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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전쟁 잔혹사(2)

2편

by 나세진

#3

감독은 좀처럼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패스, 드리블, 슛과 같은 구체적인 기술 훈련은 코치가 도맡아 지도했다. 뫼비우스의 띠를 따라 분주히 안팎 면으로 돌고 도는 개미 떼처럼 패스, 드리블, 슛 연습이 끝나면 또다시 같은 훈련이 되풀이되었다. 감독이 슬며시 코치에게 명단을 건네주면 코치는 허리를 굽혀 명단을 건네받았다. 연습 경기 중 감독은 그저 어둠 속에서 눈만 번뜩이는 파놉티콘의 파수꾼처럼 멀찌감치 떨어져서 선수들을 지켜보았다. 연습 경기가 끝나고, 감독은 무형의 경기력을 유형의 평점으로 환원하여 발표했다.

대부분의 득점은 주로 최전방 공격수인 나를 통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날이 거듭될수록 감독이 내게 부여한 평점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멀티 골에, 해트트릭을 성사시킨 날이라도 평점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평점에 대한 일방적인 통보만 있을 뿐, 어떤 경위로 이런 평점을 내렸는지에 대하여 감독은 입을 열지 않았다. 팀원 모두가 자신의 평점이 높고 낮음을 떠나서, 어떠한 이유로 자신의 결과가 매겨졌는지 모른다는 사실에, 푸석푸석한 물기 없는 고구마가 식도에 바리케이드를 친 마냥 답답하게 느껴졌다. 몇몇 선수들이 재차 물어보아도 감독은 다부진 몸을 돌리며 질문 자체를 일축했다. 의도된 침묵은 충분히 폭력적이었다. 말없이 반복되는 일축은 선수들의 의식을 메마른 토양으로 끌고 가 사그라들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기술 훈련과 연습 경기라는 두 기차는 틈을 보이지 않고 겨끔내기로 우리를 실어날랐다.

“박상진! 이민우! 오늘은 너희 둘이 팀 가르고 연습 경기 진행해라.”

코치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우린 서로를 멀거니 바라보았지만, 다른 친구들은 민우와 내가 팀을 편성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나는 성진이처럼 발이 빠른 선수 위주로 팀을 꾸리려 했고, 민우는 날래고 민첩하지 않더라도 패스를 잘하는 선수들로 팀원을 뽑으려 했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상대 팀 공격수가 공을 길게 치고 달리다가 실수하여 우리 팀 수비수에게 볼을 빼앗겼다. 즉시 나는 센터 서클 오른쪽 자리로 재빨리 뛰어가며, 패스해 달라고 손짓하며 큰소리쳤다. 공을 잡고선 머릿속에 생각해 두었던 가상의 시나리오를 한 결씩 풀어 보였다. 운동장을 도화지 삼아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민우와 혜규를 따돌렸다.

곧이어 상대방 수비진의 바로 앞 공간, 오른쪽 모서리 부근의 위험 지역(Vital Area)까지 침투했다. 이때 내 오른쪽 후방에 있던 발 빠른 성진이가 ‘헤이!’라는 오버래핑 신호와 동시에 오른쪽 가장자리를 따라 쏜살같이 달려갔다. 필사적으로 나를 막고 있던 상대방 측면 수비수 준호의 마크는 순식간에 성진이와 나, 두 사람을 동시에 신경 쓰느라 한결 느슨해졌다. 수비를 내게 최대한 가까이 유인한 다음, 앞으로 쇄도하는 성진이에게 공을 줄 것인지 생각하며 머릿속 처리 회로를 빨리 굴렸다. 그 틈에 중앙 수비수인 호현이가 준호를 지원군처럼 돕기 위해 달려왔다. 한순간의 머뭇거림을 섞어 패스를 줄 듯 속이는 동작을 하고선, 과감하게 오른쪽 골포스트를 향하여 왼발을 휘감았다. 공은 정직했다. 골망을 타고 내려오는 공과 그물의 마찰음, 그리고 이어지는 팀의 환호성이 협연했다. 감독은 공의 궤적을 우두커니 서서 째려보았다.

경기가 끝나고 모두 어린이와 같은 모습으로 코치 앞으로 모였다. 감독은 코치의 뒤에서 뒷짐을 지고 이리저리 걷고 있었다.

“박상진, 오 점 영(5.0).”

