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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향기마을 Jan 18. 2023

시인의 사랑

바보같은 내 편

사는 동안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남편과 내가 서로의 무엇을 그토록 사랑했는지.


나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그라고 다를까.

너무나 잘 보이는 단점만이 우리 사이에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것을 서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래 살다 보니 어쩔 수 없다는 다른 이들의 말에, 어느덧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같이 생겨났다.








그는 늘 예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바다를 좋아하며, 얼리 어댑터이고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따뜻한 사람이다.


나는 마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숲을 좋아하며 지극히 아날로그형으로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까다로운 사람이다.


결혼 전에 이렇게 글로 적어 볼 수 있었다면 정리가 쉬웠을 텐데 사랑이라는 감정이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니 무슨 수로 당할까.


30년이라는 긴 여정, 함께 살면서도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내고 있었고, 가끔 함께 해결해야 하는 순간에만 견우직녀 만나듯 줄타기 대화를 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우리 사이에 아무도 없었다면 우리는 서로를 아프게 할 일도 힘들게 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생기고 친정 엄마가 아프면서 해결해야 할 여러 일들이 앞 다투듯 나타났다.

인간의 삶이 다 그러하듯이.






엄마가 돌아가시고 막내가 고3을 무사히 마치자 나는 이제 나를 되찾고 싶다고 말했다.

언제는 내가 아니었나. 하는 질문에 오롯이 나로 존재하고 싶다고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소리 내어 말했다.


걷고 공부를 하고 다시 영화관을 찾아가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인스타에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넣고 사진을 골라 숨겨둔 시를 얹어 올리기 시작한 지 4~5개월쯤 지났을 때 남편은 어느새 내 계정으로 찾아와 붉은 하트를 누르기 시작했다.


가벼운 술 한 잔 하고 들어온 어느 날, 느닷없이 이렇게 말했다.


- 아! 당신 시가 너무 좋아.

- 시는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는데.

- 내가 밖에서 당신 시를 읽으면 너무나 위로가 돼.


나는 내 귀를 의심하고 이렇게 물었다.


- 당신! 정말이야? 지금 한 말 정말이야?


- 그럼. 시를 쓰는 당신이 너무 좋고 신기해!

- 계속 썼으면 좋겠어. 필요한 게 있으면 얘기해. 내가 도와줄게.


우와,,,,30년을 그렇게 사랑하며 잘하려고 애를 썼는데 이제 와서 시 쓰는 내가 좋다니!

진작 말을 하지. 그놈에 소통인가 대화인가 하느라 내가 속을 얼마나 끓이며 힘들었는데 그보다 시라니...


그리고 생각해 보니 그는 군에 있을 때 윤동주 시집을 필사하며 서러운 시간을 견뎠고 나는 러브레터를 쓰면서 시를 옮겼던 것이 생각났다.


그래. 우리는 서로를 연결하고 마음이 흐르던 길을 사랑했던 것이다.

그 길에서 서로에게 경탄하고 빛나는 매력에 홀려 밤새 오갔던 기억이 부풀어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날 밤 한쪽에 치워 두었던 와인병을 따고 나누어 마시며 그가 읽어 주는 시의 노래를 들었다.


내 가슴 저편에 묻어 두었던 미운 마음과 서운했던 서러움이 한겨울 꽃잎처럼 날리고 지나간 시간들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강처럼 흘러내렸다.






삐삐 시대를 풍미하며 온갖 암호를 지어내던 x세대의 사랑은 여전히 아날로그다.


기억을 지우고 그때로 되돌아가도 우리는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질 것이고, 그것은 흔한 운명이 아니라 늘 꿈에서 그려왔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의 연인을 찾는 일생일대의 사명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인생에서 사랑하는 이가 없이 혼자 이루는 성공은 원하지 않았기에 그럴 수 있다.


조금 가진 것을 나누는 내 편이 가장 소중하고 그와 함께 남은 생을 채워나가고 싶은 마음이 아직 이렇게 심장을 흔든다.

물론 나의 시 세계를 경탄하는 그를 위해 시인의 사랑도 함께 살아가겠지.


참 다행이다.                  










#소통 #감성에세이 #사랑 #시 #경탄 #글루틴 #팀라이트


책향기마을의 시사랑 인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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