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2
드러나는 징벌은 사람의 마음을 무기력하게도 하지만, 그것이 명분을 갖추지 못할수록 처벌대상자의 마음에는 더욱 굳은 정신력이 심어지게 마련이었다. 여섯은 더욱 의기투합하여 감독과 코치와 대립각을 세웠다. 코치에게 날이 선 한마디를 들을수록 우리도 더욱 날을 세워 저항했다. 고통의 임계점을 넘지 않고선, 감정적인 문제에 있어서 작용 반작용의 법칙은 성립했다. 우리가 먼저 저항의 물꼬를 틀자, 다른 친구들도 서서히 몇 뙈기 안 되는 양심을 열어 보이기 시작했다. 감독과의 대치 국면에서 우리 여섯은 점점 우위를 차지해 가고 있었다. 하나둘씩 힘이 모여 질서정연한 단체 행동이 거국적으로 번질 조짐을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양 진영의 날이 선 씨름의 흐름을 바꿀만한 변곡점이 찍혔다.
“이민우! 박상진! 잠깐 감독님이 보자고 하신다.”
얼차려를 받는 중 코치의 말이 떨어졌다. 민우와 나는 즉시 감독실로 불려갔다. 뒤를 돌아보자 남은 동료들의 불안한 눈빛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둘 다 거기 편하게 앉아.”
감독은 푹신한 물소 가죽 소파를 가리키며 자리에 앉길 권했다.
“둘 다 내 도움이 있어야 크게 뻗어나갈 수 있을 텐데, 어리석은 일을 벌였군. 봉황의 날개를 일찍 꺾는 것 같아 아까워.”
“감독님의 평점이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지금 기합받는 친구들은 대부분 기량이 뛰어난 친구들입니다. 특히 여기 있는 상진이는 누구보다 필요한 균형 잡힌 공격수입니다.”
민우가 우리 모두의 입장을 대변하려고 입을 열었다.
“그래, 잘하긴 하지. 그런데 너희들은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곰곰이 생각해도 선뜻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었다. 그때 민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직한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조직력입니다.”
“그래, 하지만 박상진은 그걸 모르는 것 같군. 자신을 너무 믿고 기량만 뽐내려 하는 애송이와 같아. 박상진이 골을 많이 넣을수록 박상진의 원맨팀이 되어가는 거야. 그러다 보면 다른 선수들은 점점 박상진 눈치도 보겠지. 그건 독재가 아닌가?”
“그건 개인 기량에 따라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선수 개인의 개성을 발휘하는 재량은 경기 중에 당연히 허용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감독의 말을 더는 듣고 있을 수 없어서, 나는 울분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 재량권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할 수 있는 것 또한 감독의 재량권이지.”
“…”
“요즘 시위대니, 부정선거니, 말이 많더군. 너희들 나이 때는 그런 것들이 멋져 보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대부분 어린 날의 객기에 불과해. 지금까지 이승만 대통령께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나. 각하가 아니었다면 우린 이미 공산화가 되었을 거다. 하긴 이승만 대통령도 부족한 점이 있지. 민주화니 뭐니 하는 녀석들을 입을 함부로 놀리지 못하도록 다 쓸어버려야 하는데, 너무 물러 터졌단 말이야. 어쨌든 우리끼리 내분이 일어나면 가장 좋아할 사람은 누구인가? 공산화된 세력이겠지. 이럴 때일수록 마음에 안 들더라도 사소한 일은 접어두고 온 국민이 힘을 합쳐야지. 축구도 똑같아. 대의를 위하여 자신의 개성을 버려두고 힘을 모아야 하는 법이다. 당장 옆 동네를 봐라. 우리의 경쟁자 학교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우리가 이럴수록 그 학교들만 좋아할 거다.”
축구라는 스포츠에 대통령의 이야기가 결합하자 머리가 어지러웠다.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던 조합은 머리를 짓눌러 왔다. 일순간 그럴싸하게 들렸지만, 실은 부정한 일도 참고 받아들이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입을 떼려 하자 감독이 가로막았다.
“박상진은 아직도 우물쭈물하는군. 이민우, 지금부터 네 위주로 팀을 편성할 생각이다. 말귀 못 알아듣는 친구 한 명쯤은 팀의 성장을 위해 희생할 수밖에 없어. 나를 믿고 대의를 따르지 않겠나?”