감독을 대신하여 평점을 발표하는 코치의 덤덤한 목소리가 허공에 긴 파장으로 흩어졌다. 이번 경기에서 발표된 평점 중 최하점이었다. 부원들 대다수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몇몇 선수들은 쇠창살 같은 이[齒] 사이 틈으로 어쩔 수 없는 탄식을 흘려보냈다. 항상 대행자를 통해서만 자신의 실루엣을 드러내는 감독에게 나는 본능 서린 눈빛을 쏘아붙이며 저항했다.

“어째서입니까?”

“무엇이 어쨌다는 말이지?”

당황한 코치가 급히 내 말을 제지하며 막아섰다. 난데없이 큰 쥐 한 마리가 집 방구석에 날아든 듯 공기는 싸늘해졌다.

“매번 왜 이리 낮은 평점을 받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이번 경기 막바지, 제 득점이 팀의 사기를 끌어 올려 비길 수 있었던 것 아닙니까.”

“박상진! 감독님께 이 무슨 말버릇이야!”

코치는 씩씩거렸다. 감독은 켜켜이 쌓인 관찰의 결과를 사납게 풀어내려는 결심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분위기가 심상찮게 흘러간다는 걸 감지한 부원들은 감독과 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간당간당한 눈싸움을 그저 지켜만 보았다.

“네가 지금까지 보여줬던 플레이는 축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증명했을 뿐이다. 팀보다 위대한 개인은 없으며, 모든 플레이는 수학적이고 합리적인 계산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너는 틈새를 노렸겠지만, 각도 상으로 골키퍼와 정면이었다. 또한 그 틈새로 휘감아 차기가 성공할 확률도 극히 낮지. 성진이의 오버래핑에 호응해서 공을 패스한 다음 골대 앞으로 재빠르게 패스를 받으러 가는 게 더 나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휘감아 차기는 평소에 밥 먹듯이 연습해서 자신 있었습니다. 때론 선수의 직감과 기술을 믿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네가 골을 넣은 이후, 네 팀은 계속해서 고전했다. 그 한 골로 도리어 팀은 너한테만 의존하게 되었다. 득점 자체가 치명적인 약점으로 드러났어. 너 한 사람에게만 의존하는 팀은 상대가 보여준 대로 너만 집중적으로 견제하면 쉽게 무너지는 거야. 더 할 말 있나?”

“...”

“게다가 넌 비겼어. 이건 바둑의 정석처럼 땅을 균일하게 배분하는 문제가 아니야. 승점을 1점씩 사이 좋게 나눠 가지는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을 누르고 승점 3점을 가져가야만 하는 문제라고.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우리 팀에 승리를 안겨주지 못했다면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네가 이런 식으로 연습 경기에서 골을 넣고 기록한 승률은 43.33%, 절반도 안 된다. 잘 들어. 선수는 체스판의 병정과 같다.”

감독의 정연한 논리에 말문이 막혔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43.33이란 숫자에 압도되어 입이 굳어버린 채로 있었다. 이 사건은 칠월 저항 사건이란 이름으로 봉황중 축구부 역사에 아로새겨졌다.


● 후반전

#1

“우리 학교 축구부 역사상, 처음으로 큰돈 들여 전지 훈련 가는 거야. 이사장님과 감독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남다른 각오로 훈련에 임해야 할 것이다. 알겠냐?”

“예!”

“감독님의 말씀을 대신 전달하겠다. 전시 상황이라 생각하고 정신력을 끌어모아 보자. 의지를 다지자는 뜻으로 전원 모두 학교 뒤편 이발소에서 머리를 빡빡 깎고 와라.”

스포츠와 전쟁 용어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일까.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스포츠에 전시 상황을 끌어들이는 게 상당히 거슬렸다. 교련 선생님의 지휘 구령에 맞추어 대답하듯, 큰소리로 대답하는 다른 친구들도 싫었다. 속이 메스꺼웠다. 축구부는 단체로 학교 뒤쪽 조붓한 골목에 끼어 있는 허름한 이발소로 향했다. 이발관 아저씨는 듬성듬성 빠진 머리를 긁적이며 흡족한 표정으로 우릴 맞았다. 운동하는 사람은 삭발투혼으로 정신 무장을 단단히 해야 하는 거라면서, 세계적인 축구선수 중 몇몇 대머리 선수들의 이름을 신나게 언급했다. 이발기는 아스팔트로 도로를 포장하는 장비가 되어, 머리 중앙을 반들반들하게 밀고 지나갔다.

“요 녀석들! 여기 있었군!”

“어, 안녕하세…요… 저… 죄송합니다!”

