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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향기마을 Jan 13. 2023

혼자 밥 한 그릇

나를 사랑하는 시간

나는 28년 차 워킹맘이다.

그중 17년을 친정 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고,

또 그 세월에 포함된 10년은 병상에 있던 엄마를 한 집에서 돌보며 지냈다.


해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은 한식이며 집밥이다.






맛있는 음식을 해서 예쁘게 플레이팅하고, 지인을 초대해서 예쁜 식탁보에 꽃과 촛대를 양가에 두고, 사랑스러운 음악에 담소를 나누며 즐기는 장면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나는 늘 생각했다.

내게는 그럴 일이 절대 없을 것 같다고.


아이들이 어릴  때는 그 입에 밥이 들어가야 내 배가 부르고, 부모가 아플 땐 못 드시는 모습에 속상해서 내 배가 부른 것이 죄스러워 식욕도 없었다.

그런 시절에는 참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오히려 외면하고 모른 척 얼굴을 돌렸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들은 정말 몰랐던 것 같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상상할 수 없었고, 상상하기도 싫었을 테니까.

알게 되면, 안다고 내색하면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선뜻 손 내밀기가 어렵고 골치 아픈 이야기 들어주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니까.


그래서 어느 때부턴가 나는 밖에 나가 일하면서 스스로 늘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내 어려움을 알 수 없었고 언제나 즐겁게 일하는 에너자이저라고 생각하도록 행동했다.


단지 이 어두운 시간들이 지나가는 중이라는 걸 유일한 희망으로 삼고.






정말 신기하게도 시간은 흘러 지나간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신기한 일을 이야기하라 하면 바로 시간이라고 말한다.


물론 내 인생의 20여 년을 떼어주고 얻은 지금이지만,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파스타를 가장 편안한 곳에 가서 조용한 시간에 홀로 앉아 흘러간 팝송을 곁들여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서 먹을 수 있다. 한참 앉아 시도 쓰고 생각도 정리하고 할 일을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 나를 아는 푸근한 주인장의 배려가 커피 향처럼 온 마음을 가득 적신다.


간혹 혼자, 걷는 아이와 업힌 아이를 데리고 앉아서 피자와 파스타를 시키는 젊은 엄마들을 만난다.

어차피 몇 입도 먹지 못하고 앉았다 일어났다 반복하며 한 숨을 쉬는 모습을 보면 얼른 아이 하나라도 안아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부부가 함께 왔어도 서로 핸드폰만 들고 할 말이 딱히 없는 풍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씁쓸하다.


그러니 어쩌면 식탁의 종류나 장소가 아니라 내가 놓인 시간이 그때의 나를 말해주는 게 아닐까.

또한 그 시간은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해서 어떤 시간을 지나가든 꿈꾸는 것을 멈추면 안 된다.






내가 생각하는 제일 아름다운 식탁 풍경은 무엇인지 떠올려 본다.


언젠가 보았던 이탈리아 해안가 흰 벽을 테라스로 두고,

에메랄드빛 바다를 그림 삼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서로의 웃음이 꽃잎처럼 날리는 그 어느 여름날,

빛깔 고운 와인 한 잔에 춤추며 수평선 너머 멀리 보내버린 지난날을 위로하고 싶다.


내가 꾸는 꿈이 누군가에게는 지루한 현실일 수도 있겠고 또 어느 어린 엄마들에게는 보이지 않을 미래이기도 하겠다. 하지만 내가 지금 혼자 밥 한 그릇 마음 편히 누리는 시간 역시, 터널 끝 빛처럼 내가 걸어 나가 내 손에 닿은 희망이고 작지만 확실한 기쁨이다.


이제껏 그랬듯 단단한 현실 하나씩 손에 쥐어가며 걸어가는 길에는 늘 행운의 여신이 함께 한다.

그녀가 있어야 할 가장 옳은 곳이고 빛이 나는 사람과 함께 더욱 아름다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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