다음 날부터 민우는 고통의 대열에서 벗어났다. 저항의 종자는 여섯에서 다섯으로 줄었다. 사람들이 여럿 모이면 자연스럽게 친소(親疏)에 따른 무리가 형성되게 마련이지만, 그렇게 형성된 무리가 서로 대립각을 세우는 일은 적어도 우리 축구부에서는 없었다. 그동안 한 팀 아래서 실뭉치들이 서로 어우러져 승리라는 직물을 만들기 위해 뒤엉켜 땀 흘릴 뿐이었다.
하지만 민우의 징계가 풀리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전자의 개수가 하나만 바뀌어도 다른 성질의 원소가 되듯, 부원들은 민우를 제외하고 남은 다섯 명을 이전과는 달리 시큰둥하게 대했다. 평소 부드럽고 온화한 성품으로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민우는 아이들을 계몽했고, 감독을 향한 선수들이 가진 의심의 칼날은 서서히 무뎌졌다. ‘대의를 위하여’라는 구호로 차분한 어조 속에 매립된 민우의 강단은 실뭉치 각각에 사상적인 색을 입혀 팀을 철저히 분리했다.
“이민우. 이 배신자.”
“그래, 네 눈엔 내가 그리 보일 수도 있겠다.”
민우는 도리어 우리의 반성과 사과를 재우치며 뒤돌아섰다. 나는 철조망을 향하여 눈앞의 공을 있는 힘껏 찼다. 전국대회의 결과는 믿기지 않게도 우승이었다. 모두가 단일하게 삭발한 모습, 광기 어린 두억시니의 눈빛은 상대에게 충분한 위압감을 주었다. 한 골을 먹더라도 동요하지 않았고, 감정의 기복 없이 감독의 팀은 수천, 수만 번 연습했던 경우의 수를 실행에 옮겨서 만회하고, 또 역전했다. 운동장을 가르는 공의 흔적들이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거대한 그물망을 그리며 망 속에 펼쳐진 네모난 공백 사이로 상대 팀 선수들의 발을 묶고 정신력을 붕괴시켰다. 이 모든 것을 벤치에 앉아 보충 전력으로서 묵묵히 지켜봐야만 했다.
#3
이사장은 우승의 주역들이 금의환향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례적인 성과에는 이례적인 환영이 마트의 원플러스원 상품처럼 묶여 나왔다. 양쪽으로 정문은 입을 크게 벌렸고, 목구멍에서 뻗어나는 혓바닥처럼 레드카펫이 운동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렀다. 새빨간 카펫 양쪽으로 전 교직원들과 전교생들이 동원되어 장성 같은 울타리를 이루었다. 물줄기 같은 박수와 환호 속에서 과학 선생님은 손뼉치길 거부했다. 김 감독은 해맑게 웃는 군중 사이에서 침묵의 소리가 내는 이질감을 본능적으로 느꼈을지도 모른다.
내 이름은 여전히 경기 선발 명단에 올려질 수 없었으며, 선수로서 부지런히 쌓아 올려야 할 기록을 쌓지 못했다. 말라 죽어가는 나무처럼, 감독은 나를 서서히 바스러지게 했다. 정신력은 푸석한 감촉의 수피처럼, 고사리 손가락으로 문질러도 껍질이 벗겨질 것만 같았다. 타고난 재목이더라도 가꾸는 사람이 정성 들여 영양공급을 해주지 않는다면 잘 자랄 수 없다는 생각에, 축구의 길을 어떻게 걸어야 할 것인지 고민했다. 5인의 분노는 온 세상을 뒤엎을 것 같았으나 밤이 오면 쉽게 식어버렸다. 그것은 ‘타협과 생계’라는 환풍기에 빨려들어 쉽게 저편으로 무기력하게 흘러갔다.
과학 숙제를 제출하기 위해 계단참 쪽문을 열고 교무실로 향했다. 과학 선생님은 자리를 비우셨다. 보조 책상에는 여러 학생의 공책이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었고, 고풍스러운 지구본이 소복소복 먼지로 덮인 채 놓여 있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교황청의 눈을 피해 숨죽이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교황청은 저물어가는 권력의 끝자락을 잡은 채 지동설을 주장한 사람들을 처벌할 수 있었지만, 진리를 향한 순수한 마음만은 벨 수 없었다. 과학 선생님은 부정선거를 반대하는 집회에 참여한 후로 학교에 나오지 않으셨다. 선생님의 부재가 더욱 그런 메시지를 강하게 던져주는 것 같았다.