과학 선생님이었다. 숙제를 깜박 잊어버리고 제출하지 않았던 사실이 불꽃처럼 번쩍였다. 선생님께서 친히 숙제를 제출하지 않은 선수들을 잡으러 오신 것이다. 모두 상담실로 불려갔다.

“내가 인마, 솔직히 숙제 제출 안 받고 너희 모두 빵점 줘도 될 일을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받아내는 줄 아냐?”

“죄송합니다.”

“친구 따라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생각 좀 하고 살란 거야. 머리 빡빡 깎았어도 너희들 각자는 다 다른 사람들이야. 스스로에 대한 예의는 갖춰라, 이 웬수들아.”

과학 선생님은 호방하게 너털웃음을 지어 보이며 손으로 힘껏 내 어깨를 쳤다. 모두 함께 껄껄거리며 웃었다.


제임스 체육관에 도착했다. 그루터기 속 한가운데 박힌 선명한 옹이처럼 체육관은 너도밤나무 숲속에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 한 사람이 개인 재산을 털어, 사제들의 수양 시설을 지었으나 재정난에 부딪쳤다. 운영을 지속할 수 있도록 골몰한 결과가 체육시설 및 청소년 수련원 대여사업으로 정해진 것이었다.

“오늘부터 전술훈련 학습 시간을 가질 것이다. 각자 포지션에 적합한 움직임을 파악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기술 훈련을 고생하며 한 것은 모두 팀에 녹아나는 움직임에 적합한 기술을 때맞춰 구사하기 위해서였다. 열심히 익힌 기술로 개인의 개성은 절대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건 결코 아름다운 축구가 아니다.”

감독은 강당에서 작전판을 활용하여 두 시간 동안 움직임에 관한 열띤 강의를 했다. 스모그 속에 숨어서 드러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던 감독의 생각들이 표면에 선명한 윤곽을 그리며 드러났다.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한 완벽한 태세를 갖춘 전술이었다.

“이 움직임에 어긋나는 플레이를 한 사람에겐 선발상의 불이익을 주겠다.”

모든 훈련은 일정대로 진행되었고 공을 소유하고 있지 않을 때의 움직임과 신호에 따른 약속된 플레이를 연습했다. 여전히 연습 경기는 매일 치러졌다. 4-3-3 대형(수비수 넷, 미드필더 셋, 공격수 셋을 차례로 배치한 포지션) 속에서 나는 많은 골을 넣었고, 팀원들이 나를 신뢰하는 정도는 쌓여갔다. 체육관에 오기까지 감독의 혹독한 훈련 덕에 기술적인 성장이 급속도로 이루어진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개인 기량이 늘수록, 향상된 기량을 발휘할수록, 감독으로부터 주어지는 평점은 연장으로 다듬어지는 석고처럼 야금야금 깎여만 갔다. 자연스럽게 불만은 하늘로 치달았다. 아이들 대부분은 불만이 있더라도 말하지 못하는 나약한 소시민이었다. 의자 뺏기 게임(Musical chair)처럼 음악이 멈추면 한정된 수의 선발 명단에 앉으려고 몸싸움을 하는 시스템 속에 그들은 타의로 편입된 채 감독의 변주곡을 들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쪽매맞춤으로 빈틈없이 붙은 인도의 타일 사이로도 풀이 비집고 나와 생명력을 소리 내는 것과 같이, 할 말은 하겠다는 동료들도 있었다. 평점에 불만을 가진 동료 넷과 함께 감독을 찾아가려고 모였을 때, 때맞춰 민우가 찾아왔다.

“너는 평점도 제일 높으면서 왜 가려고? 괜히 같이 가서 눈 밖에 벗어나지 말고 그냥 있어. 우리끼리만 다녀올게.”

“아냐, 너희들한테 그런 평점을 지속해서 주는 건 이해할 수 없지. 어차피 따로 찾아 말씀드리려고 했어.”

우리 여섯 명은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감독을 찾아갔다. 감독은 우리의 불만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민우는 제 일인 양 더욱 핏대를 올리며 떠들었다. 인위적인 한 편의 퍼포먼스를 펼치듯 감독은 과장되게 귀를 후비며 한 마디로 우릴 내쳤다.

“내 말을 듣지 않는 게 문제다. 물러가라.”

다음 날 감독에게 항의하러 간 여섯 명은 그날 이후 별도의 그룹으로 편성되어 훈련을 받았다. 우리는 다른 선수들이 훈련할 동안 오리걸음, 곰 걸음, 쪼그려뛰기와 같은 얼차려부터 시작하여 선배들로부터 입으로만 전해 내려오던 고통스러운 기합들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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