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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기 Apr 24. 2022

내가 지켜줄게 19

재개발 지역 고양이들과 그들을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 남아 있는 아이들-


길고양이들의 삶의 무게는

그들이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 위에 놓여 있지만,

사람들의 삶의 무게는

그들이 지금까지 걸어온

인생이라는 길 위에 놓여 있다.


길고양이들에게 있어 삶의 무게는

살아가야 하는 무게를 말하지만,

사람들에게 있어 삶의 무게는

살아온 흔적의 무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문냥이를 인연으로 맺어진 고양이들은

사람들의 모습과는 달리,

좋은 집에 입양을 갔건

파양을 당했건

아니면 병에 걸려 생을 달리했건 간에

모두 그 운명의 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순응해 갔다.


이해관계를 숨겨놓고

거짓과 저주를 일삼는

인간세상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평온함이다.


몸 안의 장기가

조금씩 말을 듣지 않게 되어도

그저 하루 종일 따스한 햇살 밑에 앉아

마치 도를 닦듯이

실눈 속으로

세상의 모든 고통을 집어넣고 있는

두부의 평화로움으로부터

문득문득

존경의 마음이 우러나오는 이유다.


이문냥이 창문에는 요즘 들어 부쩍

여름이라는 계절의 풍요로움이

움터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의 일그러진 초상보다

고양이들의 한결같은 얼굴이

나날이 강해지고 있는 햇살을 만나

더욱 빛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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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레오를 보면 언제나 짠하다.

4살 정도로 추정되는 여자 아이인데,

이문냥이에 들어오기 전에

구청에서 위탁받은 사람에게 잡혀

TNR당했었다.

이때 구청은 레오 귀에 표식을 했는데,  

너무 과도하게 자르는 바람에

보기가 안쓰러울 정도다.



레오는 재개발 지역에 방치되어 있던

오래된 폐가에서 살던 아이다.

어느 날 미루를 만나 단짝이 되었고

이문냥이에 온 뒤에도

늘 둘은 가깝게 지내고 있다.


미루


미루는 얽혀 있는 고양이들이 많다.

여러 인연을 가져온 아이다.

서너 살로 추정되는 남자아이인데,

폐가에서 레오와 함께 살다가

이문냥이 보호소로 오게 되었다.



레오와 가깝게 지냈지만,

EBS 촬영 날

동두천 미군부대 옆 소요산 자락으로

혼자 입양을 가게 되었다.

다들 좋아하던 기쁨은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동두천에서는

미루가 집을 나갔다는 연락이 왔고,

결국 이문냥이 사람들은

6번이나 이 지역을 방문해서 노력한 끝에

다시 미루를 찾아 데려올 수 있었다.

미루가 돌아올 때 동숙이도 따라왔고,

태평이도 함께 오게 되었다.

이문냥이가 이문동을 벗어나

동두천 냥이를 둘이나 데려온 것이다.


 하뚱이


이문냥이 보호소에서 하뚱이는

가장 몸집이 큰 축에 속했었다.

성격은 온순했지만

덩치가 크다 보니

하뚱이를 건드리는 아이들은 없었다.



지금은 다이어트를 통해

예전의 모습 대신

건강한 근육을 자랑하고 있다.

4살로 추정되는 남자아이인데,

의젓함으로 말하면 1등이다.


수아


수아는 매우 소심한 4살 여자 아이다.

카오스 문양을 하고 있어

얼핏 보면 사나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숨숨집 안에 앉아

밖으로 손을 걸치고 있을 때

사람들이 손을 쓰다듬으면

하악질 하는 대신 살포시 머리를 내밀어

사람들을 바라보며 눈인사를 하는 아이다.



성격 탓인지,

처음 보호소에 들어왔을 때는

건강이 여러모로 좋지 않았다.

병원 다니기를 밥 먹듯 하던 수아는

지금은 보호소 생활에 적응을 완료한 상태다.

다른 친구들과도 잘 지내는

매력덩어리가 되었다.


하양이


하양이는 3살로 추정되는 남자 아이다.

처음에는 깐죽이 스타일의 성격 때문에

여기저기서 혼나기도 했고

그 결과

콧등에 손톱자국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지금은 태평이의 오른팔로

안정적인 자리를 잡았다.



태평이가 몸이 좋지 않아

잠시 케이지 생활을 하게 되면

그 앞에서 태평이를 향해 안부를 묻곤 하는

의리파다.

하지만 여전히

넘치는 장난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인데,

사람들이 장난감으로

어린 고양이들과 놀아줄때면

어른 체면 뒤로 하고

함께 어울려 노는

천진난만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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