4월 19일의 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은 스스로 하야했지만, 김 감독은 부산의 중하위권 팀인 우리 학교를 우승시킨 일로 청소년축구협회에서 주는 올해의 감독상을 받았다. 별명은 봉황을 지휘하는 명장. 반어인 건지, 역설인 건지, 그것도 아니면 풍자인 건지, 익살인 건지 구분이 잘되지 않았다. 명장은 봉황을 타고 목에 걸린 목줄을 이리저리 죄었다가 느슨하게 풀기를 반복하며 여러 우승 트로피를 건져 올렸다. 가타부타 말은 많았지만, 그는 자신의 지도력을 기록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이후 학교를 옮겨 다니며 좋은 성적을 내자, 그는 프로팀 감독으로 진출하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명문 구단까지 이끌게 되었다. 그의 축구 방식은 프로의 세계에서도 잘 먹혔다. 하지만 그와 함께했던 선수들은 항상 그와 불화를 일으키며 떠나갔다. 그럴 때마다 새로운 선수를 영입하여 자기 팀의 정체성을 이어갔다. 구성원은 바뀌지만, 팀의 성격은 바뀌지 않았다. 소화관 내벽은 며칠 만에 새로운 세포로 교체되지만, 뇌세포의 교체는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 하프타임-2
“도착했습니다. 워낙 곤하게 주무셔서 저도 잠에 취하는 줄 알았습니다. 허허.”
버스 기사는 기지개를 켜며 웃었다.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앉아 코를 골던 나는 찡그리던 얼굴을 배시시 펴며, 무사히 도착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선수들에게 열쇠를 주고 각자 배정된 호실로 짐을 풀도록 지시했다. 서둘러 훈련 시설을 코치와 함께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점검했다. 훈련을 위한 신축 시설들이 들어섰고, 구축 시설물 대부분은 최신형으로 리모델링 되었다.
문득 가고 싶은 곳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코치를 숙소로 보내고, 서둘러 그곳을 향해 잰걸음을 쳤다. 그곳에는 우리와 같은 조에 속하여 두 달 후 경기를 펼치게 될 중앙제일고등학교가 훈련하고 있었다. 오와 열을 맞춘 선수들의 대열이 눈에 띄었다.
“안녕하세요. 박상진 감독님 아니신가요?”
“네, 그렇습니다만. 어떻게…?”
“아, 굴봉고 트레이닝복을 보고 박 감독님이란 걸 알았지요. 후배가 먼저 인사드립니다. 중앙제일고 감독 이대현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박상진입니다. 그런데 후배라뇨?”
“잘 아시다시피 이 바닥이 한두 다리만 건너면 까발려지는 네트워크 아니겠습니까. 이리저리 물어서, 감독님이 봉황중 출신인 걸 알았지요. 저도 김상혁 감독님께 배웠습니다. 같은 스승님께 배웠으니 동문 선후배 아니겠습니까.”
“아, 그런가요.”
“스승님은 청소년에서 프로까지 축구 지도자로 전설이 되셨죠. 저는 스승님이 중앙제일고 감독으로 오셨을 때, 함께 우승을 이끌었지요. 그런데 요즘 감독님이 지휘하는 서울 유나이티드가 내리막을 보이는 게 아쉽습니다. 조금만 더 성적을 유지했더라면 대표팀 감독까지 가는 건데….”
거듭 이어지는 스승에 대한 용비어천가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서둘러 자리를 뜨고 싶었다. 돌연 그곳으로 눈이 돌아갔다. 5인이 있던 자리, 힘겹게 지켜나갔던 그 자리에 중앙제일고 선수들이 어깨걸이를 하며 얼차려를 받고 있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우리의 이야기를 연극배우들이 무대에서 재연하는 것만 같았다.
김 감독의 DNA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세포는 이대현이란 이름으로 돌아다녔다. 감독의 뜻대로 패스하지 않았을 때부터 세포를 발견하는 일은 이미 정해진 숙명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땅거미가 서서히 제임스 체육관을 물들였다.
“저희가 그쪽을 반드시 이겨야 할 이유를 발견한 것 같군요. 두 달 뒤에 전국대회에서 뵙겠습니다.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