀석이 꿈에 나타났다. 등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다시금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눈을 감았다.
“반장, 너 스타크래프트 주종족이 뭐냐?”
“난 프로토스인데.”
“역시, 얼굴이 외계인처럼 생겼으니 프로토스를 고르는군.”
다른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외모를 지적하여 내게 무안함을 준 그와 싸우고 싶었으나, 그랬다간 외진 곳으로 끌려가 린치를 당할 것이 뻔했다. 사실 폭력이 주는 위압감은 없었다. 다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가슴을 옥죄어 왔다.
눈을 떴다. 김동후의 눈동자가 역겹게 떠올랐다. 악몽은 시지프가 짊어진 형벌처럼 김동후와 관련된 일화를 재생시켰다. 늙은 한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꿈 몽, 마귀 마. 몽마라는 마귀가 마음 한구석의 트라우마를 꼬집어 재단한 꿈을 주기적으로 내보여 주는 걸까.
아침을 맞기 위한 새벽의 통과의례를 마쳤다. 깨어난 의식에는 꿈의 내용이 선명했다. 반복되는 ‘영원회귀’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싶었다. 어머니가 아침을 차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혹시 어제 내가 잘 때 잠꼬대했어?”
“왜? 악몽 꿨어?”
“아니, 그냥. 엄마 혹시 몽마라고 알아?”
“몽마? 몰라. 그건 왜?”
“아냐. 방에 들어갈게. 다 되면 불러줘.”
“쓸데없는 생각 말고 임자 만나서 결혼할 생각이나 해라. 네 친구 동후 있지? 걔 결혼한다더라. 그 당시 고성에서 얼마나 큰 잔치가 열렸냐. 동후네 엄마가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돼지 몇 마리 잡은 날 말야.”
“걔 친구 아냐….”
어머니가 차린 밥을 먹고 가방에 책 한 권을 챙겨 나갔다. 시장 앞 카페로 들어가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커피 향과 온기를 느끼며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월든」을 펼쳤다.
책은 펼쳐 들었지만, 내용은 머릿속으로 들어오질 않았다. 과거에 있었던 일이 전연 기억나지 않는다면 과거를 살았노라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즐거웠던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이 악몽 같은 투쟁 속에 가려져 점차 자취를 잃어간다면, 고등학교 시절의 즐거웠던 한 부분이 진정 즐거웠노라 말할 수 있을까.
잠자리에 들지 않더라도, 꿈보다 더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 그건 생생하게 깬 채로 낮 꿈을 꾸는 것이었다. 양잿물 빛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반장 이 XX야. 반 티가 뭐 이따위야. 내일 내가 애들 데리고 다시 옷 맞추러 갈 거니 그리 알아.”
티셔츠의 도안을 보며, 그는 부하 직원을 천대하는 직장 상사처럼 나를 대했다. 우리 학교에서는 체육대회 날 학급의 결속을 위해 돈을 갹출하여 반 티를 제작하는 관례가 있었다. 우리 반 역시 반 티를 맞춰 입자는 결정을 했다. 반장의 지위를 이용하여 옷 맞추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선 야간 자율 학습에 빠질 수 있었다. 물론 그 특권을 부반장과 총무와 함께 누렸고 자연스럽게 김동후는 제외했다.
“이미 주문했어. 우리 반 대표로 간 거니 더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덤덤한 목소리로 김동후의 말을 받았다. 그가 반장이 되지 못했던 건 투표라는 익명의 의사 표현이 주는 힘 때문이었다. 자신의 측근조차 겉과 속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된 그는 더욱 포악해졌고, 어떠한 억하심정 때문인지 사사건건 나의 학급 정책에 딴지를 걸고넘어졌다.
괴팍하고 사나운 그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는 걸 친구들 모두 알았다. 반장으로서 윤리와 절차적 정당성을 내세워 그와 맞서기로 마음먹었다. 김동후를 견제하기 위해 조력자가 필요했다. 인간관계가 둥글둥글한 부반장과 총무를 마음속으로 낙점하여 나의 세력으로 두려 했다. 내가 운 좋게 반장이 될 수 있었던 것도 2학년 때 같은 반 출신인 총무와 부반장의 표가 갈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행히 급우들이 민주적 절차로 뽑은 공적 관계가 내게는 유리한 친소관계를 만들어주었다.
“XX하고 있네. 저딴 티셔츠를 누가 입냐?”
김동후는 몸을 부르르 떨며 주먹을 꼭 말아쥐었다. 당장이라도 그의 말린 주먹에 맞을 것만 같았지만, 주눅 들지 않고 눈초리를 꼿꼿이 세웠다. 일촉즉발이었다. 그때 총무 한철민과 부반장 이현진이 서너 명의 친구들을 몰고 와 우리를 에워쌌다. 능갈맞게도 한철민은 김동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분위기를 풀었다.
“우리끼리 시장에 옷 맞추러 가서 그런 거야? 우리도 너 야자 빼주려고 한참을 찾았는데 농구 하고 있더라. 뭘 그런 걸로 삐치고 그래. 기분 풀어. 허허.”
김동후의 입장에선 주먹이 곧 법이라는 걸 만인에게 각인할 기회였으나 한철민이 이 문제를 사사로운 감정의 문제로 재치 있게 환원시켜버리며 나를 구했다. 김동후가 주먹을 휘두른다면, 삐침이란 이유만으로 사람을 치는 소인배가 되는 셈이었다.
“누가 그렇대? 야, 앞으로 똑바로 해라. 마음에 안 들어 진짜.”
김동후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툴툴거리며 화장실로 갔다. 온몸의 맥이 풀렸다. 김이 샌 사이다처럼 상황이 진정되자, 다른 반에서 온 구경꾼 일부는 누군가의 피를 원했다는 듯 씩씩거리며 흩어졌다.
과거를 회상하느라 찻잔의 열기가 식은 줄도 몰랐다. 잔에서 피어오르는 열기가 성에 낀 카메라 렌즈로 들여다보는 흐릿흐릿한 피사체를 만들어냈다. ‘월든’의 첫 페이지만 테이블에 펼쳐져 제풀에 반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