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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기 Mar 01. 2022

내가 지켜줄게 11

재개발 지역 고양이들과 그들을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 열한 번째 이야기 : 삶과 죽음의 일상성 -


참으로 긴 밤이었다. 에스펜과 모모는 한 숨도 잠에 들 수 없었다. 멀쩡하던 아이가 갑자기 내장 출혈에 빈혈로 사경을 헤매다니.

다음날 아침 보호소 청소를 마칠 즈음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더 큰 병원에 가서 좀 더 자세한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한다. 두 사람은 점심도 건너뛰고 달려갔다.


(의사)'수혈을 하고 지혈제를 투입하고 지켜봤는데요, 출혈이 멈추지 않고 있어요. 본원에서 할 수 있는 여러 검사가 있는데 데리고 가셔서 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 검사 결과를 본 후 다시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네요'


본원은 강남에 있었다. 추가 검사를 더 한 후 한 참을 기다려 의사를 만났다.


(의사)'출혈이 계속되고 있어서 관련된 여러 검사를 더 해봤는데요, 현 상태로는 지혈제도 말을 듣지 않고, 정확히 어디에서 출혈이 발생하고 있는지 알 수도 없습니다. 다시 내원하셨던 분원에 가셔서 담당 의사와 상의해 보시지요. 검사 결과는 보내 놓겠습니다.'


자신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의사는 그렇게 급하지 않은 듯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사가 이해할 수 없는 상태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바둑이는...?


다시 분원에 도착한 세 사람은 의사를 만났다. 검사 결과를 받아 본 의사의 표정이 난감해한다.


(의사)'지금까지 검사 결과 상 명확한 것은 출혈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 하나입니다. 어디서 출혈이 진행되고 있는지 알면 수술을 하면 되는데, 그건 검사만으로는 알 수 없어서요.. 보통 장 쪽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개복 수술을 하시면 어떨까 합니다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수혈과 동시에 개복수술을 하기로 했다. 만약 장에 문제가 있다면 바로 처치하면 된다고 한다. 세 사람은 걱정 반 희망 반으로 바둑이를 뒤로 하고 병원을 나섰다.


수술은 저녁 무렵 진행됐다. 담당 의사로부터 비교적 잘 마쳤다는 전화를 받았다. 다만, 출혈 지점이 예상했던 장이 아니라 간이었다고 한다. 간에 커다란 구멍들이 여기저기 나있고 그 주변은 부스러지듯 한 상태였다고 한다. 원인은 다시 검사를 해봐야 알 것 같지만, 일단 손상된 간 부위를 절개한 후 봉합하였고 수술 자체는 비교적 잘 되었다고 한다.


(의사)'수술은 잘 되었는데요,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바둑이가 워낙 상태가 좋지 않은 채로 긴급히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회복이 어떨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오전부터 뛰어다니던 시간은 저녁을 지나 늦은 밤에 이르고 있었다. 에스펜에게 병원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온 무렵은 밤 10시가 지난 때였다.


(의사)'저.. 바둑이가 견디지를 못했네요. 심정지가 왔습니다. 조치를 했지만... '


그제까지만 해도 어느 때보다 밝고 활기차게 뛰어다니던 아이였는데, 갑자기 이렇게 떠나다니, 말이 되지 않았다. 의사들도 원인을 모른다고 하니 더 비참했다.


에스펜과 모모가 병원으로 달려갔다. 바둑이 배에는 커다란 수술 자국이 있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를 생각하니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출혈로 인해 심각한 빈혈이 왔고, 개복수술로 간을 잘라내기까지...


둘은 바둑이를 작은 종이상자 관에 넣어 보호소 아래층으로 데려왔다. 병원 냉동실에 넣어두는 것 자체가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밤은 이미 새벽이 되었고 바둑이의 마지막 하루도 그렇게 지나갔다.


허망하고 불쌍한 마음으로 잠을 이룰 수 없던 세 사람은 다음 날 아침, 다른 날보다 일찍 보호소 청소를 마쳤다. 보호소 아이들은 바둑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평소와 다를 바 없었고, 달라진 것이라곤 움직임을 찾을 수 없는 바둑이 집의 고요한 흔적뿐이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오전 끝무렵이었다. 보호소 아이들 중 먼저 떠난 아이들도 있었고, 그때마다 찾았던 장례식장이었지만, 이날 따라 허탈하고 불쌍한 마음이 떠나지 않는 경우는 없었다. 입양 간 하양이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간에 구멍이 생겼을 리도 없고, 외부의 충격 때문에 그랬을 리는 더 더욱 만무했다.


병원에서는 한 가지 가능한 원인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이미 물은 엎어졌고 바둑이는 없는데, 그것을 밝힌 들 무슨 의미가 있을지, 그저 한 없는 슬픔 덩어리만이 이문냥이 사람들을 누르고 있었다.


눈에서 나온다는 피눈물의 의미를 이렇게 알게 되다니... 슬픔이라는 감정에 분노라는 감정이 얹혀지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에 그저 눈물만 흘러내리던 기나 긴 하루였다.


바둑이의 마지막 길


바둑이는 그렇게 떠나갔다. 이 세상에 머문 시간은 2년 정도. 소심하고 하양이만 좋아하던 아이. 식욕촉진제를 먹던 마지막 10일 동안만 활기차게 웃는 얼굴로 돌아다니던 아이.  


에스펜은 최근 죽음에 대한 한 연구 결과를 신문에서 본 적이 있다. 한 환자의 뇌파를 촬영하던 중 이 환자가 사망하게 되면서 우연히 죽음 직전과 직후의 뇌파 영상을 얻게 되었는데, 사람의 심장박동이 멈추기 전 30초와 멈춘 후 30초 동안의 뇌파는 인간이 집중해서 기억을 떠올릴 때와 동일한 뇌파였다는 내용이다.


흔히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그가 살아왔던 삶 전체가 머릿속을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이런 속설이 어느 정도 증명된 것이라는 내용이다.

바둑이도 그랬을까? 엄마 아빠, 누나와 함께 힘들기는 했지만 자투리 땅에서 오붓이 지내던 그 시절도 떠올리고 갔을까? 보호소에서 지낸 지난 시간들과 고양이들과 사람들에 대해서도 좋은 기억을 갖고 갔을까?


탄생에 대한 축복도, 죽음에 대한 애도도 시간이 지나가면 그 흔적마저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을 수 없게 되는 것처럼 갑작스레 떠나보낸 바둑이에 대한 슬픈 기억도 그렇게 언젠가는 바람처럼 사라지겠지만, 늘 그러하듯이 깊이를 알 수 없는 감정의 심연은 몇 주가 지난 오늘까지도 마른하늘에 갑자기 내리는 비처럼 예고 없이 문득문득 에스펜과 모모의 가슴을 두드리고 있다.  


- (예고) 열두 번째 이야기 : 노랑이와 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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